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박자연의 현장에서]펀드가입, 아직도 책임 떠넘기기만 급급

“시간 괜찮으세요?”

펀드상품에 관심 있다고 하자, 은행들은 먼저 ‘시간’을 요구했다. 말뿐이 아니었다. 펀드를 처음 가입하기 위해 은행마다 최소 40분에서 1시간이 소요됐다. 한 은행에서는 차례가 됐음에도 펀드 판매자격증이 없다며 다른 창구로 안내했고, 다른 은행에서는 창구에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프라이빗뱅커(PB)실로 안내했다.

지난 17일에서 18일 이틀간 세곳의 시중은행을 방문, 펀드 가입절차 밟았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로 긴장감이 더해진걸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설명을 들으면서 상품 가입 과정을 진행했다. 가입을 즉시 하지 않아도 된다며, 충분히 생각한 뒤에 다시 오라고도 했다. 모든 곳에서 “요즘 펀드 아무렇게나 못한다”면서 “라임과 파생결합펀드(DLF) 사건도 있고…”로 운을 뗐다.

투자성향분석은 필수단계였다. 분석지 틀은 대동소이했다. 모든 은행에서 같은 등급이 나왔다.진단은 같은데 처방은 달랐다. K은행은 위험등급을 준수해야한다며, 단일펀드 가입대신 여러 펀드에 분산가입할 것을 권했다. S은행은 투자성향 보다 더 높은 위험등급의 한 펀드를 추천했고, ‘각서’를 쓰면 가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C은행은 투자성향보다 더 높은 등급의 상품은 권하지 않았다.

그 어떤 곳도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펀드에 처음 가입한다고 분명 말했지만, 용어는 물론 장기 수익률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 S은행에서는 “금융투자협회 홈페이지 가서 펀드 정보 알아보라”고 했다. 알아서 알아보란 뜻이다.

국내 굴지의 초대형 은행들이지만 앞선 ‘사고’를 막으려고만 애썼고, 투자의 책임이 고객에 있음을 확인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600개가 넘는 펀드 상품을 하나하나 짚어주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추천한 ‘해외선진주식’은 어떤 주식인지, 상품 개요에 언급된 ‘해외 국공채’는 어느 나라인지, 국내주식에 비중 있는 투자가 이뤄진다면 어떤 섹터 혹은 어떤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었다. 미국 테크기업 위주라는 설명에 “구글 같은 곳이요?”라 반문하자, “맞다”라고 대답했다. 미국 증시에서 구글은 모기업 ‘알파벳’이란 이름으로 거래된다. 환위험을 헤지 하는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도 물론 없었다.

어쨌든 한 은행에서 적립식 상품에 가입했다. 아차 그런데 가입 후 서류를 보니 수수료가 적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수수료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모든 은행이 마찬가지였다. 적립식 투자면 장기 투자이고 계속 납입하는 수수료가 만만치 않을 텐데, 그 어느 곳에서도 언급이 없었다.

뒤늦게 펀드 가입 상황을 확인했더니 납입액에서 0.865%의 수수료가 빠져나갔다. 가입 이틀 뒤 수익률은 벌써 -1.44%였다.

잇따른 사고에 요즘 은행들이 저마다 소비자보호를 부르짖고 있다. 상품을 추천하고 수수료는 떼 가지만 정작 상품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여전히 해야할 것들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건 아직도 하고 있었다. 이대로면 또 다른 사고가 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