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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인 돼도 학교폭력은 트라우마…처벌 문의 줄이어”[촉!]
“20·30대에서도 학폭 상담 문의 있어”
성인 되면 가해자에 대한 법적처벌 어려워
형법상 폭행·특수협박 등 3~7년 공소시효
민사상 손해배상도 3년 지나면 불가능
전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을 문제”
“학폭위를 통한 학폭 피해 회복에 한계 있어”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소속 ‘쌍둥이 자매’인 이재영(왼쪽)·다영 선수. 지난 10일 두 선수가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과거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20대 초반 여성 A씨는 중학교 때 당한 집단 따돌림(왕따)으로 인해 자퇴했다. 자퇴 이후에도 그는 트라우마로 인해 고등학교 생활을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어느 날 용기를 낸 A씨는 가해자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먼저 연락을 했다. 가해자들에게 원했던 것은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였지만, 돌아온 것은 “무슨 사과를 하라는 것이냐. 협박죄로 고소하겠다”는 적반하장식 대답이었다.

A씨는 놀란 마음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가해자들을 법적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문의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 처벌도, 민사상 손해배상도 모두 가능하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배구계를 중심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제기되면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과거 자신도 피해를 입었다는 ‘폭투(폭력+미투)’ 공론화가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과거 학교폭력 충격을 잊지 못하고 가해자 처벌 방법을 묻는 문의가 꾸준히 있다”고 말한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는 19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성인이 됐음에도, 과거 학교폭력을 잊지 못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방법을 묻는 문의나 상담이 매달 1~2건은 있다”며 “20대 초반의 성인뿐 아니라 30대 중에도 가해자 처벌 방법을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노 변호사는 “학교 선생님, 상담사,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나갈 때에도, 강의 끝나고 꼭 1~2명가량 본인의 과거 학교폭력 피해 경험담을 얘기하며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경우가 있다”며 “학교폭력상담사로 일하는 사람 중에서도, 과거 자신이 피해 입은 것을 잊지 못해 질문해 오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어하지만, 사과를 듣는 것 뿐 아니라 법적 처벌을 가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가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거의 불가능하다. ‘법적으로 소(訴) 제기가 가능한 시기’를 이미 넘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은 일반 형법상 폭행죄·모욕죄·특수협박죄 등으로 처벌 가능한데, 이들 죄명의 공소시효는 3~7년이다. 가해자에게 민사소송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사건이 발생한 것을 안 날로부터 3년 내에만 가능하다. 피해자가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인 상태에서 소송 제기 가능 기간이 대부분 끝나는 것이다.

법적 처벌을 하지 못한 피해자가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해자의 잘못을 폭로할 경우, 가해자 측이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피해자에게 소송을 걸 수도 있다. 이때 학교폭력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오히려 돈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

학교폭력 관련 이미지. [123rf]

전수민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는 “성인들 중 과거 학교폭력 경험을 잊지 못해 상담해 오는 경우가 있다”며 “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히 없다는 답변을 드려 안타까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과거에 학교폭력을 당한 30대 여성 B씨를 만난 적이 있다.

B씨는 청소년기에 선생님으로부터 뺨을 맞고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십수 년이 지나서야 B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다닌 학교를 찾았으나, 당시 선생님을 찾을 수도 없었고 학교 상황 역시 바뀌어 피해 회복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에 당한 학교 폭력 경험이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전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 시기에 폭력을 당한 경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며 “어떤 사람들은 ‘뭐, 그 정도 갖고 그러냐’ 하는 청소년 시기의 폭행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우울증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 시기는 성인일 때보다 더 정신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어 큰 충격을 받을 수가 있다”며 “피해자들 중에는 수년이 지나도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얘기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만큼 그가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치유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통한 문제 해결에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학생, 부모 등 총 78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에서 응답자의 76.8%가 ‘학폭위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 변호사는 “학폭위 해결 과정이 ‘주어진 매뉴얼’에만 국한해 작동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피해 학생을 보듬어 주고, 가해 학생으로 인한 폭력 재발을 막기 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이 부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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