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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활인검의 진짜 의미를 살려야 할 때

무술·무협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활인검’이라는 말을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흔히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래도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너도 같은 살인자가 되지 마라’ 같은 대사와 함께 상대를 죽이거나 상처 입히지 않으면서도 제압하는 강자의 여유 혹은 용서하는 자비를 뜻하는 것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원래 활인검은 썩 좋은 의미로 쓰였던 말이 아니다. 그 시초는 ‘살인도활인검’이라는 불교 용어로, 죽이고 살리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칼처럼 수행자들을 쥐락펴락하며 가지고 노는 선승의 기지를 비유하는 표현이었고, 또 일본 에도시대에는 야규 무네노리라는 사람에 의해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까닭 없이 죽는다. 살인도를 써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면 살인도가 곧 활인검이 된다”고 말하면서 “죽어 마땅한 한 사람을 죽여서 만 명을 살린다”는 ‘살인과 폭력의 정당화’를 위한 개념으로 바뀌어 쓰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신카게류라는 검술유파에서 ‘상대를 움직여서 쓰는 칼’, 즉 상대를 유인해 카운터 공격을 날리는 기술들을 ‘활인검’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고도 제압할 때가 많아 지금 흔히 쓰이고 있는 뜻으로까지 확장돼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시합(試合)은 원래 사합(死合)이었고 서로 죽인다는 뜻’이라는 얘기도 흔히 하는데 일본어로 두 단어가 같은 ‘시아이’로 발음돼 나온 말로,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꽤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고 비장한 맛이 있다 보니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서로 죽인다는 뜻으로는 살합(殺合·코로시아이)라는 말이 버젓이 존재한다. 시합(試合·시아이)는 연습해온 기술을 상대와 맞춰본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오히려 검도 8단 하야시 구니오는 시합은 ‘사합(仕合)’이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합(仕合) 역시 발음은 ‘시아이’로 같으며, 사(仕) 자는 봉사하다 등에 쓰이는 글자로 ‘모시다, 섬기다’ 등의 뜻이 있다. 쉽게 ‘상대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단순히 기량을 겨루는 시합(試合)이라면 자신이 이기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거나 알량한 꼼수에 매달리게 되기가 쉽지만 사합(仕合)은 상대와 내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두 사람이 모두 필사적으로 자기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서로의 기술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쌍방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요즘 우리 사회를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라고 한다. 남이야 어찌 되든 혹은 타인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나만 잘 되면 그만이고, 남을 위해서 내가 작은 손해를 보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며, 나의 선택이 최선이자 정답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타인의 의견이나 취향을 깎아내리고, 조금만 잘못된 점이 보이면 죽일듯이 달려들어 물어 뜯기에 급급한 모습들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모두가 살인검을 휘두르고 있는 셈인데 이러면 결국 모두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제로섬게임이 될 뿐이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내어 줄 수 있는 ‘활인검’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김기태 대동류합기유술 한국본부장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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