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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명품만 멋지다고요? 우리 명품, 세계가 알아주죠
“와, 완전 콩나물시루네. 이러다 전세계 명품(名品)은 한국 사람이 죄다 소비하는 거 아냐?”
어린이날에서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이번 징검다리 연휴에 서울의 한 면세점을 찾았던 A 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등 이른바 명품패션 매장은 인파로 넘쳐났다. 명품패션은 재고까지 완전히 동났다는 소식이다.

이런 세태 속에서 아름답고 품격있는 우리네 명품은 더욱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외국인이 너나없이 혀를 내두르며 찬사를 내뿜는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목가구며 나전칠기, 도자기 등은 명품이라는 라벨을 붙인 외국산에 밀려나고 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전통음식도 그 원형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자연을 공간 속으로 절묘하게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미학’으로 평가받는 한옥도 아파트에 밀린 지 오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옛 선조가 남긴 명품의 아름다움을 헤아리고, 이를 일상에서 다시금 향유하자고 강조하는 ‘생활명품’(스토리 블러썸 刊)이란 책이 나왔다. 새 책 ‘생활명품’에는 한국의 명품공예와 회화, 건축, 음식이 엄선됐는데 옛 사람의 은근하면서도 너그러운 심성, 생활 곳곳에 깃들었던 미학을 고스란히 음미할 수 있다. 갤러리스트이자 문화평론가인 저자 최웅철 씨(51)가 책을 통해 꼽은 우리의 명품을 살펴보자.

▶우리네 사람과 산천을 닮은 분청사기와 달항아리=청색도 아니고, 백색도 아닌 분청사기의 묘한 색은 ‘가장 한국적인 색’으로 꼽힌다. 분청(紛靑)사기는 청자에 하얀 분토를 바른 도자기로, 조선의 독자적 기술과 감성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명품이다. 그렇기에 한국적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던 고 박수근ㆍ김환기 화백의 작품에서 분청사기의 빛깔과 질감, 모티브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국민화가 박수근의 울퉁불퉁 거친 화강암 같은 표면은 분청사기의 투박하고 거친 표면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한국의 도자기 중에서 분청사기만을 모아 특별전을 열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둥근 달을 닮았다 하여 ‘달항아리’라 불리는 백자 대호(큰 항아리)는 조선의 백자 중 최고 명품이다. 높이 45㎝ 이상에 유백색일 경우 특상품으로 치는데, 살짝 이지러진 그 넉넉함이 오히려 옛 사람의 여유와 파격을 감지케 한다.

▶조선목기의 백미, 소반과 사방탁자=소반과 사방탁자는 전통목기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명품이다. 특히 소반은 부자지간에도 겸상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여겼던 조선의 식(食)문화를 보여주는 산물로, 우리 선조의 위생관념과 절제된 생활을 방증해준다. 소반은 상판의 모양이나 다리 모양이 무척 다양했다. 상판의 경우 동그란 원반, 네모난 책상반, 12각형의 열두모판, 8각형의 팔모판, 연잎 모양의 연잎반 등이 있다. 다리 모양으로는 호랑이 다리를 닮은 호족반, 말다리 형상의 마족반, 개다리 소반, 학다리 소반, 대나무 모양의 죽절반 등 다양하다.

사방탁자는 앙상한 뼈대 사이로 기품이 유유히 흐른다는 점에서 또다른 명품이다. 일본 고미술시장에서 조선의 목가구가 가장 비싼 값에 팔리며 명품 대접을 톡톡히 받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기품과 자연스런 미감 때문이다.




▶몬드리안의 회화 뺨치는 조각보=조선의 조각보는 한땀 한땀 바느질하며 ‘복을 잇는다’는 마음을 새겨넣은, 일종의 섬유예술이다. 이름을 알길 없은 규방의 아낙이 만든 조각보는 근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몬드리안의 색면 분할보다 자유로움에선 ‘한수 위’라는 게 동서양의 평. 이 조각보를 예전엔 한 집에 60~100여장씩 갖추고 있었는데 책보, 옷보, 이불보, 패물보, 혼수보, 예단보, 상보 등 쓰임새가 실로 다양했다.

조각보에는 삼각형이나 사각형처럼 반듯한 조각도 있지만 사다리꼴처럼 변형된 조각도 많았다.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천으로 만들다보니 삐뚤삐뚤했던 것. 그러나 그 비정형이 더욱 절묘해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또 민화의 책거리 그림에서는 피카소의 입체주의 등 현대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살림솜씨 엿보게 하는 유기=유기는 반들반들 윤나게 관리하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물에 적신 짚수세미에 깨진 기왓장을 갈아 만든 가루를 묻혀 유기를 닦는 건 꽤나 고된 노동이었다. 그런데 이 까다롭고 번거로운 과정 속에 유기의 매력이 있다. 보온력도 뛰어나 뜨거운 밥을 퍼서 아랫목에 놓아두면 지금의 전기밥솥 부럽지 않다. 유기의 금속비율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황금비율로 평가받고 있다. 구리에 주석을 섞은 방짜유기, 아연을 섞은 주물유기, 니켈을 섞은 백동유기 등이 그것.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명품종이 한지=한지는 ‘가리되 완전히 막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다. 쓰임새도 많아 젓갈을 거를 때는 거름종이가 되어주고, 녹차를 돌돌 말아 보관하면 습기의 침범을 막아준다. 또 벽지 바닥재 창문도 온통 한지고, 반짇고리도 한지로 만들었다. 특히 우리의 한지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반투명성이 압권이다.




▶산 자의 옷 모시, 죽은 자의 옷 삼베=삼베와 모시는 우리의 고유한 감성과 지혜가 담긴 옷감이다. 모양새가 뻣뻣한데다 촉감까지 까슬까슬해 옷을 해입기 어려울 법하지만 선조는 이들 섬유로 명품 옷을 지어냈다. 민중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던 삼베와 서늘하고 우아함이 양반과 꼭 닮은 모시는 선조의 의생활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일급 천연섬유다.

▶향기로운 차 생활의 동반자 차시와 다완=차시는 차수저라는 뜻으로, 차잎을 뜨는 작은 숟가락을 가리킨다. 선조는 이 차시까지도 작은 조각배처럼 운치있게 깎아서 썼다. 그 선이며 형태가 단연 명품이다. 이 차시로 차잎을 떠서 차를 우려 마시는 조선의 막사발은 일본이 국보 1호로 지정할 정도로 모시는 일급 도자기다. 일본에서 한때 성채 한 채 값이었던 이도다완은 권력과 계급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최고 명품이었다.

한국의 명품을 찾아 전국을 누볐던 저자 최 씨는 이 밖에도 옹기, 세한도, 윤리문자도, 소쇄원, 부용정, 다산초당, 독락당, 순채, 어란, 황복 등을 ‘코리아 명품’으로 꼽았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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