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둥 하중 25% 이상인 곳 찾기 힘들어”
“중소형은 사실상 안전점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
‘정부가 입주민 막연한 불안만 가중시켰다’ 비판도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이렇게 하면 사실상 민간 아파트 주거동을 무량판 구조 안전점검 전수조사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한다는 거 아닌가요!”
국토교통부가 지난 18일 안전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무량판 구조 민간 아파트 주거동의 안전점검 대상 기준을 제시하자, 한 주택업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정부가 제시한 주거동 무량판 구조 안전점검 대상 기준에서 가장 주목해야하는 건 무량판 구조와 벽식 구조가 혼합된 ‘혼합구조 주거동’의 경우, 천장의 전체 하중 중 ‘기둥 분담 하중’(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기둥이 받는 하중)이 25% 이상인 경우로 조사대상을 한정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혼합구조 주거동은 무량판 구조로 지은 기둥이 담당하는 천장 하중이 25% 이상이어야지 이번 안전점검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천장의 하중의 75% 이상 ‘내력벽’이 받쳐준다면 사실상 벽식으로 보고 무량판구조 안전점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LH 아파트에서 보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 |
국토부와 함께 혼합구조 주거동 안전점검 대상 판정 기준을 마련한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이하 구조기술사회)에 따르면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주거동이 있는 민간 아파트 105개 단지는 사실상 거의 100%가 ‘혼합구조’다. 민간 아파트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가 있다는 건 벽식과 무량판 구조가 동시에 적용돼 있는 혼합구조를 두고 한 말이다.
이 ‘혼합구조 주거동’은 주로 하중을 많이 받는 엘리베이터 방향과 주방 방향 벽 등 사방 벽을 천장 무게를 버티는 ‘내력벽’으로 짓고, 가구 내부 일부에 보 없는 기둥을 설치(무량판 구조)한 후, 경량벽(하중을 받지 않아 칸막이 역할을 하는 벽)을 적용한다. 실내엔 고정된 내력벽이 많지 않으니 설계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리모델링도 쉬워 건설사들이 이런 혼합구조를 많이 선택하고 있다.
혼합구조 주거동에서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무량판 구조의 기둥이 전체 천장 하중의 25% 이상을 담당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주거동의 경우 대부분 벽식으로 짓는데 내부 공간이 클 경우 무량판 구조의 기둥을 한 두개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기본적으로 내력벽이 감당하는 하중이 많기 때문에 이런 기둥이 전체 부담하중의 25% 이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와 이번 민간 아파트 안전점검 기준을 마련한 구조기술사회도 마찬가지 판단이다. 구조기술사회는 다만 건축구조 특성상 40평형대 이상(공급면적 145~152㎡) 일부 크기에선 ‘천장의 전체 하중 중 기둥 분담 하중 25% 이상’ 기준에 부합하는 아파트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영인 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아파트 주거동 내부에 시공되는 기둥의 하중은 안방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실내 기둥의 수, 창가 쪽에 기둥을 하나 더 두느냐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아파트 내부 크기가 커야 무량판 기둥 분담 하중 25% 이상 조건에 부합하는 단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대로 가장 많이 짓고 있는 전용면적 84㎡ 이하 중소형 크기에선 무량판 구조를 적용했다고 해도 실내에 기둥이 한 개 정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둥 분담 하중 25% 이상인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작은 크기 아파트는 혼합구조 주거동이어도 안전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어 대부분 이번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주택건설업계에선 아파트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곳이 있어 위험하다는 인식은 과장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부분적으로 무량판 구조로 기둥을 설치한 곳이 있어도, 기둥 분담 하중이 25% 이상을 넘지 않아 대부분이 이번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택업계 한 관계자는 “국토부가 처음엔 민간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 적용 단지가 있다고 해서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면서 “주거동은 결과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없는 없는 중소형 크기의 혼합구조가 대부분인데, 막연히 국민 불안 심리만 자극했다”고 비판했다.
국토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민간 아파트 가운데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곳은 293개 단지, 25만가구 규모다. 이중엔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단지는 105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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