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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화에서 아빠는 ‘조연’ ‘대화부족’
최근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 3명 가운데 1명은 자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12월 가족실태조사에서 청소년 691명과 자녀를 둔 부모 10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응답한 부모의 비율은 아버지가 34.4%로 어머니 19.8%보다 높았다.

한국영화에서도 아빠, 아버지라는 존재는 ‘대화 부족’으로 집약된다. 아빠가 퇴근해 안방에 앉으면 자식들은 하나 둘씩 자기방으로 들어가는 전형적인 가정의 저녁 풍경처럼 아빠는 한국영화 속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하거나 조연에 그치고, 소통에 실패한다. 딱 하나 아버지가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나쁜 놈이 가족 혹은 자식을 위협할 때 목숨을 내걸고 나서는 길 뿐이다.

199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에서 아버지는 설 자리가 없었다. 과거를 추억하는 복고풍의 영화에서조차 아버지는 가족 사진 속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의 빈 자리를 대신한 것은 선생님, 조폭 두목, 국가 등 강력한 권력이었다. 이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의 권위주의 혹은 독재권력과 불화했던 3040세대의 상상력을 반영했다. 

밥상의 맨 윗자리에 앉고서도 ‘눈칫밥’을 먹던 아버지들, 자격지심에 ‘고개숙인 남자’가 돼야 했거나 ‘간 큰 남자’로 조롱당했던 아버지들이 귀환한 것은 2000년 중반 이후다. 전통적인 가족질서에서의 ‘지배자’나 ‘가장’이 아닌 ‘보호자’나 ‘치안담당자’의 자격으로서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위기에 처한 자식을 구하려고 나선 아버지들의 활약이 유난히 자주 그려졌다. ‘괴물’이나 ‘그놈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더욱 두드러져 ‘아저씨’를 필두로 ‘파괴된 사나이’ ‘악마를 보았다’ ‘용서는 없다’ 등으로 이어졌다. ‘아저씨’에서 원빈과 김새론의 관계는 팬들이 ‘딸바보’라고 부르듯 ‘유사 부녀관계’라고 할 수 있다. 원빈은 아버지를 대신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 작품은 하나같이 잔혹한 범죄 대상이 되거나 희생된 아버지의 구출극 혹은 복수극을 그렸다. 최근에는 ‘나는 아빠다’가 자식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분투극을 담았다.

최근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등장한 것 중 하나는 ‘기러기 아빠’다. 교육때문에 자식과 부인을 외국에 보내고 홀로 남아 있는 외롭고 무기력한 존재. ‘즐거운 인생’(김상호)에서도 ‘우아한 세계’(송강호)나 ‘수상한 고객들’(박철민)에서도 아빠는 해고와 실직의 위협 속에서 가족을 위해 수모를 견디며 사력을 다하지만 전화 속으로 들리는 부인과 자식의 목소리는 차갑고 의례적일 뿐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아빠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영화 개봉작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마지막 여행을 다룬 외화 ‘알라마르’ 정도가 그나마 위안이다. 대화가 부족한 이땅의 아빠들은 영화 속에서도 외롭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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