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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오의 반도체’ 멤브레인 국산화 길열다
진단키트 시장 도전장 ‘움틀’ 박성률 대표
필터 100% 외국산...비싸고 공급 제멋대로
바이오의약품·체외진단기기 멤브레인 제조
창업 3년...착한 가격·친환경 소재가 경쟁력
국내 시장 발판 2025년 연매출 500억 달성
2030년 체내 삽입형 인공신장 개발 목표

〈면봉으로 체액을 채취한다→시약에 넣어 섞는다→키트에 세 방울 정도 떨어트린다→그럼 하얀 종이가 젖어가면서 빨간 줄이 한 줄 또는 두 줄로 나타난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사용법이다. 여기서 시약에 젖는 종이는 일종의 필터다. 코로나19로 급격히 성장한 체외진단키트 시장에서 이 필터는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이 필터는 100% 외국산 제품이 사용된다. 아직 국내에서 이 필터를 만들어 내는 곳은 없다. ㈜움틀(대표 박성률)은 이렇게 외국산이 독점한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국내 스타트업이다.

움틀은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을 제조한다. 멤브레인이란 크기가 다른 물질을 분리해주는 일종의 필터다. 바이오 분야뿐만 아니라 식음료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정수기 등에는 말할 것도 없고 드라이맥주, 유당을 제거한 우유 등에도 멤브레인이 사용된다.

멤브레인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마켓앤마켓과 관세청 자료 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멤브레인 시장은 16조원 규모로 파악된다. 이 중 연평균 11%의 성장을 보이는 바이오산업 관련 멤브레인 시장이 6조원을 차지한다. 국내 바이오 멤브레인 시장 규모는 4000억원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시장이 더 커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움틀은 바이오 분야 그 중에서 바이오의약품과 체외진단기기의 멤브레인을 제조하고 있다. 박성률 움틀 대표는 “바이오의약품이나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포 또는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세균, 바이러스, 부산물과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며 “멤브레인이 이를 걸러내 고순도의 항체만을 통과시킨다. 진단기기에서도 항원·혈액·찌꺼기 등을 거르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던 박 대표는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환경의 미래는 멤브레인”이라는 교수의 말에 솔깃해 멤브레인을 연구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를 마치고 롯데케미칼 연구소에서 멤브레인 연구를 하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에서 바이오 분야를 평가를 담당하게 된다.

박 대표는 “당시 만났던 많은 연구자, 사업가들이 바이오산업용 멤브레인 제품의 국산화가 되지 않다보니 비싸고 공급도 원활하지 않은 외국 제품을 쓸 수 밖에 없다는 하소연을 들었다”며 “그동안 쌓아 온 멤브레인에 대한 경험과 기대를 갖고 국산화를 위해 산기평 임직원 1호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럼 멤브레인 국산화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는 반도체 공정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온전히 국산화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박 대표는 “바이오 멤브레인의 국산화는 반도체 공정의 소부장과 유사한 맥락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ASML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이유는 그들이 반도체 원부자재 공급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멤브레인시장도 글로벌 3개 업체가 거의 독점하고 있어 수요자가 공급자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제2의 반도체로 기대를 받고 있는 바이오산업에서 멤브레인의 국산화는 매우 중요한 숙제”라고 덧붙였다.

움틀은 창업 2년 만에 두 개 제품을 개발한 속도와 기술력을 갖고 있다. 움틀이 개발한 보틀탑 필터나 원심분리여과기, 체외진단용 NC멤브레인은 기술적으로 동등하며 외국산 제품 대비 30% 이상 저렴한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 특히 ESG를 위한 친수성 신소재를 사용, 생태계 독성을 최소화한 용매로 제작된다.

움틀은 코로나19로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9년 말에 세워진 움틀은 당초에는 바이오의약품 멤브레인을 제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진단키트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움틀은 우선 진단키트에 들어가는 NC멤브레인 개발에 매진했다.

박 대표는 “진단키트에 들어가는 NC멤브레인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바이오의약품 멤브레인을 개발하는데 쓰려는 계획이 있었다”며 “하지만 4월부터 확진자가 급감하며 키트 수요도 줄었다. 키트 업체들은 미리 확보해 놓은 재고도 소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껏 개발한 키트용 NC멤브레인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환경에도 움틀은 국내 바이오의약품 시장 진출을 발판 삼아 향후 글로벌 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다. 박 대표는 “우선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같은 국내 바이오기업들에게 선택받아 멤브레인을 공급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며 “이를 통해 2025년 연매출 5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30년에는 친수성 소재와 축적된 여과 기술을 가지고 체내 삽입형 인공신장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박 대표는 움틀과 같은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지원제도는 글로벌에서도 우수한 편이다. 다만, 예비창업부터 창업 3년 이내까지만 잘 돼 있고, 이후 ‘죽음의 계곡’이라 할 3~7년 사이 대폭 감소한다”며 “7년을 넘어가는 기업들은 거의 지원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된다.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한 스타트업에 정부의 자금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인규 기자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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