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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이 OECD 중 주거비 제일 싸다?"…'이것' 덕인데 "없애자" 난리[김성훈의 디토비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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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토(Ditto·찬성)와 비토(Veto·반대)'로 갈등이 첨예한 세상 속 먹고 사는 이슈를 탐구합니다.
이미지는 기사내용과 무관 [구해줘 홈즈 MBC 방송 캡처]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아니, 이 숫자가 맞나요?" - 기자

"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그렇다고 하네요." - 통계청 관계자

지난 2월 통계청에서 낸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를 보고 기자는 도통 믿어지지 않아 물었습니다. 통계청은 해당 자료에서 국가 간 삶의 질을 비교한 OECD의 '더 나은 삶(Better Life Index·BLI)' 지수를 소개했는데요, 한국은 '주거비' 항목에서 42개 국가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가처분 소득의 14.7%만 주거비에 써 가장 부담이 낮다는 것입니다. OECD 평균(20.5%)은 물론이고, 17%대인 2위 그룹(에스토니아, 러시아, 멕시코, 노르웨이)과 비교해도 격차가 큽니다.

OECD 더 나은 삶 지수(BLI) 중 주거비 순위

전반적인 삶의 질은 32위로 중하위권인데, 주거비 부담만큼은 세계에 내놔도 자랑할만하다는 이 결과를 어떻게 봐야할 지 당혹스러웠습니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을 유발할 만큼 주거비 부담이 크다는 기존의 상식과 너무도 배치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순위는 2019년 통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2019년에도 집값이 비싸다는 아우성은 컸습니다.

금리 상승으로 전세 부담이 높아지면서 월세 계약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매물 안내. [연합]

전문가들에 해당 통계에 대해 물어보니 "전세 때문일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전세는 보증금만 내면 다른 부담없이 살 수 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입니다. 보증금을 대출받는 경우라면 금리라도 부담하게 되지만, 보증금을 대출받지 않는 전세입자는 주거비 부담이 '0원'(보증금을 운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은 제외)입니다. 유주택자가 내야 하는 세금마저 부담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 전세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해묵은 '떡밥'('논쟁거리'를 뜻하는 인터넷 은어)이지만, 지금이야말로 전세를 없앨 '절호의 찬스'라는 것입니다.

"대출 막으면 뭐하나…전세가 집값 상승 주범"
인천시 부평구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피해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

전세를 없애자는 이들은 전세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합니다. 나에게 자금이 적어도 전세입자에게서 보증금을 받아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를 할 수 있게 돼 집값 거품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2020~2021년 정부자금조달계획서를 통해 추산한 갭투자의 규모는 전체 주택 거래의 30~40%나 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특히 전세입자가 전세금이 부족한 경우에는 국가가 보증을 서 낮은 금리로 대출까지 해주니 더욱 그렇다는 것입니다. 전세대출은 형식상으로 전세입자가 대출을 받는 차주지만, 실질적으로는 은행이 임대인의 계좌에 곧바로 입금해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은행이 전세입자에게, 전세입자가 임대인에게 빌려주는 건데, 중간 과정의 전세입자를 생략하면 은행이 임대인에게 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각에서는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 역시 이 지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한 사람이 집을 여러 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규제지역을 광범위하게 지정하고, 강력한 대출 규제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전세대출은 무주택 서민 보호를 이유로 그대로 뒀습니다. 실거주를 위해 집 한 채 사려 할 때는 규제에 걸려 집값의 40% 밖에 대출이 안되는데, 갭투자를 할 때는 은행에서 집값의 70%가 나오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출 규제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세를 없애자는 또 다른 이유는 전세가 기본적으로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 임대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임대인 입장에서 매달 고정적인 수입이 창출되는 월세를 마다하고 굳이 세입자에게 보증금 전액을 되돌려줘야 하는 전세를 놓는 이유는, 월세 수입을 넘어서는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세임대인은 집값이 올라야만 투자에 성공합니다. 물론 그러한 기대가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니겠지만, 심리적으로 집값을 지지하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입니다.

"집값만 잡으면 땡?…전세 없으면 월세가 폭등한다"
깡통 전세, 전세 사기 등 사고가 빈발하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이 임차주택 시세와 집주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안심전세앱' 설치를 독려하고 있다. [연합]

반대로 전세를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섭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서민 주거 안정 효과입니다.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와 월세는 상호 경쟁 관계에 있습니다. 지난해 금리 상승기 이전까지만 해도 전세로 인한 비용 부담이 낮기 때문에 월세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고 가격이 낮게 억제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경쟁자가 사라지게 된다면 선택지가 월세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월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전월세전환율(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월세를 얼마내는지 계산하는 비율)이라는 개념을 써서 전세와 월세 가격을 비교하는데, 전세가 사라지면 월세를 집값과 비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연관해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집값이 예상만큼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입니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 가격이 오르면 전세 수요자들 중 일부는 월세 사느니 집을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전세는 대출이 안나오지만, 주택매매는 대출이 나온다면 이 역시 '집을 사볼까' 생각하게 할 수 있죠. 즉 집값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요인은 수요-공급이기 때문에 주택건설을 통한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집값 하락은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세 제도가 없는 해외의 집값이 과연 낮은가도 참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전세가 사라져 집값이 다소 하락한다 해도 혜택을 보는 무주택자는 일부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합니다. 집값이 다소 떨어지면 집을 구매하겠다는 의향이 있는 무주택자, 집을 구매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무주택자는 이익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무주택자 중에는 평생 집을 구매하겠다는 의향도 없고, 그럴 형편이 안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전세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데 없애버리면 그들은 피해를 보는 셈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는 '집값 하락'을 목표로 할 것이냐, '주거 안정'을 목표로 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세를 없애 집값 하락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주거 안정에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한 전문가는 "지금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0억원인데, 전세를 없애서 얼마까지 떨어뜨려야 효과를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8억? 6억? 거꾸로 말해서 6억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면 전세를 없애는데 찬성할 것인가? 분명 무주택자 중에도 '전세 폐지에 반대'라고 답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세 폐지 '절호의 찬스'라는데…이대로 날리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의 이자부담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월세로의 전환이 이뤄졌으나 최근 시중은행 전세대출 금리가 다시 하락하고 있다.

전세제도를 없애자는 이들이 일순간에 전세를 금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는 정부가 대출 보증을 서줘서 전세대출이 과도하게 나가고 있는데 이를 점차 축소하는 일부터 시작해, 임대차 시장을 전세에서 월세 중심으로 차츰 변화시켜 나가자는 거죠. 더불어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은 공공임대를 통해 전세수요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충격을 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세 폐지론자들은 지금이 그러한 변화를 시작할 적기라고 말합니다. '빌라왕'처럼 잇따라 터진 전세 사기 사건으로 전세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환기돼 있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금리 인상으로 전세의 장점이 많이 떨어져 월세 계약이 늘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월세로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실제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월세 거래가 전세 거래보다 많아졌습니다.

다만 정부의 최근 행보는 전세 폐지론자들의 그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해 기준금리(3.5%)보다 낮은 3.45% 금리의 전세대출도 나왔습니다. 또 공기업인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보증비율을 100%로 올려 금리부담을 낮춘 고정금리 전세대출도 출시했습니다. 이에 전세 거래가 다시금 늘고 있다고 합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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