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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죽쑤는데, 한국 백화점은 왜 날아오를까 [언박싱]
서울의 한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 [연합]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국내 백화점 3사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선방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신세계는 연간 기준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롯데쇼핑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9.9% 증가했다. 엔데믹 전환 이후 억눌렸던 패션·뷰티 수요가 급증하면서 백화점이 실적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한 결과다. 특히 식지 않는 해외 명품 인기가 호실적으로 이어졌다.

이는 오래된 유명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일본과 정반대다. 도쿄 최고의 번화가인 시부야에서 55년간 영업해온 도큐 백화점 본점은 5일 폐점됐다. 52주년을 맞이한 도쿄 시내의 유명 백화점, 122년 역사를 가진 홋카이도의 오래된 백화점도 지난달 문을 닫았다. 세이부 백화점을 운영하는 일본의 유통 대기업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성장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며 지난해 12월 백화점 부문을 매각했다. 2008년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진행된 백화점 연쇄 폐점이 15년 만에 일본 도심까지 뻗은 것이다.

반세기 만에 문 닫은 일본 도쿄 시부야 도큐백화점 본점. [연합]
일본의 중산층 쇠퇴 악순환…끊이지 않는 백화점 폐점

한국과 일본의 백화점이 이처럼 다른 행보를 보이는 데는 중산층의 몰락으로 인한 일본의 가계소득 정체가 주효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일본의 ‘위탁 매입제’ 등 백화점 유통 구조도 혁신에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우선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중산층이 소비 여력을 잃으면서 백화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2020년 일본 전체 백화점 매출은 1년 전에 비해 25%나 급락했다. 2008년과 비교하면 무려 반토막(58%)을 넘어섰다.

일본 도쿄 시부야 도큐백화점 직원들이 폐점을 앞두고 마지막 영업을 마친 뒤 인사는 모습. [연합]

특히 명품에 돈을 쓰는 ‘개인(부유층)’에 기댄 미쓰코시·이세탄 백화점보다 ‘대중(중산층)’을 공략한 세이부 백화점의 부침이 더 컸다. 교외 지역 대형마트나, 일본의 이케아로 꼽히는 니토리, 일본 내 1위 이커머스 채널인 아마존 등에서 ‘가성비’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아졌고, 이로 인해 중산층을 겨냥한 ‘대중 백화점’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는 게 백화점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 일본 후생노동성의 국민생활 기초조사에 따르면 일본 가구의 중위 소득은 1995년 550만엔(약 5272만원)에 달했지만, 2018년엔 437만엔(약 4188만원)으로 줄었다.

‘세계 1위’ 한국 MZ 강타한 명품 사랑
명품 매장 앞에서 오픈런을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모습. [연합]

일본의 소비 양극화가 한층 짙어진 가운데, 물가 수준을 고려한 구매력 평가 환율(PPP)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20년부터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실제 한국은 2018년부터 미국 대비 70%를 넘어섰다.

이와 함께 대표적으로 한국에서는 ‘명품 플렉스(돈 지르기)’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본과 한국 모두 경기 침체와 함께 명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한 명품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0만4000원)로 세계 1위로 추산됐다. 집값 급등에 따른 주택 소유자들의 도취감과 자산 사다리에 올라타지 못한 젊은 층의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 가치관이 그 배경으로 분석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품 브랜드의 입점 여부에 따라 한국의 백화점 매출 증가폭도 갈린다. 우리나라 5대 백화점 점포 66곳 가운데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이 입점한 점포는 7곳에 불과하다. 특히 백화점 3사 가운데 신세계 백화점이 가장 높은 수준의 호실적을 기록한 데는 7곳 중에서 무려 4곳을 차지한 ‘명품 불패’ 전략이 시장에 먹혀들어 간 결과다.

패러다임 바뀌었다…시장 변화 감지해야

새로운 소비 주체의 수요를 감지해 빠르게 변화하지 못한 일본의 특수한 유통 구조도 문제로 거론된다. 매출 감소폭이 큰 일본 백화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위탁 매입제’다. 위탁 매입제는 진열한 상품 중 팔린 상품만 정산하고 남은 제품은 제조사나 브랜드 관리 업자에 반품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상품 단위 상품기획(MD) 기능이 필요치 않아 효율적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는 편집숍, 카테고리 킬러 상품, 패스트 패션, 패션 전문 이커머스 등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채널이 확대된 상황에서 성장에 발목을 잡았다.

국내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위탁 매입제로는 고객의 감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라며 “백화점에서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가 판매된 물건 정도뿐이다. 반품되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고객의 감성을 움직이는 요소 등이 무엇인지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품 소싱만이 아닌, 상품 기획과 함께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 연출까지 다각도에서 컨설팅하는 국내 백화점과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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