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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증금을 받아야 집을 비우죠”…부자 세입자만 챙기는 이상한 임대차법 [부동산360]
퇴거 통보 3개월 후에도 보증금 못 받은 세입자
집주인에 지연이자 청구하려면 전셋집 비워야
갱신 후 중도해지 시 중개수수료 놓고도 다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가격표. [연합]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 세입자 A씨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전셋집에 살던 도중 장기전세주택에 당첨됐다. 이에 장기전세주택 입주지정기간(올해 2월)보다 3개월 전인 작년 11월 집주인 B씨에게 계약 중도해지를 통보했다. B씨는 A씨의 중도 퇴거로 인한 손실을 지적하며 전셋값을 시세보다 높게 내놨고,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A씨는 입주지정기간을 넘겼다. A씨가 퇴거 통보 3개월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내용증명을 보내자 B씨는 급하게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왔다. A씨는 “지연이자는 100만원이 넘었고 얼마 전에는 B씨가 복비를 내라고 난리를 쳐서 이사 포기하고 소송을 진행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임차인의 주거권을 강화하기 위해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한 지 약 2년 반이 지난 가운데, 이를 둘러싼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임차인에게 무게추가 기울었다는 평가를 받는 제도이지만 세입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모양새다. 제도가 현금 자산이 풍부한 이른바 ‘부자 세입자’만 보호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현행법상 A씨는 B씨에게 보증금 반환이 늦어진 데 따른 지연이자를 청구할 수 있다. 퇴거 통보 후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계약해지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후의 지연이자에 대해선 전세금 반환소송이 제기된 날부터 판결 이전까지는 연 5%, 판결 선고 이후 상환일까지는 연 12%를 보장받을 수 있다. 임대인이 소송 도중 변제하게 되면 연 5%로 계산된다. 다만 집주인으로부터 지연이자를 보상받기 위해 중요한 전제는 A씨가 전셋집을 비워놨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갱신권을 사용한 세입자가 퇴거 통보를 한 뒤 3개월이 지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대응할 카드가 별로 없다”며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을 해야 지연이자 비용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선 전셋집에서 나와 이사를 가야한다. 그러나 보증금을 못 받았기 때문에 이사갈 집을 구할 돈이 없거나, 전셋집 경매를 신청하는 것 역시 집을 비워야 가능하기 때문에 임차인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거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모든 임대차계약은 인도와 보증금 반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세입자가 전셋집에 계속 머물면 임대료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연이자를 받기 위해선 비워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세입자 입장에선 소송이 진행되지 않으면 집주인이 하세월이니 소송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우 팀장은 “그러나 집주인 입장에서도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이후에는 세입자가 3개월 이전에만 퇴거 통보를 하면 되기 때문에 보증금 반환자금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억울할 수 있다”며 “양쪽 입장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후 중도해지로 3개월 내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보증금을 급히 마련해야 하는 집주인도, 3개월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상황이 난처해진 세입자도 불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갱신 후 퇴거 통보로 인해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때 발생하는 중개수수료의 부담 주체를 놓고도 집주인과 세입자 간 다툼이 빈번한 양상이다. 별도의 특약없이 세입자가 3개월 전 퇴거를 통보했다면 중개수수료는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한 세입자는 “퇴거 통보 6개월 됐는데 집주인이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내라고 한다”며 “중개업소에서도 ‘법은 임대인이 내는 게 맞지만 대부분 세입자가 낸다’며 우리에게 내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세입자는 “집주인이 내게 계속 문자로 ‘도덕적으로 잘못했다’고 비난하는데 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인데 이렇게까지 비난 받아야 하나”라며 “이상한 법 때문에 집주인이나 세입자나 서로 속상할 일만 생긴다”고 토로했다.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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