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로수길 땅 주인들에게 '재개발'이란?
[최근 개업한 샤로수길 핫플]
[최근 개업한 샤로수길 핫플]
샤로수길은 단순한 힙한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핫플(Hot Place)'이 아니다. 이곳은 250억원이 넘는 자금력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조합이 '재개발' 선전을 하며 토지를 매입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샤로수길이 핫플이 되고 임대료가 올라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면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쪽에선 속앓이를 하고 있단 얘기가 나온다. 왜 그럴까.

'편백숲으로 싸인 아파트' 선언한 지역조합

헤럴드경제가 샤로수길 일대 토지(봉천동 일대) 413곳의 등기부등본(단독·다가구 기준, 2020년 2월 현재)을 분석한 결과, 최근 샤로수길을 일대를 매입하고 있는 가장 큰 손은 '서울대역편백숲1차지역주택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편백숲조합)'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은 2018~2019년까지 진행된 샤로수길 일대 부동산 매매(2006년 이후 실거래 매매가 2번 이상 일어난 곳 기준) 28건 중에서 9건을 거래했다. 매매 3건 중 1건은 조합을 통해 진행된 것이다.

'편백숲조합'은 2023년 '아파트 입주'를 목표로 샤로수 일대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는 조합이다. 25평 아파트를 4억3000만원에 분양할 것이라고 했다. 조합 측에 따르면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일반분양(8억2000만원)'보다 3억~4억원 가량 저렴한 액수다.

'지역조합'은 굳이 봉천동에 가입하지 않아도 아파트 입주권을 가진 조합원이 될수 있다. 조합측에서는 최근까지 1100명 이상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는데, 실제로 봉천동 바깥에 거주하는 외지인들이 70%를 넘어선다고 홍보하고 있다. 신규 조합원은 업무비 2500만원과 계약금 1000만원을 내야 하는데, 실제로 1100명 이상 인원이 조합원으로 있다고 가정하면 업무비(아파트 분양을 홍보하고 토지 매입에 사용하는 자금)만 275억원 이상이 모집된 것이다.
샤로수길 일대 2012년, 2016년, 2020년 모습 [네이버 지도/다음 카카오맵 활용][그래픽 디자인 여동건]
샤로수길 일대 2012년, 2016년, 2020년 모습 [네이버 지도/다음 카카오맵 활용][그래픽 디자인 여동건]
재개발 사업의 핵심인 '토지 매입' 공방 지속

재개발 아파트를 세우려면 먼저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뒤 '사업계획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역조합'이 조합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업 토지의 80% 이상, 사업계획승인을 위해서는 95% 이상에 해당하는 토지를 매입해야 한다. 편백숲조합 측은 현재까지 필요한 토지의 20%가량을 지역조합에서 매입했고, 35% 가량은 '대물(구두상으로 지주들에게 토지를 넘긴다는 동의를 얻음)'을 통해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도로 등의 공간까지 합치면 이미 70%가량 토지를 매입했기 때문에 10%가량만 더 매수하면 올해 하반기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편백숲조합이 아파트를 세울만큼 토지를 매입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나온다. 사업과 관련된 토지 329필지 중 실제 토지매입 수준은 10% 미만에 불과, 지역조합이 토지 매입 수준을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무열 더불어민주당 관악구의회 의원은 "토지 매입 주장에 허구성이 있다"며 '대물' 역시 문제 삼는다. 주 의원은 "지역주택조합이 '대물'을 통해 토지를 확보했다고 하는데, 대물이란 것은 '구두로 승인'하는 것으로 실제 토지를 확보했다는 효력이 발생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관악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대물'이란 것으로는 안 되고, 봉천동 지주들에게 '토지사용승낙서'를 필요한 토지만큼 받아와야 조합설립인가 진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역조합의 재개발을 위한 이전 건축물 철거 표시[사진/김지헌 기자]
임대료가 오르는데, 토지 주인들이 매각할까?

샤로수길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지역조합' 사업 성공 여부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샤로수길의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점이나 원룸을 소유한 건물주 들이 굳이 '아파트 분양'에 관심 가질 리 없다는 설명이다.

샤로수길 상인회에 따르면 5~6년전만 해도 약 66㎡(20평) 가게를 하려면 보증금 1000만원(권리금 별도 지급)에 월세로 80~90만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동일한 공간을 보증금 1억원·월세 600만원에 거래한 곳도 나타났다. 상인회에 따르면 10년전만 해도 수십곳에 불과했던 요식업 사업자 수도 최근 샤로수길 일대에 310곳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상점 수가 급격히 늘어나지만, 유동인구가 몰리면서 그에 못지 않게 임대료도 뛰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아파트 분양 가능성은 낮아졌단 게 상인들의 지적이다.

샤로수길 인근 한 부동산 중개소 대표는 "건물주들 입장에선 당장 높은 임대료를 받으려고 하지, 좋은 아파트 분양 받아서 매매차익 노리길 기다리긴 어려울 것"이라며 "방 한칸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을 받느니, 방을 여러개 연결해서 상점 임대료 받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물주들과도 최근 얘기한 바 있다"고 했다.

임대료가 높아지면 건물가치도 높아져 지주 입장에선 더 소유 부동산을 팔기 꺼려질 수 있다. 10년 전부터 봉천동에 장사하면서 샤로수길의 시작을 지켜본 박태균 샤로수길 상인연합회장은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는 돈이 없는 청년 사업가 입장에서 정말 임대료가 싸서 들어온 것인데, 점차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자본력 있는 임차인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자본이 없는 청년 사업가들의 진입은 줄고, 임대인들의 수익성이 높아지는 모습을 볼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주들이 매각을 하고 떠날 가능성도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거주자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가 확보한 토지 소유주 주소 리스트를 보면 325곳(단독·다가구 기준 413곳에서 지역조합·관악구청·서울시·전환다세대 제외) 중 약 68%(224곳)의 지주가 봉천동에 실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샤로수길이 뜬 2017년 전에 이미 부동산을 상속받거나 매매했던 사람들이다. 나머지 봉천동 외부 실거주자들 역시 상속·매매를 통해 오랫동안 부동산을 소유한 경우가 많다.

'고공행진'하는 편백숲조합의 부동산 매입가

지역 조합 입장에서는 상권 활성화로 인한 높은 실거래 매매가가 골칫거리이긴 하다. 지역조합 입장에서는 상권 활성화가 오히려 비용 부담으로 나타나, 이익 저하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편백숲조합이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매입한 토지·건물의 실거래가를 보면, 이전 거래 시점과 비교할 때 연평균 30%가량씩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봉천동 1626-45의 토지·건물은 2015년 8억8000만원이었으나, 2019년 13억3000만원에 거래(연평균 10% 실거래가 상승)됐다. 봉천동 1623-22번지의 경우 2018년 4월 13억원이던 실거래가가 같은해 8월 16억5000만원에 거래(연환산 121% 상승)됐다. 4개월만에 3억5000만원이 오른 것이다. 2007년에 2억7500만원하던 1626-52번지는 2018년동에 편백숲조합에 의해 9억4500만원에 거래(연평균 12% 상승)됐다.

편백숲조합을 추진했던 과거 "설령 사업 추진에 실패해도, 매입한 부동산 빌라 등을 지어 수익을 남겨 분배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상권 발달로 인해 과거에 비해 급격히 높아진 매입가를 감당할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순 사망한 고(故) 김영환 위원장은 "설령 아파트 분양이 안 되더라도 빌라 같은 것을 세워 수익성을 만회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편백숲 조합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조합위원장을 다시 선출한 상태다. 올해 6월까지 조합원 모집을 완료하고 하반기 '조합설립인가'를 받아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