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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헌의 현장에서] CES 흡연장에 모인 한국인 반가웠던 이유

“삼성이랑 LG 부스 가봤어?” “소니가 내놓은 자동차 어땠어?”

지난 5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 2023’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소니 부스 쪽 입구. 취재차 다른 전시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전세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낯설지 않은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옆을 돌아보니 주변에 흡연자들이 20여명쯤 섰는데 뜻밖에도 전부 동양인 얼굴이었다. 다소 반가운 마음에 귀를 쫑긋 세우고 다가가 빙 둘러봤다. 그런데 이번에도 영어를 쓰는 3명가량을 제외하고,모두가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순간 이곳을 ‘삼성동 코엑스’라고 불러도 누군가는 믿겠다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국인들이 단체로 미국 번화가에서 흡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의 눈에 비친 것은 매캐한 담배 연기가 아니라 ‘한국인의 수(數)’였다.

최첨단 메타버스의 미래를 소개하는 부스를 갔을 때 재미난 장갑과 슈트를 알리는 얼굴도 상당수 한국인이었다. 대화할 때 굳이 영어를 할 필요가 없다는 홀가분함은 차치하더라도 타국에서 만난 자랑스러운 기업가들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잠시 ‘K’ 자부심이 가슴에 차오르는 듯했다.

혁신 스타트업들이 모인 ‘유레카 파크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부스 상당수에도 한국인 기업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자에게 “학창 시절에 영어를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그랬다”는 한 30대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의 한 마디가 안타깝기보다는 오히려 ‘듣기 좋은 푸념’으로 들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거대한 전시관을 연결한 CES 통로 곳곳엔 10달러면 신발을 깨끗하게 광내주는 구두닦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중 몇몇은 지나가는 기자에게 스스럼 없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니하오(중국인 인사말)’ ‘오하요·곤니치와(일본인 인사말)’가 아닌 ‘안녕하세요’가 그들의 입에서 처음 튀어나왔다는 것도 CES에서 달라진 한국 기업인·관람객들의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국내 기업 전시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도 단연 ‘톱’이었다. LG전자가 260장의 디스플레이를 붙여 자사 부스 입구에 선보인 ‘올레드 지평선’ 사이니지를 본 외국인들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며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싱스 연결 경험을 담은 외벽 미디어 영상을 바라보며, 줄을 길게 선 외국인들의 기대 가득한 얼굴도 잊지 못할 풍경이다.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에 따르면 한국 기업은 이번 CES에 500곳 넘게 참여했다. 이는 개최국인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라고 한다. CTA 관계자들이 “한국 기업의 참가가 행사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 말이 과히 과장된 얘기가 아닌 것이다

유수의 글로벌 IT기업을 추종하고, 중국 기업의 추격에 긴장하며 ‘샌드위치 신세’에 마음 졸이던 한국이 이제는 아니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추종자’가 아닌 ‘선도자’의 자세로 내년 CES도 선전하기를 기대한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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