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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 세월이 만든 벽…얼떨결에 만나고 나니 더 그리워”
북녘 가족 한번씩 만나고 온 그들

“오랜만에 만난 혈육 北 자랑만 하고
“안타까운 이질감에 재회생각 없었는데
“헤어진 뒤엔 생사확인조차 안되니…”

“2시간씩 여섯 번으로 쪼개서 만나더라. 낯선 사람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정이 오갈 수 없었다.” “이산가족상봉한 사람 중엔 두 번 다시 상봉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일부터 시작된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먹먹한 가슴을 달래는 또다른 이산가족이 있다. 이미 북녘에 두고온 가족을 한 번씩 만나고 온 이산가족상봉 경험자다. 이들은 “차라리 모르고 살면 그립지나 않을 것을, 통일이 되기 전엔 다시 못 볼 이들이 사무치게 그립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산가족상봉 방식과 관련해 한 편에 묻어뒀던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쏟아냈다. 

20일 남측 이산가족상봉 대상자 집결지인 속초 한화콘도에서 남측 최고령자인 김성윤(96ㆍ오른쪽) 할머니를 비롯한 이산가족들이 버스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지금도 임진강 너머로 또렷하게 보이는 경기도 연천군 서남면이 고향인 문대권(82) 씨는 2010년 추석맞이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대신 개성에 살고 있다는 사촌누이를 만나고 왔다. “우리 어머니까지 생사 확인을 7명 신청했는데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누이 한 명이더라.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게지”라며 너무 늦은 만남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정작 문 씨가 만난 사촌누이와 조카는 조금 낯선 이들이었다. 가장 큰 차이는 말에서 드러났다. “남쪽에서 사업이라 하면 가업을 잇는다든가 큰 일을 하는 걸 말하는데, 거기선 당국에서 병아리 다섯 마리 줘서 고모가 키우고 있는 걸 양계사업이라 하더라. 생각하는 게 아예 달라져버린 것 같다”며 당시 느낀 당혹감을 전했다.

상봉 행사 진행방식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60년 만에 만나니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2시간씩 여섯 번으로 쪼개서 만나더라. 그것도 면회장을 한 바퀴 빙둘러 감시하고. 낯선 사람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정이 오갈 수가 없었지.”

금강산 구경 안 해도 좋으니 가족끼리 좀더 긴 시간 오붓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단다.

“막상 얼떨결에 만나고 헤어지고 나니 그리움만 더하다. 그 뒤에 살았나 죽었나 서신 연락이라도 최소한 했으면 좋겠는데 인도적 행사라면서 그것조차 안 되니 그게 아쉽다”고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2010년 당시 상봉에 나선 이산가족 중 최고령이었던 김부랑(101ㆍ여) 씨는 작별상봉에서 이복 딸 권오령 씨와 외손자 장진수 씨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전날 샤워를 하다 넘어져 부상을 당해서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난 것이 충격이었던지 정신이 조금 혼미해져서 생긴 사고였다”고 함께 동행했던 아들 권남수(가명) 씨는 말했다. 낯설다 못해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가족의 모습은 60년 동안 달라진 남북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남쪽에선 전쟁을 일으킨 철권 통치자인 김일성 주석에 대해 북한 사람들이 종교에 가까운 찬양 쏟아내는 것을 듣다보니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내려갈수록 통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북녘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자랑만 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지 못하다 보니 이산가족상봉한 사람들, 동행한 가족 중엔 두 번 다시 상봉할 생각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고 권 씨는 전한다. 스스로도 “이럴거면 차라리 서로 다른 나라로 외교관계를 맺고 가끔 만나면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권 씨는 “일흔살 이상 넘어가는 이산가족들 다 돌아가시고 나면 젊은 세대에겐 통일은 남의 일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남북 양쪽의 젊은 사람들이 서로 오가야 한민족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씨 역시 “지금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도 우리 말을 잘 쓰지 않느냐”면서 “말뿐만 아니라 남북의 모든 차이가 교류가 있으면, 왕래가 있으면 자연히 없어지지 않겠느냐”며 남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산가족의 가장 간절한 바람은 남북이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이다. 문 씨는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귀를 다쳐 보청기를 써도 소리가 잘 안 들린다며 “기성세대가 고생할 거 다했으니 젊은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원호연ㆍ이정아 기자 오수정 인턴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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