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 ‘더불어 사는 삶’ 2題
위탁아동 부모 정혜영·진성덕씨할머니와 살던 혜미 양육
마음의 문 여는데 1년여
이젠 동생까지 챙기는
정 많은 맏딸 역할 ‘톡톡’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혜미(가명ㆍ12)는 할머니께 감사 카드를 쓴다. 일 하러 먼 곳에 나가있는 아버지께는 차마 카드를 쓰지 못한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카네이션을 그리며 또박또박 감사 인사를 써내려가는 혜미 곁에는 아버지 대신 혜미를 가슴으로 품은 부모 정혜영(38ㆍ여) 씨와 진성덕(45) 씨가 있다.
이들 부부와 혜미의 만남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굿네이버스 울산가정위탁지원센터가 ‘위탁 아동 키움이’ 봉사활동을 할 지원자를 모집할 때 정 씨가 선뜻 나섰다.
두 아들뿐이었던 정 씨에게 혜미는 가슴으로 낳은 딸로 다가왔지만 정 씨 마음과 달리 혜미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어머니와 멀리 일하러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와 단 둘이 살던 혜미에게 마음껏 재롱을 부릴 대상은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는 “혜미가 어찌나 장난이 심한지 남자아이 같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정작 정 씨 집을 찾은 혜미는 한 달이 되도록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아 함묵증을 의심할 정도였다.
정 씨에게는 도통 말을 트지 않는 혜미도 답답했지만 “엄마 사랑을 동생한테 뺏겼는데, 혜미 때문에 이젠 사랑이 3분의 1밖에 안 남았다”며 울어대는 큰 아들도 골치였다. 주위 사람들도 “혜미가 이 집에 와서 자기 처지를 더 비관하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만류했다.
혜미(가운데) 양을‘ 복덩이’ 딸로 맞아들인 진성덕 씨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새로운 가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왕도는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혜미와 주말마다 함께 공원에 다니며 배드민턴을 하는 등 큰 이벤트가 아닌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79세 고령의 할머니와는 함께 할 엄두를 못냈던 활동을 하나씩 경험하자 혜미도 점차 마음을 열었다. 정 씨 부부에게 장난기 묻어나는 미소를 내보이거나 선생님, 화가 등 수시로 바뀌는 장래희망을 상담하는 정도까지 됐다.
혜미를 맞은 지 1년 후 부부에게는 늦둥이 딸을 보는 경사가 찾아왔다. 정 씨는 “혜미가 몰고 온 복인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지난 2월 갑자기 혜미는 양 손 가득 문구용품을 사들고 왔다. 정 씨 부부의 둘째 아들 찬우(8)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혜미가 “찬우도 내 동생이니까 입학 선물 사야 한다”며 노트며 필통, 색연필 등을 사들고 온 것이다. 혹시 막내동생 주은(3ㆍ여)이가 서운해할까 커다란 곰인형도 들고 왔다. 나눔은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정 씨 부부의 생각을 혜미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다.
도현정 기자/kate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