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탈당했다. 이 전 대표는 사무처 직원으로 당에 들어와 33년만에 대표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더욱이 그는 새누리당의 정치적 불모지인 호남을 지역구로 재선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당에 대한 그의 애정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그런 이 전 대표가 “모든 책임을 안고 탈당한다”며 당적을 정리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전 대표의 탈당은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친박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당을 떠난다고 새누리당이 안고 있는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정작 인 위원장이 제시한 ‘인적 청산’ 대상자들은 비에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착 달라붙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핵심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최경환 의원은 “반성은 하겠지만 마지막 1인이 남을 때까지 새누리당을 지키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청원 의원은 “인적 청산은 ‘숙청’이며 파괴적이고 분열적 행태“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한마디로 인 위원장의 요구를 받아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새누리당은 완벽하게 몰락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로 국회에서 탄핵되고, 당은 둘로 쪼개졌다. 40%대까지 치솟던 지지도는 두 자릿수 지키기도 버거운 상태다. ‘도저히 질수 없는 선거’라던 4월 총선에선 친박 주도의 패권공천 때문에 참패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넘겨주었다. 박 대통령은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 특히 친박은 가혹한 민심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핵심 정치세력은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이런 게 정치다. 그런데도 책임을 외면한다면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따지고보면 이 전 대표는 친박의 그늘 아래 혜택을 누린 게 거의 없다. 탈당 직후 그는 “느그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로 4선, 6선을 할 때 난 호남 출신으로 입당해 33년 애쓴 죄 밖에 없다”고 울분을 토로했다고 한다. 실제 그랬다. 그는 ‘돌쇠’란 별명처럼 당을 위해 헌신했을 뿐이다.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달콤한 과실을 누린 세력들은 누구도 ‘내탓’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만연한 무책임과 몰염치가 어쩌면 새누리당의 진짜 위기인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이 살 길은 변화와 개혁이다. 이는 말로 되는 게 아니라 행동이 앞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 시작은 책임지는 자세다. 친박 핵심들이 또아리를 틀고있는 이상 새누리당의 어떠한 변화와 개혁도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