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포레스트

인류 멸망보고서

“ 자연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배신하는 것은 항상 우리들이다. ”
- 장 자크 루소 -

1.
하얀 사과
‘빨간 사과’가 사라진다... 하얗게 질식하는 한반도

‘언뜻 보면 복숭아, 다시 보니 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갛게 익어야만 하는 표면은 하얬다. 둥그렇게 탐스러워야 할 껍질에는 불쑥 튀어나온 부분들이 많았다. 꼭지 부분이 노랗게 익어버린 경우도 더러 있었다. 사과가 폭염에 타고, 서리에 얼고, 빗물에 젖은 흔적들이다.

사과가 죽어간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한반도에서. 더위와 함께 잦아진 이상기후 현상은 사과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80여년 뒤 한반도에서 사과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온난화로 인한 잦은 열대야
착색·생산량·당도 떨어...


특히 2020년 날씨는 사과에 더 가혹했다. 3~5월에는 서리로 인한 ‘냉해’피해, 6~8 월에는 역대급 긴 장마와 열대야, 9~10월에는 때아닌 태풍이 과수원을 강타했다.

참혹했던 기후변화에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헤럴드경제는 지난 10월 대구광역시와 경북 영주·영덕, 충북 제천·충주 등지를 찾았다. 때는 사과의 마지막 수확철. 사과가 가장 탐스럽게 익어야 하는 시점임에도, 농민들의 얼굴엔 그늘이 져 있었다.

“2019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20년은 70정도?”

대구 평광동에 위치한 우 대표의 과수원. 우 대표에게 2020년 사과에 관해 묻자, 그는 이내 움켜쥔 손을 펼쳐 시든 잎들을 보여준다. “사과나무 잎을 보면 2020년 작황을 알 수 있어요. 잎이 시든 나무의 과실은 품질이 나빠요.” 우 대표는 잎을 움켜쥐고 사과밭을 응시했다. 사과나무에 사과는 듬성듬성 매달려 있다.

시든 잎은 광합성 기능을 잃는다. 결국 잎이 시든 나무에서 자란 사과는 하얗게 보일 정도로 착색이 나빠지게 된다. 하얀 사과는 맛도 없다. 광합성 물질이 사과에 축적이 못되니 당도도 자연스레 떨어지는 것이다.

12일 농업계 등에 따르면 2020년은 최상품 사과인 특 비중이 10~2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원래는 특 비중이 전체 물량의 30% 수준인데, 2020년은 24~27%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논문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열대야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야간 저온의 감소에 의한 사과의 착색 불량이 예상된다’고 봤다.

“밤에 날씨가 더우면, 낮에 광합성으로 축적한 에너지가 나무의 호흡에 쓰입니다. 결국 사과착색이 나빠지는 결과로 이어지죠.” (권헌중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연구관)

농장, 온도 낮은 산간으로 이동
대구 생산 줄고 강원 크게 늘어


“강원도에서는 정선·평창·인제·양구, 경기도 쪽으로는 파주·포천...”

경북 영주의 한 과수원. 권헌중 연구관이 ‘신(新) 사과산지’라며 이름을 나열한 도시들은 과수원보다는 군부대나 스키장이 어울릴법했다. 그런데 농민들이 가서 사과를 심고 있단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사과 생산량은 1990년대 전국적으로 60~70만 t 수준이었지만, 큰 맥락에서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2020년 사과 생산량은 2016년 생산치에서 약 21% 못 미치는 2020년은 45만 t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농업인들이 착색이 잘되고, 농사가 잘 되는 지역으로 찾아가 과수원을 개원하고 있습니다. 평지보다 2~3도가 낮은 각 지역의 산간지역이죠.” 말을 마친 권 연구관은 과수원 옆 야산을 손으로 가리켰다. 가리킨 야산에는 사과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지역별 사과생산량 추이는 달라진 사과산지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2019년 대구의 사과생산량은 378t에 불과했다. 과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명성을 잃어가는 중이다. 반면에 강원도 사과생산량은 지난 2014년 이후로 크게 증가하는 모습이다. 당시 2225 t에 지나지 않았던 생산량이 2019년에는 1만486 t까지 치고 올랐다.

오는 2100년이면 한반도에서는 사과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유엔 국제기후변화위원회(IPCC) 지구온난화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사과는 오는 2100 년에는 백두대간 일부지역에서만 자라는 작물이 된다.

충북 제천에서 만난 조영수(59) 씨는 냉해 피해를 입은 비정형과를 신중하게 하나하나 솎아내고 있었다. 그가 비정형과 하나를 꺼내 들어 보였다. “우리 말로는 딱과라고 그래요. 날씨가 추우면 꽃이 수정이 잘 안되고, 한쪽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모양이 비뚤어 지는 거지.” 그가 내민 비정형과는 꼭지부분이 배처럼 노랗고, 모양은 짱돌처럼 울퉁불퉁했다. 조 씨는 18년간 사과농사를 했는데 2020년 같은 해는 없었다고 했다. “봄에는 우박, 우박이 온 다음에 꽃이 필 때 냉해가 왔고. 또 그 그다음엔 또 긴 장마가 와가지고. 이렇게 기상이변이 많이 온 해도 드물다니까.”

2100년 뒤 백두대간 외 생산 못해
한반도 사과 볼 수 없을지...


2020년은 다른 해와 비교했을 때 유달리 장마철이 길고 강수량도 많다. 장마철에만 중부지방에는 평균 851.7mm(강수일수 34.7일), 남부지방에는 평균 566.5mm(23.7일)의 비가 쏟아졌다. 지난 10년간 평균치인 중부지방 366.4mm(17.2일), 남부지방 348.6mm(17.1일)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가을철엔 태풍이 찾아왔다. 10월에만 7개의 태풍이 발생했는데, 이처럼 10월에 태풍이 잦았던 것은 지난 십수년간 처음있는 일이었다.

연구자들은 2020년 기상이변이 수년간 사과 생산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권헌중 연구관도 마찬가지다. “사과는 한번 기상이 좋지 않으면, 내년 내후년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2020년 사과작황이 나빴습니다. 그리고 내년도에도 과실은 썩 좋지 않은 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사이래, 사과는 대한민국에서는 국민 과일이었고, 전지구적으로 봤을 때도 ‘보편적인 작물’이었다. 문학과 예술작품에서도 사과는 주요 등장재(財)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동화 백설공주에는 ‘탐스렇게 잘 익은’ 사과가 나온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주인공 미자가 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빨갛게 익은’ 사과를 매개로 그려진다. 만약 탐스러운 빨간 사과가 사라지고 하얀 사과의 세상이 온다면? 먼훗날 백설공주나 이창동의 ‘시’를 보게 될 미래세대들은 작품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할까?

김성우 기자

2.
꿀벌의 죽음
‘전에 없던’ 등검은말벌... 꿀벌이 하나둘 사라지다

재앙은 미묘하게. 처음엔 잔물결처럼 찾아왔다. 2000년대 초반 ‘못 보던’ 검은색 잽싼 말벌이 부산지역 양봉농가에 출몰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 그러나 이내 그 숫자가 해일처럼 불어났다. 수백, 수천 마리가 농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온화해진 날씨는 신종 말벌이 전국으로 퍼지는 자양분이 됐다. 양봉 농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학계는 신종 말벌에게 ‘등검은 말벌’이란 이름을 붙였다. 환경부는 지난해 7월 등검은 말벌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맹독 말벌과의 전쟁

“직접 피해를 입은 게 벌써 15~16년은 됐습니다.”

백현 양봉협회 부산 지회장은 등검은 말벌의 등장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한 마리, 두 마리 찾아온 검은색 말벌이 꿀벌을 잡아가니까. 처음에는 저게 뭔가 싶었지. 몇 년 지나니까 그게 수백 마리가 됐어.” 따뜻해진 날씨 탓에 등검은 말벌은 국내에 빠른 속도로 정착했다.

12일 학계에 따르면 등검은 말벌은 수도권, 백두대간 일부 고산 지역을 제외하곤 전국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대표적인 등검은 말벌 피해국가가 프랑스인데,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확산 속도는 12.4km/yr(year,년) 수준인데, 한국에서는 확산속도가 67.3km/yr에 달한다. 5~6배 가량 빠르다.

등검은 말벌 권위자인 정철의 국립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최근 온화해진 한반도 기후가 등검은 말벌의 활동에 도움을 줬다고 본다. “등검은 말벌은 원래 따뜻한 지방에 잘 적응하는 생물입니다. 한반도는 지난 100년간 평균온도가 1.8도에서 2.1 도 가량 상승했습니다. 한반도가 등검은 말벌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된 셈입니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전체적인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등검은 말벌이 발육하기 좋은 환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잠자리채로 잡는 방법이 최선
퇴치 쉽지 않아, 현장선 속앓이


농민들은 잠자리채가 ‘그나마’ 효과적인 등검은 말벌 퇴치기구라고 말한다. 등검은 말벌이 출몰하면 농민들은 대가 긴 잠자리채를 활용해 이를 낚아채는 방식으로 퇴치하고 있다. 이런 퇴치법은 농민들에게 ‘피로도’를 선사한다.

"엘보(팔꿈치) 나간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고. 봄에 벌집일을 하고 나면, 여름에는 쫌 쉬기도 하고 마 해야 되는데. 등검은 말벌 잡을라고, 양봉업자들 죄다 파리채 들고 서 있어." (이서우 양봉협회 경남지회장)

2020년은 유독 꿀 생산량이 적었다고 한다. 등검은 말벌의 피해와 함께, 전국적으로 극심했던 이상기온 현상이 벌꿀 생산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2020년 벌꿀 생산량(아카시아, 야생화, 밤꿀 생산량 합계)은 전국적으로 약 8000 t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전국에서 생산된 벌꿀은 7만9099t, 2018년에는 3만3137t, 2017년에는 7만3039 t이었다.

“4월 달에 전국적으로 추위가 찾아왔여요. 아카시아꽃이 이제 정상적으로 개화 하지 못했죠.” (김동원 박사)

“최근 봄철에 온도상승이 심하면서 꽃들이 한번에 피는 현상이 늘고 있어요. 이 경우 꿀벌들이 채밀(꿀을 모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죠.” (정철의 교수)

봄 날씨가 따뜻해지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개화를 한다. 이를 ‘동시개화성’이라고 한다. 꽃이 피는 시기 달라야 벌들이 딸 수 있는 꿀도 늘어나는데, 꽃이 한번에 피면 자연스레 수확량은 떨어진다. 2020년 4월에는 전국적인 한파도 찾아왔다. 그때 제대로 아카시아꽃이 개화를 못하며 꿀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양봉산업 생태계 자체 휘청
피해는 결국 인간에 되돌아와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 기후 생태계 전체가 바뀌는 것을 ‘기후 불확실성의 증가’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일정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한반도 기후가 이제는 제대로 예측하기 힘든 환경이 되는 것이다.

먹이사슬 말단에 위치하는 꿀벌은 이런 기후 불확실성 증가의 가장 큰 피해자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2020년 9월까지 양봉과 관련돼 지급된 보험금 액수는 56억2520만원에 달했다. 보험금 지급액수는 해마다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보험금 지급액수가 5225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 2016년 보고서 ‘수분 및 수분매개체 평가서’를 통해 과거 50년 동안 벌 개체 수의 37%가 감소했고, 현재 2.8%의 벌 종이 멸종위기, 1.2%의 벌 종이 멸종 위협에 놓여 있다고 봤다. 꿀벌은 먹이 사슬을 유지하는 뼈대다. 꿀벌이 입는 피해는 결국에는 인간에까지 이를 수밖에 없다.

김성우 기자

3.
가라앉는 제주
탐방로가 바닷물에 잠겼다...‘상실의 섬’ 되어가는 제주도

전엔 있던 길이 바닷물에 잠겼다. 처음엔 ‘파도 때문이겠거니’ 했단다. ‘이번 대조기는 유독 물이 많은가보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단다. 하지만 점점 길이 바닷물에 잠기는 날 수가 늘어갔다. 지난 2008년에는 길 위에 콘크리트를 덧발라 새 길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길이 물에 잠기는 날 수가 계속 늘었다. 올해는 길이 물에 잠기지 않는 날 수(1월~11월 334일 기준)가 39일밖에 되지 않았다.

해수면 상승으로 피해를 받은 서귀포시 용머리 해안의 얘기다. 여기서 길은 용머리해안 문화재 가장자리를 도는 용머리해안 탐방로다.

물에 잠겨가고 있는 제주
태평양 열대섬만의 일 아니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가 사라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면서 극심한 기후변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제주도가 직면한 기후변화는 바나나, 망고같은 ‘열대과일’이 많이 자라는 열대화 수준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제주도가 본래 모습을 잃고 있다”고 우려한다.

제주도 저지대에서는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침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날씨도 점차 매서워진다. 지난 11월에는 낮 기온이 26도까지 치솟는 더위가 찾아왔다. 지난 9월에는 태풍 마이삭이 큰 피해를 남겼다. 게릴라성 폭우와 비정상적인 가뭄도 해마다 번갈아 가며 찾아오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최근 제주도가 직면한 기후위기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1월 직접 제주도를 찾았다.

7일 해앙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조위관측소의 평균 해수면 높이(164.8cm)는 55년전과 비교했을 때 23.4cm 높아졌다. 해마다 약 4~5mm씩 해수면 높이가 상승하고 있다.

제주도 해안마을 주민에겐 삶을 위협하는 공포다. 제주도와 서귀포 중심부 ‘구(舊) 해안가’ 마을은 해수면 상승에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지역보다 지대가 낮다. 대조기와 태풍 피해가 한꺼번에 덮치는 여름이면 마을 일대는 침수로 쑥대밭이 된다. 태풍이 오지 않는 평소에도 대조기면 해안길까지 물이 차오른다.

제주시의 동한두기마을, 외도와 내도 일대가 대표적이다. 현지에서 만난 강종수(56) 동한두기 마을회장은 비가 오면 마을 내 67가구 중 20가구는 물에 잠긴다”면서 “새로 집짓는 주민한테는 침수대비해서 50cm씩 집을 높여 지으라고 말할 정도”라고 우려했다.

지난 8월 말에서 9월 초께, 제주도를 강타한 ‘대형 태풍’ 마이삭 때는 동한두기마을이 큰 피해를 보았다. 강 회장은 “태풍 올 것 같으면 이제 차를 마을 밖 높은지대로 빼놓는다”면서 “불편하지만 태풍와서 침수되면 차는 다 못 쓰게 되니까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수침수’ 사라져가는 용천수
문화재도 해수욕장도 잠길 위기


제주도 사람들이 오랜 세월 활용해왔던 용천수도 위기에 놓여있다. 제주연구원이 최근 진행한 ‘용천수 전수조사 및 가치보전·활용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현존하는 용천수 656개소 중 17%(111개소)는 해수면 인근에 분포한다. 기후변화 시나리오(RCP) 8.5에 따른 한반도의 해수면 상승은 2050년 40c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이들 용천수가 아예 바닷속에 잠겨버릴 수 있다.

실제로 용천수는 해마다 그 숫자가 줄고 있다. 제주연구원의 이번 용천수 전수 조사에서 6여년 전 조사에서 확인했던 용천수 22개소가 사라졌다.

외도 용천수 인근에서 만난 토박이 김형진 씨는 “물은 계속 차오르는데, 사람이 쓸 수 있는 물은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다”고 혀를 찼다.

해수면 상승으로 위험에 처한 것은 마을만이 아니다. 제주도 해안지역에는 많은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1187호 불탑사 오층석탑, 천연기념물 439호 우도 홍조단괴 해빈, 천연기념물 526호 용머리해안 등 많은 문화재가 해수면이 상승하면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용머리해안은 특히 문제가 심각하다. 해수면 상승으로 지난 2008년 콘크리트를 덧발라 놨음에도 탐방로가 다시 잠기기 시작했다. 최근 침수일수는 300일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해수면 상승이 많은 문화재를 앗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창열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제주도 해수면 상승률은 세계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상황”이라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삼양, 협재 해수욕장도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을지 모르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도 “해안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제주도에는 문화재도 해안 중심으로 분포한다”면서 “이들은 해수면 상승이나 여기따른 해일, 침식 문제에 취약하다”고 했다.

산정상부도 기후변화 피해
구상나무, 하얗게 죽어가다


기후변화의 여파는 ‘제주도의 천장’ 한라산 정상부까지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곳에 주로 분포하는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한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나무기도 하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해발 1400m부터 분포하는데,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여파로 뿌리부터 가지끝까지 하얗게 말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헤럴드경제가 지난달 18일 직접 찾은 서식지에도 말라붙은 나무들만이 즐비했다. 제주도 기온이 1도씩 올라갈 때마다 제주도의 구상나무 서식지는 위로 150m씩 이동한다. 비교적 저지대인 해발 1400m 지역에 있는 구상나무는 다른 수종에 자리를 뺏긴다.

최근에는 1700~1800m 지대에 있는 나무들도 죽어가는데, 지난 2012년에는 태풍 볼라벤, 2013년 극심한 가뭄이 제주도를 찾아오면서 이를 버티지 못한 구상나무들이 죽은 것이라고 한다. 전체 구상나무의 46%가 현재 고사목(죽은 나무) 상태다.

고정군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생물권지질연구과장은 “제주도 지역의 기후극한값(특정 기후현상의 정도의 최대치)은 예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면서 “예전에는 극한값이 낮아 제주도 기후에서 살아남았던 생물들이 극한값이 올라가고, 더욱 심한 기후현상이 찾아오니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구상나무 외 다른 고산식물들도 현재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라산에 분포하고 있는 특산종의 23종은 기후변화 여파로 인해 멸종할 것으로 예상된다. 눈향나무, 분비나무, 돌매화나무 등이 여기 해당한다.

김정도 정책국장은 “남쪽에 위치한 제주도는 우리가 겪고있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이라면서 “곧 한반도에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제주도 기후변화 문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박이담 기자

4.
왕우렁이의 습격
1년에 1000여개의 알, ‘좀비 왕우렁이’의 등장

“하라는 일은 안 허고... 짝짓기만 하고 있으니
내가 환장할 일이죠, 보고 있으면.”
 

푸르르 성을 내던 서 이장이 이내 멋쩍은 듯 말했다. “즈그라고 동면하고 싶겠어요? 근디 살기가 좋아지니까 죽지를 않고 자손 번식을 잘 허고.... 지구온난화로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 걸 어떡하것어요?”

지난 10월 말 헤럴드 ‘라스트 포레스트(Last Forest)’ 취재팀이 직접 찾은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장촌마을. 이곳 이장 일을 맡고 있는 서일권(61) 씨는 급격히 늘어난 왕우렁이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는 아무리 주워도 왕우렁이가 논바닥에 가득하다고 했다. “징글징글허다”며 서 이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지나가던 마을 주민 박정례(67) 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거기 앞에! 그게 전부 다 왕우렁이에요! 농사 50년 만에 올해 같은 해가 없었어.”

 박씨가 가리킨 볏논에는 집게손가락 길이만 한 왕우렁이 수천마리가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뜰채로 논 가장자리에 있는 수로를 한 번 훑자 왕우렁이가 여덟, 아홉마리씩 걸려 올라왔다. 길고 곧게 자라야 할 벼 줄기 밑동에는 왕우렁이가 갉아먹은 상처가 역력했다.

‘좀비’ 왕우렁이의 습격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왕우렁이로 인한 피해 면적은 전라남도 5개군(1262농가)에서만 660.1㏊(헥타르)에 이른다. 대상 농지(3788㏊)의 17%에 달하는 수치로, 200만평에 이르는 면적이다. 축구장 900개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라남도농업기술원 친환경농업연구소 최덕수 농업연구관은 “특히 올해는 전남 해안인 고흥·해남·진도·완도를 중심으로 왕우렁이 피해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서 이장은 저지대에 있는 볏논 가운데 쌀 생산량이 30% 가까이 떨어진 곳이 있다고도 했다. 수로를 타고 둥둥 떠내려온 왕우렁이가 낮은 지대에 있는 볏논에 밀집하면서 해당 지역은 왕우렁이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는 설명이다.

“왕우렁이 두 마리가 벼 한 포기에 달라붙어서 갉아먹는 데 걸리는 시간요? 딱 한 시간이면 돼요. 싹둑싹둑 금방 먹어치워요. 인정사정없어요. 얼마나 마구잡이로 먹는지...” 서 이장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는 마을부녀회와 힘을 모아 2주 내내 왕우렁이 수거작업도 해봤지만 “줍고 나가도 돌아서면 또 있는 게 왕우렁이”라고 했다.

“지도 살 것다고 기후 적응도 하는 것잉게, 그런데 아주 죽것습니다. 4년 전만 해도 없었던 일인데... 지금은 (왕우렁이를) 아무리 주워도 끝이 안 보입니다.” 한숨을 푹 내쉬는 서 이장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볏논에 진입하는 길에는 마을주민이 직접 수거한 왕우렁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커다란 성체부터 자그마한 새끼까지, 볏논에도 여전히 왕우렁이가 한가득이었다. “볏논에 제초용으로 쓰인 왕우렁이는 땅과 식물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을 섭취했기 때문에 식용으로 쓸 수도 없어요.” 최 농업연구관이 덧붙여 설명했다.

겨울이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요?

올해 왕우렁이 피해가 컸던 것은 유독 따뜻했던 지난겨울 온도 탓이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기상 관측 기록상 올해는 가장 따뜻한 3년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겨울, 전라남도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1~2도 높았다. 최 농업연구관이 올해 월동한 왕우렁이의 개체 수가 다른 해에 비해 월등하게 많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지구 온도 상승을 피부로 느끼는 산증인들은 바로 농부다. 전남 고흥에서 올리브를 재배하는 주동일(63) 농업회사법인 고흥커피주식회사 대표는 “교과서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고흥에서는 한겨울에도 뱀이 풀숲을 어슬렁거린다고 했다. “24절기라는 것도 지금은 참고사항이지, 그걸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기후변화를 느낄 정도라니까요.”

이렇다 보니 왕우렁이는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영하 3도에서 사흘만 지속돼도 살지 못하는 열대성 연체동물인 왕우렁이를 1983년 일본에서 한국에 데려온 건 분명 ‘인간’이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따뜻한 겨울을 만들어준 것도 ‘인간’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의 손에 의해 왕우렁이는 그저 이 한국 땅에 정착했고 살아남았을 뿐이다.

처음엔 식용으로, 이후 1992년부터는 친환경 농법으로 왕우렁이가 쓰였다. 논농사를 방해하는 잡초를 제거하는 데 왕우렁이만큼 아주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다. 왕우렁이를 논에 투입하면 잡초의 98%가 제거된다. 새로 자라나는 연한 풀만 먹는 습성 덕분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니 더할 나위 없는 벼농사 제초제다.

그러나 수명이 다해야 할 때 죽지 않게 된 ‘좀비’ 왕우렁이는 벼를 사정없이 갉아먹었다. 왕우렁이는 1년에 1000여개의 알을 낳는 데다 부화한 새끼도 60일이면 성체가 될 정도로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한다.

왕우렁이로 인한 피해 사례가 워낙 빈번하게 보고되다 보니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결국 왕우렁이를 세계 100대 최악의 침입외래종으로 꼽았다. 환경부도 왕우렁이를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하려고 했으나 친환경 농가는 즉각 반발했다. 서 이장은 “(왕우렁이 농법이) 친환경 쌀 재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이만큼 효과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로서는 왕우렁이 농법을 대체할 만한 친환경 농법이 사실상 없다. 이에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농업기술원에서는 월동한 왕우렁이가 볏논에 침입하지 않도록 수로에 철조망을 세우거나 월동한 왕우렁이를 제거하는 약품을 개발하는 등 체계적 관리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2020년 년 한국,
최악의 이상기후 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역대 최장기간 장마에 태풍까지 겹쳐 쌀 수확량이 1968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통일벼를 보급하기 전 수준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의 이상 고온 현상이 볏논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52년 만에 닥친 최악의 흉년을 마주해야 했던 서 이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 놈의 장마가 이렇게 깁니까, 비가 계속해서 쏟아부으니까 벼가 옆가지를 치기 시작허요. 이걸 막으려고 농민들이 물떼기를 급하게 한 거 아닙니까. 근디 그러면 사실 벼가 재대로 생육을 못 허요. 그래도 어쩝니까, 비가 오는데....” 실제로 올 장마가 길어지면서 농가 대부분은 계획과 달리, 물떼기를 한두 달 정도 빨리 진행해야만 했고, 이는 쌀의 생산량에 영향을 미쳤다. 물떼기는 벼가 성숙하면 용수 공급을 중지하고 논에 관수된 물을 빼내는 것을 말한다.

“올해는 도열병이 심하게 와서 잎들이 말라 죽기도 했고요. 벼멸구와 혹명나방 피해가 심했습니다. 올해는 긴 장마로 인해 병이 성행했던 해다,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 농업연구관이 덧붙여 설명했다.

“저처럼 영농일지를 쭉 써온 사람도 과거의 것을 보고 올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서 이장은 “날씨를 종 잡을 수가 없다”며 연신 “모르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정아 기자

5.
운명 바뀐 두 나무
전남서 올리브가 ‘쑥쑥’...한반도 과일지도 바뀔 판

열대과일이 한반도에 상륙하다

이국적인 이파리 사이로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가 보였다. 콩알보다는 조금 더 컸고 단단했다. “내후년이면 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오일을 생산할 겁니다.” 국토 최남단부인 전라남도 고흥군 백일도. 농부 주동일(63) 씨가 열매 달린 나무 줄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번의 겨울을 버텨낸 나무라니까요. 이 정도면 기후에 적응했다고 봐야죠.”

주 씨가 재배하는 바로 이 열매, 올리브다. 남유럽,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지역에서만 널리 재배되는 줄 알았던 올리브 나무가 전라남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고 있다. 그것도 이미 5년여 전부터다.

망고·파파야 등 뿌리 내리는 열대과일
2017년 1곳 올리브 농가, 전국 8곳으로


현재 주 씨가 올리브 나무를 경작하는 땅은 5만3000평(17만5200㎡)에 이른다. ‘안 되면 어떡하지...’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주 씨에겐 걱정이 앞섰지만, 이제는 확신이 먼저다.

한반도에 열대작물이 상륙하고 있다.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등 국토 끝자락에서는 올리브와 망고, 파파야 등 열대과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키위는 한해 2만 t 넘는 물량이 출하되고 있다. 카레의 ‘주재료’로 알려진 강황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이름표를 얻은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전부 기후변화가 가져온 변화상이다.

국내 농가의 터줏대감 격이던 사과, 배, 포도 등 기존 작물은 생산면적과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노지 재배 농법을 고수하던 농가는 하우스 농법을 겸용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따뜻해진 날씨와 이상기후 여파 탓에 노지재배를 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면서다.

17일 농촌진흥청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올리브는 0.5t에 달했다. 올리브를 수확한 농가 수는 전국에 8곳. 2018년 대비 2개 농가가 순증했다. 아직 나무가 덜 자란 주 씨의 올리브밭을 포함한 다른 농가들이 올리브를 수확하면 국내 올리브 생산량은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과·배·포도…북쪽으로 산쪽으로 이동
노지 재배서 하우스 재배 형태 바뀌기도


통계청이 지난 2018년 기상청 자료 등을 더해 내놓은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73년과 비교한 2017년도 국내 지역별 평균기온은 제주권의 경우 1.14℃, 수도권은 0.91℃, 충청북도권역은 0.83℃, 전라북도권역과 경상북도권역은 0.63℃ 씩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존 농작물들의 주산지는 여기에 맞춰 이동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과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강원도 정선·영월·양구로, 포도는 경상북도 김천에서 충청북도 영동과 강원도 영월로, 단감은 경상남도 김해·창원·밀양에서 경상북도 포항·영덕·칠곡으로 옮겨갔다.

권헌중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연구관은 “기존 주산지에서도 평지에서 산지 쪽으로 생산지역이 이동하고 있다”면서 “농민들은 사과를 재배하기 좋은 산지를 찾아서 이동을 감행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주요 작물 생산량은 소폭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과실생산량 지표에 따르면 포도는 지난 2006년 전국적으로 33만49t이 생산됐지만, 지난해는 생산량이 16만6159t에 그쳤다. 단감은 2006년 1만7304t에서 지난해 8639t. 주산지 이동 작물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배 생산량은 2006년 43만1464t에서 지난해 20만732t로 생산량이 떨어졌다.

그외 노지 재배에서 하우스 재배로 생산 형태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제주도를 상징하는 감귤이 대표적이다. 노지감귤 비중은 아직 전체 비중의 73.8% 수준이지만 하우스재배 감귤 농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승갑 감귤연구소 농업연구관은 “노지에서 가을철에 온도가 높거나, 비가 많이 오면 귤 맛이 떨어지고 가격도 낮아지니까 하우스 재배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여주 금싸라기 참외는 현재 재배면적의 90%가 시설재배로 이뤄진다. 충청남도 아산의 특산물인 배방오이는 ‘노지오이’로 명성을 떨쳤지만, 최근 기상조건의 영향 등으로 인해 시설재배가 늘어가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80년에는 한국 경지 면적의 62.8%가 아열대기후 지역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한국 경지 면적 중 아열대기후 지역대라고 볼 수 있는 비율은 약 10.1% 수준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내놓은 대표농도경로(RCP)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하우스가스 배출량을 유지하는 시나리오 8.5에서는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의 지역이 21세기 후반기에 아열대 기후로 변경될 것으로 예측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