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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비박스 ‘벼랑 끝 아이’ 셋을 입양했습니다 [유령아이 리포트]
〈3부〉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 ② 경기도 광주 사남매 이야기

오후 3시를 넘기자 주아와 주언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경기도 광주 초월읍의 ‘4남매’가 비로소 완전체로 모이는 순간이다. 집안은 왁자지껄해졌다. 넷플릭스에서 뭘 보느냐를 두고 형제들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진다. 맏이인 주아(초등학교 3학년)는 동생들 보는 건 시시하다며 엄마 김세진(40) 씨에게 투정했지만 결국 져줬다. 그러다가 누군가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TV는 제쳐두고 다들 옹기종기 모여앉아 색연필을 잡았다. 영락없는 형제들이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광주 김세진 씨 가정에서 만난 4남매 [사진=유충민 PD]

김 씨의 가정은 요즘 흔하게 보기 어려운 다둥이네다. 아이들이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다. 주아만 세진 씨 부부의 ‘생물학적 자녀’고 둘째 주혜(입양)와 셋째 주언(입양), 막내 주성이(가정위탁)는 ‘마음으로 낳은’ 아이들이다. 세진 씨는 10대 시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자연스럽게 한부모 가정과 그 아이들의 존재를 곱씹게 됐다. 그 시절 ‘업둥이’를 키우는 가정을 소개한 다큐멘터리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나도 혹시 저런 아이들 키우게 될 상황이 오면 키워야지’하는 작은 다짐을 했다.

세진 씨의 남편은 시쳇말로 입양엔 ‘1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다가 6주만에 유산하는 일이 있었다.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아내를 보더니, 남편이 “입양을 해보자”고 했다.

형제의 탄생

세진 씨가 입양한 주혜·주언, 가정위탁을 하고 있는 주성이는 모두 베이비박스(영아긴급보호소)에서 발견된 아이들이다. 입양기관에 맡겨진 아이들은 생모, 생부가 최소한 출생신고는 마쳤다. 하지만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대개 존재가 기록되지 않은 상태다.

“어쨌든 입양기관에 맡겨진 아이들은 생모가 출생신고까지 하는 정성을 보였지만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엄마가 힘들게 낳고서도 출생신고는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잖아요. 더 벼랑 끝에 있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왕 (입양) 할거면 그런 아이들 하는게 낳겠다 싶었죠.”

첫째 주아와 둘째 주혜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유충민 PD]

가장 먼저 입양한 아이는 주언(셋째)이다. 2015년 12월에 태어났다. 경기도 군포에 베이비박스에 맡겼다. 태어난 날짜와 시간를 적은 쪽지와 함께였다. 이후 경기남부일시보호소를 거쳐 평택에 있는 한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이곳 보육원장이 후견인 자격으로 아이의 출생등록을 마쳤다.

세진 씨 부부는 이듬해 여름 주언이를 처음 만났다. 7개월쯤 됐을 때였다. 부부는 아이의 표정없는 얼굴을 잊지 못한다. ‘뭔가 불안해 하는 얼굴’로 세진 씨는 기억한다. 아이를 안았더니 작은 손으로 옷깃을 꽉 쥐었다고 했다. “되게 가엾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랬던 주언이는 이제 형제들 가운데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웃는다.

가정법원에 입양 허가를 신청을 했다. 스무가지가 넘는 서류를 제출했고 법정에 출석해 심문도 받았다. 판사는 무슨 마음으로 입양을 하는지, 어떻게 키울지 등을 물었다. 법원의 입양허가가 나오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주언이는 그해 가을 어엿한 부부의 ‘친양자’가 됐다.

베이비박스. 왼쪽은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것이고, 오른쪽은 경기도 군포 새가나안교회 모습이다.[사진=박준규 기자]

둘째 주혜는 2013년 2월에 세상에 났다. 생모가 100일까진 직접 키웠다고 했다. 그러다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에 맡겨졌다. 생모는 ‘출생신고를 못 했습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염치없지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쪽지를 남겼다.

주혜는 일시보호소를 거쳐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지자체장이 일찌감치 성본창설을 하지 않은 까닭에 출생등록이 늦게 이뤄졌다. 보육원 원장이 성과 본을 만들었고 출생신고까지 마쳤다.

세진 씨 부부는 한 입양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에서 주혜를 처음 봤다. 입양돼 떠나는 아이들을 위해 보육원에서 열린 송별회 영상이었다. 친구를 보내주는 처지였던 영상 속 주혜는 서럽게 울었다. 세진 씨는 “그 모습이 마음에 사무쳤다”고 말했다. 부부는 1년을 기다렸다가 주혜가 여전히 보육원에 있다면 입양하기로 했다. 아이는 여전히 보육원에 있었다. 2018년 2월 말, 6살 주혜는 세진 씨의 새 가족이 됐다.

마음의 상처…그리고 만난 막내
[유충민 PD]

주혜 입양을 진행하면서 세진 씨는 가정법원의 가사조사와 면접을 거쳐야 했다. 이미 아이를 입양한 가정이 또 입양을 하겠다고 나서면 법원은 더 까다롭게 본다. “남편이 혼자 경제활동을 하는데 아이 셋을 어떻게 키우려 하느냐. 애 하나 키우는데 몇 억원이 든다는데….” 세진 씨의 면접을 담당한 조사관의 질문은 에두르는 법이 없었다.

세진 씨는 침착하게 “그저 벼랑 끝 아이들의 부모가 되고 싶었다. 기본적인 것만 잘 해주면서 키우겠다”고 대답했다. 그래도 조사관의 고압적인 태도는 마음에 상처를 냈다.

“(주언이에게) 남자형제를 만들어 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면접 트라우마가 생겨 입양을 선뜻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주변에서 가정위탁을 소개했어요. 지자체에서 재정적인 지원도 나온다는 걸 알았죠.”

막내 주성이(2019년 1월생)도 군포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였다. 군포시장이 성과 본을 창설했다. 세진 씨 부부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던 날 주민센터에서 주성이의 출생신고와 전입신고를 마쳤다.

“아이의 뿌리를 일러줘야”
주혜의 생모가 베이비박스에 남겼던 편지. 김세진 씨는 편지 복사본을 주혜에게 보여줬다. [김세진 씨 제공]

‘뿌리’는 아이가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세진 씨는 생일 때마다 “오늘은 낳아준 엄마에게 감사하는 날이야. 건강하게 잘 품고 낳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해”라고 일러준다. 그는 입양부모가 생모를 무시하면 아이의 인생 출발을 무시하는 거라고 믿는다.

아이들의 생모가 남겼던 편지와 아이들을 감싸고 있던 속사개, 겉싸개를 베이비박스에서 받아다가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주혜는 낳아준 엄마가 남긴 편지를 처음 읽던 날 “날 낳아준 엄마가 진짜 있었어!”하면서 하루종일 싱글벙글이었다고 했다.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입양가정에서 벌어진 학대 사례는 세상의 공분을 샀다. 입양가정인 세진 씨 부부도 마음이 아팠고, 착잡했다.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슬로건이 무섭게 다가왔어요. 가해자들은 입양을 해서 아이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버린 거죠. (학대를 받은) 아이가 만약 입양이 안됐으면 인생이 어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고요. 입양 가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어느정도 받아들여야겠죠. 다만 일부는 너무 전체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촬영·편집=유충민 PD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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