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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권력’기록하고 남기는 자의 몫임을 명심해야
[헤럴드 Ifez = 주성종 논설위원 기자]‘역사’와 ‘권력’ 기록하고 남기는 자의 몫임을 명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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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위안부 용어와 사진 삭제, 한·일 간 ‘위안부’굴욕적 합의, 일본의 역사왜곡에 이은 교과서 도발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한반도가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다. 솔직히 이런 일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 않던가.

늘 그랬다. 국민들의 가슴 한견에 남아 있는 잔여물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꼭 무엇인가에 가려져 정리되지 않은 채 덮여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언제든지 여건만 되면 이끼처럼 다시 살아날 이슈기에 너무 늦지 않길 바랄뿐이다.

역사와 권력은 기록하고 남기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일본정부가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내용의 문서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제출한데 이어 또다시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 도발을 자행했다. 당장 내년부터 일본의 고교 저학년 사회과 교과서 중 77%가 ‘독도는 일본 땅이며 현재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과 함께 교육을 받게 된다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황당할 뿐이다.

이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거나,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책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설명을 담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8일 일본정부는 초·중학교 교과서에 이어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를 확정·발표했다. 이번에 검정 심사를 통과한 고교 사회과 교과서 35종 가운데 무려 77.1%에 육박하는 27종에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또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에 무게가 실렸다.

이는 지난 2012년 검정이 끝나 2013학년도부터 사용된 교과서 39종 가운데 27종이 독도 영유권 주장이 실린 것에 비하면 내용면에서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대폭 늘어난 수치다. 심지어 한국이 독도를 ‘무력 점령’하고 있다고 기술한 교과서도 있다.

일본이 기술한 역사교과서 주요내용과 범위를 살펴보면 우선, 다이이치(第一)학습사에서 펴낸 지리A의 경우, 지난 2012년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서는 독도 영유권과 관련, ‘한국과 영유권 문제가 있다’고만 기술했으나 이번에는 ‘일본의 영토’, ‘한국이 점거’등으로 표현이 바뀌었다.

도쿄 서적의 일본사 경우도 현재 사용 중인 교과서에서는 독도가 지도에만 표기돼 있지만,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는 †년 시마네(島根)현에 편입됐다’고 기술했다.

시미즈 서원이 펴낸 교과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교 현대사회 교과서 검정 신청본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애초 ‘한국과의 사이에는 시마네현에 속한 다케시마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가 있다’고만 서술했다.

이에 대해 일본 문부과학성은 ‘생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등의 지적을 했고, 그 결과 검정을 통과한 수정 본에는 ‘일본정부는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어 영유권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수탁하는 등 방법으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 기술됐다.

데이코쿠 서원의 지리 교과서에도 ?년부터 한국이 일방적으로 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해양경비대를 배치하고 등대와 부두를 건설하는 등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게재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번 검정 신청이 지난해 상반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난해 말 한·일간 합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내용은 대체로 종전 수준으로 기술됐지만, 일부 교과서에서는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식의 표현이 들어가기도 했다.

검정 신청 역사 교과서 17종 가운데 11종, 현대 사회 10종 중 2종, 정치경제 2종 중 2종에 위안부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대부분 군의 관여, 위안부 강제 모집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중 시미즈서원의 교과서는 ‘일본군에 연행돼’라는 표현을 ‘식민지에서 모집된 여성들’이라는 표현으로, 도쿄서적은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표현을 ‘위안부로 전지(戰地)에 보내졌다’는 표현으로 바꿨다.

앞서 일본정부는 지난 2014년 중고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를 개정하면서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 등으로 표현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어찌 보면 예견했던 일이 현실이 된 셈이다.

문득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제97주년 3?절 기념사에서 "일본 정부도 역사의 과오를 잊지 말고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서로 손 잡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며 세계에 유래 없는 전쟁피해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가해정부와 피해정부 간의 지난해 말 합의에 따라, 비판을 자제하려고 부단히도 애쓰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일 ‘위안부’합의 이후, “강제 동원의 증거가 없다”는 내용의 문서를 일본 정부가 지난해 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모자라 3?절을 전후로 영화 귀향과 동주를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로 줄을 이어지며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반발이 극장시위로 번지던 그 시간, 정작 박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일본 비판이 아닌 북한과 국회를 비판하는 것에 무게를 실었다.

실제 이날 박 대통령이 강조해야 할 기념사의 전체 문장은 72항목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정작 기념사에서 위안부 피해자 관련 언급은 고작 5항목에 불과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던 박 대통령의 취임 첫해 3.1절 기념사와는 너무 대조적이지 않은가.

일본 언론들도 비판을 자제한 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주목하면서 "올해는 일본에 대한 톤이 부드러워졌다"고 평가했다.

고교 교과서에 이런 일본 방침이 적용에 이르게 된 계기는 우리정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다듬고 가꾸어 가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fanta73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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