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평균 1억원 이상 급락…역전세 불가피
전체 전세의 53% 갱신계약이 안전판
“이미 전세 많이 떨어져 추가 하락 하진 않을 것”
“‘DSR 완화’ 등 정부 대응도 시장 부담 줄여”
지난해부터 이어진 부동산시장 가격 하락세로 인해 주택 매매시세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깡통전세’ 위험가구가 16만호를 넘어섰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온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 상가 공인중개사 사무실 창문에 아파트 급매물과 상가 임대 등 현황이 붙어 있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수도권 전셋값이 최고점에 이르렀던 2021년 6월~2022년 5월 ‘신규’ 전세계약(계약일 기준) 규모가 19만6902가구였다는 건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수도권 주택시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수도권 전체 전세거래(41만8383건)의 47.1% 규모로 결코 작지 않다. 당시 최고가격으로 전세계약을 한 후 최근 1~2년간 전셋값이 급락하는 바람에, 향후 재계약을 할 때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작게는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전세 보증금을 내줘야 할 처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세 고점이던 2021년12월 대비 올 5월까지 수도권 아파트 전세는 15.32%나 떨어졌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하반기 주택시장에 ‘역전세난’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잘못 대처하면 매매시장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역전세난이 심화하면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집주인들 중엔 급매물로 집을 내놓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역전세발 위기가 매매시장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역전세난 최고 변수 ‘갱신계약’= 당시 수도권 전세 계약 중 ‘갱신계약(재계약)’ 물량(52.9%. 22만1481건)은 역전세난 확산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재계약 물량 중 전셋값 상승폭을 5% 이내로 제한한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가구(9만169건)는 역전세 우려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전셋값을 4년 전인 2019년 12월 전후 수준에서 5% 이내 인상폭만 적용받아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4년 전인 2019년 12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평균은 4억4446만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5% 올려 2021년 재계약을 했다면 4억4668원 정도 수준에서 계약이 진행됐을 것이다. 이는 현재(5월 기준 5억1072만원) 수준보다 낮아 역전세 상황이 아니다. 수도권 전체 아파트 기준으로도 2019년 12월 전세 평균이 3억643만원이고, 현재 3억5277만원이어서 역시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줘야할 상황은 아니다.
재계약 물량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경우는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보증금 인상폭을 줄여 굳이 법적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고도 세입자와 원만히 합의한 경우다. 집주인이 알아서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전셋값을 올리거나,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계약기간을 조정해 준 경우, 오른 전셋값 일부를 월세로 돌린 ‘반전세’ 계약 등이 있을 수 있다.
예를들어 서울 서초구 서초래미안 84㎡ 전세의 경우 2022년 4월 기존 8억5000만원에서 9억원으로 계약갱신청권을 쓰지 않았는데도 5% 대만 높여 재계약을 진행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삼성’ 84㎡ 전세는 2022년 5월 직전 보증금과 같은 16억원에 계약이 이뤄졌는데, 계약기간이 1년3개월 수준으로 짧았다. 집주인 입장에서 빨리 내 보내고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동작구 상도동 힐스테이트 상도센트럴파크 84㎡는 2022년 5월 기존 6억6000만원이던 보증금을 9억원까지 2억4000만원이나 올려 재계약을 했는데, 세입자가 청구권을 쓰지 않았다. 세부 내용을 보면 거주 기간이 2022년5월에서 2025년 5월로 일반적인 2년 계약이 아니라 3년 전세계약을 맺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증금 인상폭이 높은데 세입자가 청구권을 쓰지 않은 경우는 장기 거주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3년 계약하고, 다시 재계약할 때 청구권을 쓰면 안정적으로 5년 거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전세난 확산 우려만큼 심각할까=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에 공포심리를 확산시키는 역전세난 우려가 예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당장 전셋값 하락세가 멈추고 반등하고 있다는 걸 주목한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월 중순 이후 지난주(12일기준)까지 4주 연속 오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역전세난 확산 우려와 전셋값 추가 하락 여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며 “최근 1년간 전셋값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추가로 하락하긴 어렵다”고 봤다. 그는 “이미 전셋값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결혼이 증가하고, 금리 안정 효과로 월세에서 전세로 이동하는 가구가 늘고 있으며, 빌라 전세사기와 역전세난 심화로 아파트 전세 수요가 더 증가하는 상황”이라며 “전셋값 상승요인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개업소에 나온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올 1월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올 1월12일 5만5882개였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수가 꾸준히 줄어 이달 16일 기준 3만4952개로 줄었다.
정부가 역전세 위기를 줄이기 위해 임대인에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역전세 리스크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지해 팀장은 “정부가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기 위한 목적의 대출에 DSR 적용을 제외해 준다면 역전세난 위기는 큰 위기 없이 지나갈 것”이라며 “최근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이 바닥을 찍은 상황이어서 위기가 더 심화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서울의 경우 입주량도 줄고 있고, 내년 이후 수도권 다른 지역도 일부를 제외하면 주택 공급량도 부족한 편이어서 전세가 계속 하락할 상황은 아니다”면서 “전셋값이 반등한다면 내년 상반기를 지나면 역전세 위기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jumpcu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