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초저출산 덫에 갇힌 대한민국]⑥결혼 조건은 취업·최대 부담은 집…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해답
취업애로 청년계층 116만명 육박
근로조건 격차로 대기업만 선호
취업자 결혼가능성은 미취업자의 5배

年30만가구 결혼하는데 집공급 태부족
학벌·스펙중심 채용문화도 큰문제
결혼친화적 사회분위기 조성 발등의 불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A(37·여)씨는 아직까지 결혼을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딱히 혼인할 의지가 없는 비혼(非婚)을 선언한 건 아니다. 대학생활하면서 어학연수로 스펙을 쌓고 졸업한 뒤에는 인턴과정을 거치고 28세에 입사한 후 열심히 일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얼마 전에는 남보다 앞서 차장으로 승진도 했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면 주말도 반납하고 일벌레처럼 일에 매달렸다. 주위를 봐도 결혼하지 않고 사는 싱글족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A씨는 “평일 저녁에도 필라테스 등 운동으로 자기 관리하고 주말엔 영화와 뮤지컬을 본다. 1년에 2~3차례 해외여행도 다니고 하는데 아직 외롭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며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A씨처럼 서른 후반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는 남성이나 여성은 이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만 놓고 보면 초혼 연령은 남성 33세, 여성 30.8세다. 간혹 부모나 지인의 “결혼하라”는 잔소리 때문에 불편하긴 해도 결혼이 급하거나 나이에 쫓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그들이다.


요즘은 결혼 적령기라는 게 사실 무의미해졌다. 늦게 결혼하는 만혼(晩婚)은 이제 거의 사회적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결혼정보회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30대 이상 여성을 남성과 매칭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분류했지만 이제는 30대 이상 여성 가입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대한민국을 흔드는 초저출산 문제는 사회에 만연한 만혼ㆍ비혼 해결에 그 해법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만혼ㆍ비혼 풍조가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 결국 저출산 문제를 푸는 첫번째 열쇠는 ‘결혼ㆍ출산 친화적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모아진다.

우선 취업은 결혼의 전제조건이다. 높은 대학진학률로 고학력 인력공급은 크게 늘었으나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지 못해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취업애로 청년계층은 116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근로조건 격차 심화는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수준은 대기업 정규직이 100이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4.6에 불과하다. 15~29세 비정규직 비율은 2002년8월에 23.9%였으나 불과 12년만인 2014년 8월에는 34.6%로 10.7%포인트 급증했다.

취업자 결혼가능성 미취업자의 5배=만혼은 청년실업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유진성 연구위원의 ‘취업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가임 연령기에 있는 15~49세 남녀를 대상으로 취업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취업자의 결혼 가능성은 남성은 미취업자의 4.9배, 여성은 2.1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는 미취업 기간이 1년 늘면 초혼연령은 약 4.6개월 늦어지고, 여자는 약 1.9개월 늦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 연구위원은 “향후 비혼과 만혼 문제를 완화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취업기회 확대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며 “특히 대내외 경제환경이 어렵고 저성장 기조가 심화되면서 일자리 창출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취업과 결혼의 상관관계는 통계청의 자료에서도 사실로 확인된다. 통계청의 지난해 직업별 혼인건수를 보면 무직ㆍ가사ㆍ학생(이하 무직) 신분으로 결혼한 여성은 10만2915명으로 전년(10만7966명)보다 4.7% 감소했다. 2011년 14만451명이었던 무직 신분 결혼 여성은 그해 4.3%, 2012년 8.6%, 2013년 6.3%, 2014년에는 무려 10.2% 감소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만혼이 늘고, 결혼이 줄면 출산 역시 감소할 수밖에 없는 만큼 혼인율 회복, 저출산 대책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결혼의 가장 큰 부담은 신혼부부 주거문제=만혼 풍조를 고치려면 결혼비용에서 가장 큰 부담인 신혼부부 주거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약 30만가구가 결혼하지만 신혼부부에 대한 임대주택 공급은 5년ㆍ10년 특별공급 등 약 1만2000가구(2014년 기준)에 불과하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2013년 평균 결혼비용은 남성 7500만원으로 조사됐으며, 남성의 82%가 신혼주택 비용을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다.

특히 주택의 매매나 전세 가격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고 초산연령은 늦어지는 연구결과도 나와 신혼부부 주거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보건사회연구’ 최근호에 실린 ‘주택가격과 출산의 시기와 수준’(김민영, 황진영)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서울의 경우 주택매매 가격과 주택 전셋값이 각각 평균 4억5000만원, 2억4000만원으로 16개 시도 중 가장 높은데 반해 합계출산율은 0.968로 가장 낮았으며 초산연령은 31.5세로 가장 늦었다. 전남은 집값이 서울의 5분의1 수준인8400만원으로 가장 낮은 대신 합계출산율은 1.518로 가장 높았고 초산연령은 29.8세로 가장 빨랐다.

황진영 한남대 교수는 “높은 주택가격이 출산의 시기를 늦추고 수준을 감소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며 “경기부양 목적으로 주택소비를 촉진하는 정책보다는 주택시장의 불확실성이나 불안정성을 줄임으로써 젊은 남녀가 장기적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장기적인 출산율 제고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높은 사교육비도 부담=사교육비도 자녀 출산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총 사교육비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빌로 인한 국민부담은 여전하며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 층의 출산기피를 초래하고 있다. 실제 가계소비 중 교육비 비중은 우리나라가 7.4%로 일본(2.2%), 프랑스(0.8%)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2014년 총 사교육비는 18조2000억원으로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1인당 사교육비는 24만2000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3000원 상승했다. 고착화된 대학 서열, 학력간 임금격차, 학벌ㆍ스펙 중심 채용문화 등은 사교육 유발의 근본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사교육비 부담경감을 위해서는 공교육 정상화가 우선 필요하고 학교공부 만으로도 충분히 입시대비가 가능한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며 “아울러 학원비 공개 확대, 대입전형 간소화 등의 조치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