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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들지 않는 한라산! 제주 불교의 중심 관음사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㉑‘제주불교의 중심’ 한라산 관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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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방문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관음사입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이 그 향기 더욱 진하리
....................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제주4.3사건 추모곡 '잠들지 않은 남도'〉
선인들이 함께 걸었던 제주 불교 성지, 지계의 길 안내판

유채꽃 흐드러지게 피고 동백꽃 떨어지는 제주의 4월,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 76주기를 맞아 그 중심에 있었던 제주 관음사를 가는 길 〈지계의 길〉을 걷는다.

비운의 섬 제주와 관음사

비운의 섬 제주가 걸어온 슬픈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관음사, 매년 그곳에서는 4.3 영령들을 추모하는 해원 상생굿이 열린다. 공식적으론 1만4442명, 비공식적으론 3만여명의 민간인이 억울하게 학살되거나 희생되어 76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도민들의 가슴속에 슬픔으로 남아있다. 그나마 10여년 전부터 4.3 희생자 추모일이 공식 국가기념일이 되어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로하고 있다.

관음사는 4.3 사건 피해 사찰이다.​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관음사의 위치가전략적 요충지였기에 토벌대와 입산 무장대가 관음사를 중심으로 상호 간 첨예하게 대치하였고이러한 과정에서 관음사는 모든 전각이 전소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되면서 남북은 이념의 격전장으로 변했고 그 와중에 제주도에선 남로당 무장 폭동이 일어났다. 정부는 군경을 투입해 진압하는 과정(1947~1954)에서 무고한 제주도민 10% 가까이가 희생되고, 많은 도민들이 남로당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아 투옥된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 4.3사건으로 유죄를 받아 투옥되고 주홍글씨가 되어 일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살았던 1501명이 최근 검찰이 재심을 청구해 90%에 해당하는 1350명이 무죄로 뒤집힌 것만 봐도 그때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당시 남로당 유격대 소탕을 위해 군경은 제주 한라산 중산간 지역 95% 이상을 소각했고 그 과정에서 제주도내 사찰 37곳이 피해를 보았고 18곳은 전소되었으며 16명의 스님이 입적하였다. 피해 스님 대부분은 사찰 내에서 총살되거나 수장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제주 관음사 전경

해발 650m 지역에 있는 관음사 일원은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초기에 남로당 유격대의 도당 사령부 거점으로 활용되어 토벌대와 무장대의 최대 격전지가 되었고 이후 군이 점령하여 주둔지로 이용되면서 모든 전각이 전소되었고 주지 오이화 스님도 고문에 시달려 후유증으로 병사하였다. 관음사내에는 4.3 피해 사찰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크고 작은 경계 참호와 숙영 시설 흔적 등 4.3 유적을 보존하여 제주의 참극이자 민족의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관음사 도량을 중심으로 4.3사건 유적들이 보존돼 있다

대한민국 사찰 곳곳에는 탱화와 불상 등 국보와 보물이 산재해 있지만 제주에는 불교의 역사조차 불에 타서 찾기가 쉽지 않아 불교 문화재가 거의 없을 정도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려면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를 이용한다. 인근 관음사 지구 야영장에서 올라가는 한라산 북쪽 코스는 경사가 심하고 난도가 높아 오르는 이는 적지만 성판악을 통해 내려오는 산행객은 많다. 내려오는 길, 관음사를 둘러보는 것을 권해본다.

관음사 입구에는 몇 개의 순례길 표지판이 보인다. ‘아라동 역사 문화 탐방로’, ‘아라동 4.3길’, ‘제주불교 성지 지계의 길’ 등이 그것이다. 관음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길 코스 개발이 한창인 듯하다.

제주 관음사 통일대불 앞에서는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법회가 종종 열린다.
해월당(海月堂) 안봉려관 스님과 관음사

관음사를 알려면 〈고마워요 봉려관〉과 〈해월당 봉려관 스님〉을 읽어보라며 2권을 선물 받았다. 봉려관은 제주도 사람으로 1901년 비양도(飛揚島)로 가는 길에 우연히 풍랑을 만나 어려움에 처했으나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1907년 해남 대흥사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1908년 1월 제주도로 귀향해 승려 생활을 하였으나 주민들의 핍박으로 백록담 부근으로 입산했다가 1908년 한라산에 관음사를 창건했다. 그러나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혀 시련을 겪자 스님은 3년 간 토굴(해월굴 / 관음사 경내에 있음)에 은거 기도 정진하며 사찰 재건에 힘을 쏟았다.

창건 당시 불상과 탱화는 1910년 용화사(龍華寺)에서 옮겨 왔고 이후에도 항일운동의 모태가 되었던 법정사와, 백련사, 불탑사, 월성사 등을 창건하여 제주불교를 중흥시켰다.

제주불교 소녀단을 조직하는 등 신여성 양성 및 제주유치원, 중학 강습원을 개교하여 인재 양성과 빈민 구제 등 사회 구호 활동에도 앞장서고 항일운동에 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였다.

안봉려관 스님의 사찰 창건 및 사회활동에는 관음사 초대 주지였던 안도월(道月 포교사)스님과 월정사를 창건한 독립운동가 김석윤(관음사 서무, 해월학교 교사 등 활동)스님 등이 함께했다.

관음사 해월굴은 해월당 행적비와 존상(尊像)이 옆에 자리하고 지금도 많은 불자들의 기도처가 되어 촛불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관음사 해월굴은 해월당 행적비와 존상(尊像)이 옆에 자리하고 지금도 많은 불자들의 기도처가 되어 촛불들이 불을 밝히고, 4.3 유적지와 함께 대웅전 가는 길목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관음사는 주로 제주도 지역의 말사 30여개를 관장하는 조계종 제23교구의 본사로서 제주불교의 중심이다. 제주의 민담, 설화 등에 나오는 괴남절(관음사의 제주 방언), 개남절, 동괴남절 등의 이름을 통해 탐라국 시대에 해로를 통해 남방불교가 들어와 관음사가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창건자 및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동국여지승람〉 등을 통해서도 관음사는 제주도의 고찰로서 명맥을 이어온 것 같다. 그러나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제주에는 잡신이 많다 하여 많은 사당과 함께 관음사 등 모든 사찰을 폐사시켜 폐허가 되었고 현재의 관음사는 비구니 안봉려관(安逢麗觀, 1865~1938)이 재건한 것이다. 재건된 관음사는 1939년 화재와 제주 4·3사건으로 1949년 전소되었다가 1968년 복원되었다.

한라산 관음사 일주문은 몇 번의 중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황색 지붕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불상으로 알려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모신 극락전(지장전), 산신, 칠성, 독성 등 삼신을 모신 삼성각 등이 들어서 있다. 관음사에는 일주문 옆에 거대한 석불 ‘평화대불’과 대웅전 옆쪽에 2006년에 조성한 금박 입힌 ‘미륵대불’ 등 대형 불상뿐만 아니라 작은 불상들이 여기저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관음사 삼성각
미륵대불을 둘러싸고 있는 천여 개의 부처들.

미륵대불을 둘러싸고는 천여개 남짓의 부처들이 있고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가는 길 양옆과 천왕문에서 대웅전 가는 길목 양옆에는 갓을 쓰고 있는 불상들이 도열해 있다. 모두 제주도 돌을 깎아 만들었다고 하며 입구에 도열해 있는 갓을 쓴 불상의 좌대 역할을 하는 받침돌은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 전통 풍화열로 되어 있어 그 느낌이 더욱 제주스럽다. 도열해 있는 부처상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4.3 원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듯 보여 슬픔이 더해진다. 대웅전, 나한전 등의 지붕이 황색기와로 되어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통 사찰에선 보기 드문 유별난 부분이다.

일주문~천왕문, 천왕문~대웅전가는 길 양옆으로 도열해 있는 갓을 쓴 불상들

관음사에는 왕벚나무들이 많다. 자생지로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고 종무소 근방 수백 년 된 왕벚나무는 모양과 크기, 상태가 좋아 보호수인듯한데 이제야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극락전 뒤편 산길에 관음굴이 있다하여 찾아갔으나 한창 보수 중이라 내부를 들여다 볼 순 없었다.

관음사 관음굴

미륵대불 위 숲속 외진 곳에 나한전과 아미당, 백록원 등 선원이 있어 그곳에 오르니 앞이 훤히 트여 시내와 제주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650m 이상이란 사실이 실감나고 한라산 기운도 전달된다. 유명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황지사 절이 관음사라고 한다.

관음사 일주문에서 천왕문 가는길
제주 불교의 성지 ‘지계(持戒)의 길’
월정사 일주문

선인들이 함께 걸었던 제주불교 성지순례길 〈지계의 길〉은 ‘관음정사’에서 ‘관음사’까지 14.2km 구간이다. 너무 길어 중간 지점 월정사부터 관음사까지 9.4km를 걷기로 했다. 3시간 이상은 소요될 듯하다. 공항에서 택시로 15분 거리, 제주 최초의 불교 선원이며, 4·3사건 당시 아픔을 겪어 사찰이 전소되고 스님이 희생당하는 비운을 겪은 월정사가 있었다.

월정사 전경

일주문에 들어서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 같았다. 대웅전과 극락보전, 두 개의 전각이 나란히 전면에 위치하고 마당 한편에 대불(大佛)과 석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앞마당의 수양매화꽃과 동백꽃이 탐방객들을 반기고 오른편엔 공적비와 공덕비, 그 뒤편에 종무소와 요사채 등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원수를 단장하고 있는 분께 ‘지계의 길’을 물었는데, 안내 표지판이 버젓이 있음에도 길이 없어 이정표대론 갈 수 없을 거라 충고(?)한다.

제주시를 관통하는 한천 상류 약 6km 지점에 효성이 지극한 나뭇꾼이 신선을 만났다는 전설을 가진 방선문(訪仙門)이 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벚꽃과 유채꽃이 활짝 핀 대로를 따라 방선문까지 30여분 걸어오니 초행자가 찾기 쉽지 않은 산길이 나온다. 옛 선비들이 방선문(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둥근 문 모양의 바위)계곡을 찾아 풍류를 읊었다는데 낙석사고 위험으로 출입 통제되어 이마저 아쉽다. 결국 계속 직진을 포기하고 구암굴사(龜岩屈寺)로 향했다. 배불뚝이 포대화상이 입구에서 반기고 거북바위 밑에 석굴을 만들어 주 법당으로 삼고 있었다. 산신각 아래 또 다른 석굴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가 불을 밝히고 있는데 수능 기도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듯하다. 다시 택시로 관음사로 이동했다.

제주불교성지순례길인 절로 가는 길에 참배사찰인 구암굴사 입구에는 순례객들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불교에선 육바라밀(여섯 가지 수행 덕목) 중 지계(持戒) 바라밀이 있다. 지계(持戒)는 계를 지킨다는 뜻으로 계를 지키는 수행으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다. 지계(持戒)의 길’을 걸으며 해탈과 열반에 이르지는 못해도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자성(自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걷기 좋은 길로 찾기 쉽게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음사 창건을 계기로 중흥기를 맞은 제주 불교는 1934년 김석윤 스님이 범어사 제주 포교소 월정암을 창건하면서 확장되었다. 김석윤 스님은 1877년 제주도에서 전통적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교사 및 서당 훈장을 하다 관음사 창건을 도와 관음사 서무와 해월학교 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전답을 팔아 대장간을 차려 무기를 제조하고 비밀리 군사훈련을 추진하는 등 제주 의병 항쟁의 중심에 있어 일제의 지속된 감시로 제주를 떠났다. 1916년 부산 범어사에서 대교과(大敎科/승려 교육 과정)를 수료하고 용화사(통영 소재)를 근거지로 승려 활동을 하였다. 1934년경 제주로 돌아와서 제주 최초의 근대 선원으로 범어사 제주포교소인 월정암(월정사) 주지가 되었다.

나한전에서 바라본 제주시내와 제주바다

이 월정사는 제주 4.3사건으로 완전 소실되었고 김석윤 스님의 아들 김덕수 스님도 토벌대에 끌려가 학살당하는 비운을 겪는다. 그 후 1960년대에는 몇몇 승려들의 노력으로 난민 보건주택을 짓고 법당으로 사용하면서 사찰의 명맥을 유지하다 1970년대 지문 스님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면서 본격적으로 재건되기 시작했다. 현재 월정사에는 개인이 소장하던 목조보살입상과 이조(석조)여래좌상을 넘겨받아 보존하여 문화재로 등록하고 2001년 전통 사찰로 등록되었다. 지문스님의 공적비가 유달리 크게 들어온다.

‘불어라 4.3의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 갈등과 대립을 화해와 상생의 가치로 승화하자는 4.3사건 76주기 추모식 슬로건이다. 관음사 평화대불이 빛을 발했으면 한다.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정경수 기자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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