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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 국어 기본인 홍콩, 4만명이 한국어를 배운다 [헬로 한글]
학생들 K드라마·K팝에 대한 관심 급증
제2외국어 선택 한국어 도입 학교 늘어
2025년 대입부터 외국어 시험과목 포함
유학·취업목적 넘어 한국인과 소통 의미


무광영어학교의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나오미 응 기자
무광영어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리키고 있는 캐니 라이 위엔와 교사 나오미 응 기자

“한국어 문장 구조는 중국어랑 달라요. 예를 들어 한국어로 ”I eat lunch in the classroom(아이 잇 런치 인 더 클래스룸)“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나는, 교실에서, 점심을, 먹어요’라고 말하면 됩니다”

홍콩의 무광영어학교에 수업 시작을 알리는 학교 종이 울리자 10여 명의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께 인사한다. 중국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로. 교사 캐니 라이 위엔와의 설명 방식도 독특하다. 광둥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말한다. 그의 생소한 표현에 결국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홍콩은 광둥어, 표준 중국어, 영어 3개 국어가 혼용되는 곳이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3개 국어를 공부해야 하기에 다른 외국어를 배울 여유가 없다. 덕분에 한국어는 오랫동안 학원이나 대학교에서나 배울 수 있는 외국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초·중·고교에서 한국어 교육이 도입되고 있다.

▶무광영어학교, 한국어 최초 도입=무광영어학교는 지난 2021년 9월 홍콩 소재 학교 중 처음으로 한국어 교육 과정을 도입한 교육기관이다. 이 곳 중등 과정 1, 2학년 학생들은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제2외국어 과목으로 한국어를 선택할 수 있다. 재학생 282명 중 약 3분의 1이 한국어를 골랐다.

제이콥 시앙 웬지에(14) 학생은 한국어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갑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 ‘블랙핑크’의 포토 카드 모음집을 자랑스럽게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그는 “집에 이것보다 더 있어요. 최소 500장 정도요”라며 “래퍼 리사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광영어학교가 한국어 교육과정을 도입한 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때문이었다. 지난 10년 간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학생들 역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호사이청 무광영어학교 교장은 “학생들은 한국 문화 특히 한국 드라마와 K-팝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학생들을 아시아 경제 대국인 한국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고 싶은 점도 한국어 교육 과정을 도입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홍콩에만 4만명…한국어 학습자 급증=그간 홍콩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제2외국어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일본어 등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어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주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추산에 따르면, 2017년 현재 대학 및 학원 수업 등록 기준으로 홍콩 내 한국어 학습자의 수는 약 4만명 정도다. 현재 한국어 수업은 홍콩 내 대학 8곳 중 6곳, 지역 전문대학 3곳, 학원 20~30곳, 중학교 20곳 등에서 제공되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 보통 한국어 수업이 방과 후 과정으로 제공되지만, 최근 무광영어학교와 같은 일부 학교에서는 필수 교양 과목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일부이긴 하지만, 홍콩 공립학교에서 한국어를 교육 과정에 도입한 것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홍콩 공립학교는 ‘양문삼어(兩文三語, 2개의 문자와 3개의 언어 사용)’ 정책에 따라 학생들이 광둥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며 광둥어, 영어, 표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해 제2외국어까지 교육하는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홍콩의 언어 교육 정책 전문가 데이비드 리 초싱 교수는 “홍콩의 많은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고, 학교 경영진 역시 한국어가 학생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만키우협회초등학교의 한국어 수업에서 한 학생이 한국어 교재를 공부하고 있다. [만키우협회초등학교 제공]

만키우협회초등학교는 지난해 9월부터 3~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필수 제2외국어 교과 과정을 마련하면서 한국어 교육 과정을 도입했다. 이에 200여 명의 학생이 한국어를 선택해 배우고 있다. 만키우협회초등학교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지만, 공립학교에 비해 교과 과정을 설계하는 데 있어 훨씬 자유롭다.

아이비 입 슈크팅 만키우협회초등학교 교장은 “1~2학년 학생들이 광둥어와 영어로 탄탄한 기초를 쌓은 후 외국어를 배우기를 바란다”며 “외국어는 어릴수록 쉽게 습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생들의 국제적 시야를 넓히는 것이 학교의 비전”이라며 “제2외국어 교육은 국제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있는 아이들 뿐 아니라 소외 계층 아이들도 제공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어 학습, ‘취미 그 이상의 것’=홍콩 내 학교 뿐 아니라 학생도 역시 한국어 학습이 취미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면서 한국어 교육이 더욱 주목받는다는 분석도 있다.

10년 이상 한국어 교육을 한 교사 캐니 라이 위엔와는 “기존에는 ‘오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손 편지로 쓰고 싶어 하는 K-팝 팬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며 “지금은 그와 별개로 한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거나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오는 2025년부터 대학 입학시험에 한국어를 외국어 시험 중 하나로 포함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홍콩 또는 다른 국가에 있는 대학에 지원할 때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점수를 제출할 수 있다.

홍콩 정부가 한국어 시험을 대학 입학시험에 포함시키자 유나이티드 크리스천 칼리지는 지난해 9월부터 한국어능력시험 응시 예정인 학생들을 위해 한국어 준비반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벨라 리 푸옌(16) 학생은 “나중에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살 생각이 있어 한국어를 공부하기로 했다”며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몇 년 뒤 한국 대학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한국어로 대화하는 내 모습이 상상된다”고 말했다.

무광영어학교 학생 제니스 로 야우홍(15)도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인들과 소통하는 데 장벽이 없으면 좋겠다“며 “언어 장벽 없이 소통할 수 있다면 제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또 하나 생기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사이먼 라우 춘 유나이티드 크리스천 칼리지 교장은 “교과 과정에 한국어능력시험 준비반을 도입시킨 이유가 온전히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면서 “(한국어를 통해) 학생들이 또 다른 언어 구사 능력을 터득하게 되고, 그 혜택은 온전히 학생의 것이 된다”고 말했다.

코리아헤럴드(홍콩)=나오미 응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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