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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급 과징금 부과받은 코레일…철도산업 ‘유지보수’ 독점 구도 대대적 변화 예고
급증하는 철도사고에 코레일 책임론 부상
코레일 ‘유지보수’ 거부한 SR…확산 우려
국회, 코레일 유지보수 독점 관련법 개정 추진
“철도공단으로 철도관리 업무 일원화해야” 주장 거세져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의 국가철도공단 이전 목소리가 거세지공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6일 행정처분 심의위원회를 열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대해 지난해 발생한 3건의 철도사고의 책임을 물어 모두 1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다. 구체적으로 ‘경부고속선 대전-김천구미역 KTX 열차 궤도이탈’(7억2000만원), ‘경부선 대전조차장역 수서고속철도(SRT) 열차 궤도이탈’(7억2000만원), ‘남부화물기지 오봉역 직원 사망사고’(3억6000만원) 등이다. 이는 정부가 코레일에 부과한 역대 가장 큰 과징금이다.

정부가 코레일에 이렇게 큰 과징금을 부과한 건 철도 안전사고 증가세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감소하던 철도사고는 2020년 40건까지 내려갔으나 2021년 48건, 2022년 66건 등으로 다시 빠르게 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급증한 사고는 ‘단전’과 ‘탈선’ 등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 따른 것이어서 관련 업무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코레일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철도산업발전기본법(철산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인이 발의한 것으로 제38조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는 규정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코레일이 철도산업에서 독점적으로 ‘유지보수’ 업무를 할 수 있었던 건 이 조항 때문인데 이 권한을 없애려는 움직임이다.

우리나라 철도산업은 코레일이 ‘차량’과 ‘운영’을 맡고, 철도공단이 ‘설계 및 건설’, ‘시설관리’, ‘개량공사’를 담당하는 구조다. 정부가 2004년 철도청의 만성 적자와 비효율성을 타개하기 위해 두 기관으로 쪼개 운영하기로 철산법을 시행하면서 현 체제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철도산업은 코레일이 ‘차량’과 ‘운영’을 맡고, 철도공단이 ‘설계 및 건설’, ‘시설관리’, ‘개량공사’를 담당하는 구조다. 정부가 2004년 철도청의 만성 적자와 비효율성을 타개하기 위해 두 기관으로 쪼개 운영하기로 철산법을 시행하면서 현 체제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9000명 가까운 인력이 근무하는 유지보수 업무다. 철산법 취지대로라면 유지보수는 철도의 시설관리자인 철도공단이 맡아야 하지만 입법과정에서 코레일이 철도공단으로부터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받아 시행하도록 했다. 효율적인 운영 업무를 위해 유지보수를 함께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6년 말 철도산업에 경쟁을 도입한다며 출범한 SRT가 개통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관련법에 따라 코레일이 경쟁사인 SR 운영 노선의 유지보수를 맡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제대로 된 유지보수 업무가 가능하겠냐는 지적이 나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실제 SR 운영 노선에서 사고가 잇따랐다. 특히 지난해 갑자기 급증했다. 7월 1일 발생한 ‘대전조차장역 인근 SRT 열차 탈선사고’나 ‘12월 30일 천안아산역~평택지제역 통복터널 열차 지연 사건’ 등이다. 사고 원인은 모두 코레일의 유지보수 업무 소홀, 부실한 자재 사용, 허술한 관리 등으로 평가됐다. SR의 피해금액은 수백억원이나 됐다. SR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올해 초 코레일에 ‘위탁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문제는 SR이 코레일을 유지보수 업체로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철산법 38조 조항이 사라지지 않는 한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철도업계는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빈번해 질 것으로 본다. 최근 개통한 광역철도 진접선 구간만 해도 철도운영은 서울교통공사가 하는데, 유지보수는 역시 관련법에 따라 코레일이 맡는다.

지난해 11월 7일 오전 무궁화호 열차 탈선사고가 발생한 서울 영등포역 탈선 사고현장 옆을 전동차가 서행운행 하고 있다. [연합]

향후 GTX 노선 등에서 경쟁 운송사업자가 더 많이 등장할 텐데 유지보수는 계속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 생기는 운송사업자들은 다른 경쟁 운송사인 코레일에 유지보수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대거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철도운송사가 운영과 유지보수를 함께 하면 시너지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받아 들여진다. 코레일을 통해 운송사업자가 유지보수를 맡게 되면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어 유지보수 업무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7월1일 발생한 경부선 ‘대전조차장역 SRT 궤도이탈 사고’는 철로가 온도 상승으로 변형된 게 원인인데, 사고 전에 14회나 낡은 레일을 보수해야한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미루고 미루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유지보수를 위해선 기본적으로 열차를 통제해야 한다. 선로용량(정거장간 통상 1일 운행 가능한 최대 열차 횟수) 대비 선로이용률을 70~80% 수준으로 유지해야 적정 유지보수 시간이 확보된다. 하지만 사고가 난 경부선의 선로이용률은 93%나 됐다.

국토부 선로공사 지침에는 적정 선로작업 시간을 하루 3.5시간으로 적시했지만, 수도권 선로작업 중 이 정도 시간을 채우지 못한 비율이 전체의 19%나 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코레일과 철도공단 대전 사옥. [헤럴드DB]

우리나라 철도시설이 ‘설계 및 건설(철도공단)→유지보수(코레일)→개량(철도공단)’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기관간 업무협조가 원활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철도공단에 따르면 코레일은 철도시설에 대한 보수이력, 사용된 장비와 자제 정보, 관련 도면 등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더구나 코레일이 유지보수 업무를 소홀히 해도 철도공단에선 대응할 방법이 없다. 정보 공유가 잘 안되다보니 효율적인 유지보수 방법, 장비 개선도 어렵다. 코레일 입장에선 낡은 구간의 유지보수를 적극적으로 할 이유도 없다.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비용을 써야 하지만, 만약 개량작업 단계로 넘어가면 철도공단이 100% 국고로 공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지보수를 효율적으로 하기위한 시설 투자는 더딜 수밖에 없다. 원격제어 장치 등 시설을 첨단화하면 1인당 관리할 수 있는 철로 길이가 길어지지만, 투자를 하지 않으니 유지 관리 선진화는 요원해진다. 국토부에 따르면 코레일 유지관리 직원 1인당 유지보수 선로는 0.84km로 독일(1.34km), 스위스(1.6km), 네덜란드(2.2km) 등에 한참 못미친다.

국토부는 이런 문제를 포함해 철도안전체계 전반에 대한 심층진단 및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컨설팅 용역을 맡겨 놓은 상태다. 결과가 나오는 7월 이전까지 시설 유지보수, 관제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철도시설 안전 체제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유지관리 업무를 공공기관인 철도공단으로 통합하는 방안 등을 모두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공단에 따르면 철도의 설계, 건설, 유지보수, 개량 등 모든 하부 관리를 철도공단으로 일원화하면 불필요한 중복업무가 해소되고, 철도시설 통합관리가 가능하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철도 파업 현장에 참석해 “코레일에 위탁한 철도 유지보수·관제 업무를 철도공단으로 옮길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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