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기프로그램인 ‘DOING DAVIACI(다빈치 따라하기)’는 15세기 르네상스시대 만물박사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갖가지 도구, 공작기계들을 다빈치가 설계도를 그려놓은 대로 실제로 만들고 재현해보는 것으로 흥미진진하다. 개중엔 그 효능이 오늘의 관점에서도 놀라운 것들이 많아 다빈치의 진가를 높여주기도 한다.
18세기 초 조선 숙종조 어의였던 이시필이 쓴 ‘소문사설’(휴머니스트)은 비록 청나라 연행(燕行) 시에 보고 들은 신문물을 중심으로 소개해 놓은 것이지만 그가 직접 그린 정밀한 제작법과 설계도는 다빈치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저자가 그저 앞선 지식을 옮겨 적은 게 아니라 실정에 맞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현실적용성을 높이려 한 애씀이 엿보인다.
‘소문사설’이란 책 이름은 ‘생각이 고루하고 견문이 좁은 저자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하였다’는 뜻으로 겸손하지만 18세기 동아시아 생활지식의 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칼 만드는 법부터 쥐 잡는 기구, 기름 짜는 기구, 곡식 빻는 기구, 비누 만들기, 콩 뜨는 기구, 목화씨 빼는 기구 등 생업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과 자잘한 생활도구에 이르기까지 산업화 이전 웬만한 공기구 제작법들이 다 들어있다. 여기에 유리 조각하는 법, 수은 만드는 법, 물 얼리는 법, 마취하는 법 등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적용한 제법들도 수두룩하다. 쉰 술을 마실 수 있게 하는 법, 가짜 구리 만드는 법, 가짜 꿀 가려내는 법 등은 지금 봐도 호기심이 발동하게 하는 생활지식들이다.
이시필은 1678년 의과에 합격해 훗날 숙종의 어의가 된 인물이다.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이시필은 1694년, 1711년, 1716년, 1717년 등 청나라를 연행했다. 거기서 보고 들은 것들이 이 책의 바탕이 됐다. 또 조선의 전문가들로부터 관련 지식을 터득하기도 했다. 이는 신문물에 대한 그의 지적 호기심뿐 아니라 서민의 생활을 좀 더 낫게 만들려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 이용후생과 연결된다. 실학자들이 거시적 관점에서 조선사회의 개혁방안에 집중했다면, 이시필과 같은 중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인지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값지다.
소문사설은 한마디로 독특하다. 지금의 생물학, 화학, 광물, 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음식제조법, 처방까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두루 꿰어 있어 한 사람의 저술인지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시필이 숙종의 병환을 치료하는 어의였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다. 음식소개도 ‘식치방’이란 제목으로 소개돼 있다. 환자의 입맛을 돋우어 병세를 호전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는 게 대부분이다. 동아찜은 맛이 좋아 낙점을 받아 임금께 올렸다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붕어구이, 황자계만두, 날꿩장, 새끼돼지찜 등 귀한 음식, 마늘장아찌, 솜사탕, 호떡, 계란탕, 신선로 등 중국에서 배워온 것들, 병이 들어 밥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먹는다는 일본의 서국미 등 한ㆍ중ㆍ일 요리문화사도 짚어볼 수 있다. 레시피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적어놓았다. 이시필이 소개하는 맛도 있고 색깔도 고운 깍두기 요리법 하나. 새우젓을 물에 넣어 삶아 건진 뒤 생무를 큼직하게 썰어 담고 고춧가루를 섞어 놓으면 오래되어도 맛이 있고 그다지 짜지도 않다.
갖가지 지식정보 가운데 저자가 가장 정성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벽돌로 온돌을 만드는 새로운 온돌제작법이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본래 온돌은 대갓집이라 하더라도 노인과 어린아이들만 이용했다. 젊고 튼튼한 이들은 마루에 자리를 두텁게 깔고 겨울을 지냈는데 18세기 초반에 이르면 모두 온돌화되면서 대갓집에서는 노비의 방까지 온돌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땔나무가 바닥나 나무꾼들은 고충을 겪고 가난한 사람들은 땔나무가 없어 밥을 지어먹을 수 없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시필은 간단하게 설치할 수 있고 효율성이 탁월한 북경식 벽돌온돌법을 보급하는 데 열을 올린다. 자신이 숙직하는 곳을 시작으로 숙종이 아파 연잉군(후에 영조)이 간호할 때 쓰는 방 등에 설치하면서 양반들에게 적극 권한다. 이 온돌법은 구체적인 단계별 일러스트를 곁들여 현재에도 응용가능하다.
공청과 안경에 대한 내용도 자세하다.
공청은 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는 약재로 1714년 이후 숙종의 눈이 급격하게 나빠져 이시필이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안경은 근시용, 원시용, 난시용 안경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제작법과 원리를 설명해 놓았다.
그동안 역동의 시기인 18세기를 말할 때 실학자 중심의 철학과 세계관으로 설명돼 왔다면, ‘소문사설’은 중인의 눈으로 서민들의 삶을 재구성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롭다. 개중엔 황당한 내용도 없지 않지만 18세기 문화와 생활, 시정을 이해하는 데 구석구석 세부를 얻은 것 같은 생생함이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