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 5월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부모와 함께 놀이동산을 찾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아동실종가족은 5월이 즐겁지 않다. 오히려 아들, 딸을 잃은 슬픔이 더 커지는 ‘잔인한 달’이다. 어릴 때 실종돼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자라온 어머니가 16년째 자신의 딸을 찾지 못하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조병세(61) 씨가 부인 오재환(52) 씨와 결혼한 것은 1986년. 조 씨는 결혼 이후에야 오 씨의 성장과정에 대해 듣게 됐다.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에서 살던 오 씨는 6세 되던 해 가족과 헤어졌다. 이불에 오줌을 싸고 어머니에게 혼날까봐 아침 일찍 오빠와 함께 집을 나왔다. 오빠의 걸음걸이를 따라가지 못했던 오 씨는 이내 길을 잃고 일대를 헤매다 경찰에 발견됐다. 곧바로 당시 서대문에 있던 임시보호시설로 보내진 오 씨는 15일이 지나서는 대방동 고아원으로, 이후에 다시 독산동으로 옮겨 다니면서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실종의 아픈 기억을 지닌 채 성장한 오 씨는 조 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불행은 딸 하늘(당시 6세)이가 실종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1995년 6월 16일 오후 8시께 당시 재개발 지역인 구로4동 집 앞.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오 씨가 건네준 마른새우를 한 움큼 쥐고 집을 나가는 모습을 본 게 하늘이와의 마지막 순간이다.
하늘이를 닮은 아이를 봤다는 제보전화가 걸려 오는 곳이라면 조 씨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처음 일주일만 냈던 휴가는 한 달, 두 달씩 연장됐다.
급기야 2000년에는 회사에 사표를 냈고, 퇴직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2년여를 보내면서 남은 가족의 생활도 말이 아니었다. 부인 오 씨는 “나 때문에 하늘이를 잃어버렸다”는 자괴감에 대인기피증에 걸려 힘들어했다.
아들은 냉방에서 쪼그려 잠이 들고, 한창 부모의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에 사실상 방치됐다.
“이래선 남은 사람도 못 살겠다”고 생각한 조 씨는 목공일을 새로 배웠다. 직장을 구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2년 경기도 광주시 소재의 가구업체에서 다시 일을 시작한 뒤 인천ㆍ포천 등 경기도 일대에서만 회사를 8차례 옮겨 다녔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는 무조건 하늘이를 찾았다. 지역의 아동보호시설에서 문전박대 당하기가 다반사였고, 경찰과 동행해도 시설 공개를 거부당했다.
전국미아ㆍ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에서 활동 중인 조 씨는 지난달 28일 경찰청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주어진 10여분은 너무나 짧았다.
조 씨는 “각 경찰서에 실종전담반 2~3명만 배정해도 장기실종자는 줄어들 것”이라며 “장기실종과 여성청소년 사건을 모두 한 부서에서 담당하면서 실종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앞으로도 실종아동법 개정 등 실종가족의 목소리를 대변해 나와 같은 불행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고서는 물끄러미 하늘이 사진을 보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고개를 떨궜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