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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김필수] ‘연못 속 고래’

‘연못 속 고래.’ 어느 한 영역에서 영향력이 너무 커진 존재를 말한다. 한국 금융시장이라는 연못에도 고래가 두 마리 있다. 하나가 국민연금이고, 또 다른 하나가 삼성전자다.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펀드,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에 꼽힌다. 운용기금이 712조1000억원(2019년 10월 말 기준)에 달한다. 시장의 큰손으로 직접 운용(59.6%, 423조9000억원)에 나서기도 하고, 위험분산을 위해 국내외 운용사에 위탁(40.4%, 287조원)하기도 한다. 국민연금의 눈도장을 받는 건 위탁규모로 보나, 추후 인지도 제고 차원으로 보나 운용사들에게 엄청난 메리트다. 국민연금의 직접투자를 받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찜했다는 건 성장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다. 우선 국내투자(65.8%, 467조6000억원)가 해외투자(34.2%, 243조4000억원)를 압도한다. 국민연금이 ‘연못 속 고래’로 불리는 이유다. 그나마 해외투자 비중을 점차 높이고 있는 건 다행이다. 2019년 말 기준 포트폴리오는 국내주식 17.3%, 국내채권 44.8%, 해외주식 21.9%, 해외채권 4.3%, 대체투자 11.4% 등이었는데, 올해 목표 포트폴리오는 각각 17.3%, 41.9%, 22.3%, 5.5%, 13.0%로 잡아 해외 및 대체투자 비중을 높였다.

또 다른 이슈는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선언이다. 지배구조 등 기업 경영에 적극 개입해 국민 노후자금 수탁자의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고래의 감시가 연못의 작은 고기들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감시 대상이 될 작은 고기들을 선정할 능력이나 여건이 고래에게 갖춰져 있는지 물음표가 붙기 때문이다. 복지(연금제도)와 투자(기금운용)라는 상충한 영역을 하나의 지휘체계 아래 묶어둔 문제가 있고, 게다가 지휘체계에는 ‘정치’라는 변수까지 작용해 기금운용의 독립성 문제도 불거진다. 정치인이 이사장으로 왔다가 총선을 이유로 중도사퇴하는 어이없음은 말해 무엇하랴.

국민연금은 또 다른 연못 속 고래 삼성전자를 애정한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액 123조5000억원 중 삼성전자 비중이 20%를 넘는다. 국민연금 뿐 아니다. 펀드들도 운용총액의 30% 이상을 삼성전자에 넣은 곳들이 많다. 이러니 한국 증시는 삼성전자만 바라본다. 삼성전자의 등락에 따라 코스피 지수는 왜곡되고, 주요 연기금과 펀드의 수익률이 요동친다. 지난해 거래소가 시가총액 비중 상한제(주요 지수에서 한 종목의 시총 비중을 30% 아래로 제한)를 도입해 특정종목의 시장 영향력을 제한하려 한 이유다. 특히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하자 거래소는 1년에 두 번 적용하려던 상한제를 수시적용하겠다고 나섰다.

상한제가 시장주의에 역행하는 제도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차원의 규제는 아니다. 미국, 유럽 등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고, 시총 비중 상한이 10~20%로 한국보다 더 낮다. 이들 국가의 시장규모가 커 시총 1위 종목도 20% 비중을 넘기 힘들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에 비하면 삼성전자는 너무 큰 고래다. 이제 바다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해외상장도 검토해 볼 일이다. 넓은 물에서 제대로 헤엄쳐야 한다. 연못 속 고래는 아무래도 기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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