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 입주한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서영상 기자]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강남구 소재 신축 아파트에 세입자로 사는 A씨는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8월까지 전세 보증금 10억원에 사는 현재 집을 보증금 18억원 또는 15억원에 월세 9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2년 전 이미 계약갱신청구권까지 써버린 상황인 만큼 보증금을 못 올려주는 경우 집에서 나와야 한다. 증액 규모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만큼 협상의 여지도 없다.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만난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A씨의 사연을 소개하며 “인근 구축 아파트 중 A씨 아이들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보증금 10억원에 갈 수 있는 곳을 같이 고민했다”고 귀띔했다.

지난 2020년 7월 31일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 기간(2+2년)이 만료가 가까워져 오며 집주인들의 전세금 증액요구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월세 증액 요구를 할 때는 2020년 12월 이후 임대차계약은 전월세 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2020년 12월 이전 계약은 1개월 전까지 계약 갱신거절 통지나 계약조건 변경 통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대표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집주인들에 증액요구를 통지받은 경우는 드물지만, 전세 증액을 앞두고 혼자 고민하다 A씨처럼 상담받으러 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라버린 신축 아파트들의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는 수요가 구축 아파트 또는 주변 빌라들에 몰려들 것으로 예상했다.

예를 들어 2018년 12월 입주가 이뤄진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가 당시 전세 보증금이 7억원대였지만 현재는 12억원에 형성되어 있다. 이미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버린 임차인들이 올라버린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헬리오시티에서 나와 1988년에 지어진 올림픽훼밀리 타운 전용면적 84㎡에 전세 보증금 8억여원(최근 호가)을 주고 안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올라버린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구축 아파트를 찾는 경우가 많아질 경우 구축 아파트 전셋값이 소폭 오르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치동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아이들의 학교 문제나 직장과의 거리 때문에 임차인들이 주거 환경을 옮겨 다른 동네로 이사가기보다는 가진 돈에 맞춰 근처 집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대치동 근처는 8월 방학 수요와 겹치며 구축 아파트들의 전셋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우선 전세매물의 증가세도 전셋값 상승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8일 기준 서울 전월세 매물은 4만 3600건으로 한달 전인 5월 18일(4만 2005건)보다 3.7% 늘어났다.

만약 전셋값이 오른다고 할지라도 오른 전셋값이 집값을 끌어올릴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석이 많았다.

오르는 금리와 집값 고점 인식 탓에 집값이 주춤하는 분위기인데, 전셋값의 소폭 상승으로 집값을 끌어올리기는 힘이 다소 약할 것이라 분석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둘째 주(13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0.02% 하락해 전주(-0.01%)보다 내림폭을 확대했다. 지난달 30일 조사 이후 3주 연속으로 하락세를 이어간 것이다.

대치동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셋값이 집값을 끌어올리는 것도 추가 집값 상승을 예측하는 새세입자들이 많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최근 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세입자들이 위험을 감당하지 않으려 한다. 또 전세자금 대출은 매입자금 대출에 비해 아직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로얄층들까지도 5000만원 수준의 호가를 낮춘 급매물들이 나오지만 찾는 손님은 없다”며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대출받은 돈을 걱정하며 향후 집값 흐름을 물어오는 집주인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