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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할 틈도…숨 돌릴 틈도…말 섞을 틈도 없다…연극 ‘미드썸머’로 본 인극의 묘미
90분의 쉼없는 릴레이가 펼쳐진다. 배우는 단 두 명. 무대 뒤편으로 잠시 퇴장할 틈도 없다. 두 명의 남녀 배우는 완전한 알몸으로 관객 앞에 선다. 대사와 행동으로 이뤄진 빼곡한 연기가 촘촘히 쌓인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몸은 지쳐가지만 극이 끝나기 전까지는 바통터치할 수 없다. 온전히 역할에 몰입하지 못하면 관객에게 금세 들통난다. 한 번 무대에 오른 이상,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는 ‘무대 중의 무대’. 바로 2인극이다.

▶미드썸머,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2인극=연극 ‘미드썸머(데이비드 그레이그 작ㆍ양정웅 연출/6월 12일까지 예술의 전당)’는 예지원과 서범석(이석준과 더블 캐스팅) 2명의 배우가 채워나가는 2인극이다. 두 배우는 러닝타임 내내 쉼 없이 말하고 웃고, 뛰고, 춤을 추고 기타를 치고 노래한다. 마치 여러 편의 모노로그(독백)를 묶어놓은 듯 촘촘한 내용과 버라이어티한 장면이 쏟아진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모티브를 딴 이 작품은 우연히 만난 서른다섯 두 남녀의 고민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의 외연을 하고 있지만, 30대 중반의 남녀가 짊어진 고민과 철학을 동시에 담아 깊이를 더했다.

예지원은 극중 주인공 헬레나 역을 맡았다. 겉보기엔 모자랄 것 없는 변호사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은 서른다섯 골드미스다. 예지원의 연기는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헬레나를 연기하다 내레이션을 들려주고, 조폭 보스로 변신해 욕설을 퍼붓고, 자폐증 걸린 조카의 어수룩한 연기를 선보인다. 몇 벌의 드레스와 몇 켤레의 하이힐을 갈아신고, 무대와 객석을 헐떡이며 뛰어다닌다. 90분 내내 빈틈없는 무대를 보여주려니 배우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player)’가 된다.

2인극에 참여하는 배우는 알아서 스태프 역할도 겸한다. 스스로 소품을 챙겨 물통의 물을 머리 위에 뿌리고, 준비해 둔 꽃가루를 날리고, 무대 위의 의자와 계단도 직접 다 챙긴다. 


▶배우들의 버라이어티한 연기
=‘미드썸머’는 2명의 배우가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 각자 완결된 모노드라마를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극중 주인공의 역할과 동시에 해설자인 내레이션을 겸한다. 가능하다면 간단한 변장술(?)을 활용해 1인 다역도 한다. 가장 버라이어티한 형태의 모노드라마가 2인극의 틀 안에서 펼쳐진다.

이렇다보니 2인극에서 배우들의 내공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평소 넘치는 끼와 에너지로는 독보적인 여배우인 예지원이 낙점된 것도 특유의 버라이어티한 내공 덕분이다. 2인극에서 배우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 춤과 노래, 지치지 않는 체력과 에너지는 필수다. 

예지원은 10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무대에서 주고받는 에너지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는 것이 2인극의 가장 큰 매력임과 동시에 풀어야 할 숙제다. 단 두 명의 배우가 무대를 장악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상대 배우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에너지를 주고받는지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예지원은 10년 전에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연극 무대에 선 경험이 있지만, 이번 2인극은 큰 부담이었다고 했다. 그는 “오랜만에 서는 무대가 2인극이라 부담이 컸다. 배우 단둘이 무대를 채운다는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치 처음 무대에 서는 신인배우처럼 떨렸다”면서 “그렇더라도 배우로선 한번쯤 도전하고픈 욕심이 나는 장르”라고 덧붙였다.

연극 ‘미드썸머’는 예지원과 서범석(이석준)의 2인극이다. 두배우는 러닝타임 내내 마치 여
러 편의 모노로그(독백)를 묶어놓은 듯 촘촘한 내용과 버라이어티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농밀한 주제와 관객과의 친밀한 소통
=2명의 배우가 잠시도 지루할 틈 없이 움직이고 대사를 쏟아내는데, 그러다 보면 하나의 주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2인극의 매력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수많은 배우와 극중 역할이 등장하는 다인극과 비교해 2인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내밀한 관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의 최소 단위인 두 사람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춰 농밀한 주제를 끌어낸다.

극의 농밀한 주제의식이라는 2인극의 매력 덕분에 그동안 국내 연극계가 배출한 2인극도 50여편이 넘는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스릴미’, ‘노인과 바다’ 등의 2인극은 부모와 자식, 연인, 부부 등 인간사의 다양한 관계에 천착하며 주제의식을 드러냈다.

연극 연출자 입장에서도 2인극은 상대적으로 깊이 있는 주제를 드러내기 좋아 선호하는 장르다. ‘미드 썸머’의 양정웅 연출가는 “2인극은 두 명의 배우만 나오기 때문에 보다 친밀하고 긴밀하고 담백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두 명만 소통하는 구조로, 연극의 참맛을 가장 깊게 느낄 수 있다. 또한 배우 둘이 빈틈없이 소통하면서 만들기 때문에 작품이 보다 섬세해지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의 역량만큼이나 2인극에선 희곡의 완성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두 배우가 극 전체를 채워나가야 하는 만큼 촘촘한 설정, 개연성있는 스토리텔링, 지루할 틈 없는 전개 등 알찬 희곡이 필수 요소다.

그 외 관객들과의 ‘친밀한 소통’도 장점이다.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배우의 열정을 경험할 수 있고, 퇴장없이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과 보다 친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2인극의 큰 매력이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강력추천! 해외 유명 2인극


◇아일랜드(아돌 후가드 作)

=‘아일랜드’는 1974년 아돌 후가드와 존 카니, 윈스턴 쇼나 등 극작가 3명이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인 흑백 인종차별 문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작품이다. 오랜 감옥생활에 찌든 두 죄수(윈스톤, 존)의 이야기로, 두 죄수가 감방에서 공연 ‘안티고네’를 연습하며 고뇌하는 모습을 담는다.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망하는 두 죄수의 모습을 통해, ‘내일’을 상상할 수 없는 이들의 냉혹한 현실을 그렸다. 국내에서는 1977년 처음 소개돼 당시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 상황과 맞물리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의자들(외젠느 이오네스크 作)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극장가 외젠느 이오네스크의 대표 2인극. 결혼한 지 75년된 노부부가 현실과 단절된 삶에서 느끼는 짙은 고독을 그렸다.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언어를 통해 노부부의 비극을 잘 보여준다. 노부부는 끊임없이 손님을 맞는데, 실제로 손님은 등장하지 않고 노부부가 손님에게 하는 대사만 나온다. 극중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내놓는 의자를 통해 손님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심화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와의 소통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겼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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