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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가 임영웅만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공연계 ‘2030 쏠림’ 심각
뮤지컬·연극등 관객 50~60%가 20·30대
젊은 세대 맞춤형 콘텐츠 위주로 제작
50·60대, 공연 보려 해도 “볼 게 없다”
‘어떤가요’·‘맘마미아’…50·60대 콘텐츠 필요
국내 공연시장은 뮤지컬, 연극 등 장르를 아우르며 20·30대 관객 쏠림 현상이 커지고 있다. 홍광호·아이비가 출연하는 뮤지컬 ‘물랑루즈!’는 아시아 초연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으며 20·30대 관객 예매자 비율이 67.5%를 차지한다. [CJ ENM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 유명 뮤지컬의 흥행을 이끈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한국 뮤지컬시장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젊은 관객’을 꼽았다.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들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유럽과 달리 젊고 열정적인 관객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공연계의 독특한 특징인 ‘20·30대 쏠림 현상’이다. 다양성이 부족해진 관객층은 공연시장의 불균형으로 이어져 ‘중장년층의 문화 소외’라는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공연시장은 늘 젊은 관객이 주도해 해외 관계자들은 ‘10~20년 후엔 시장의 외연이 확장되지 않겠냐’며 부러워했다”며 “문제는 관객은 여전히 젊고, 중장년층으로 확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뮤지컬과 연극 장르는 유난히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배우 전미도·신성록이 출연 중인 인기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전체 예매자 중 20·30대 관객비율이 68.3%나 됐다. 홍광호·아이비가 출연 중인 ‘물랑루즈!’(67.5%), 김준수가 출연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64.1%) 등 다수의 뮤지컬과 연극도 20·30대 관객비율이 60% 이상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쏠림은 코로나 팬데믹을 보내면서 더 심해졌다. 공연기획사 클립서비스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동안 해외여행이나 K-팝 가수들의 콘서트가 취소됐다”며 “보복 소비 여파로 20대 관객들이 뮤지컬·연극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고 말했다.

20·30대만 오는 공연장…이유는 따로 있다?!
배우 전미도·강필석·신성록 등이 출연 중인 인기 뮤지컬 ‘스위니토드’. [오디컴퍼니 제공]

공연시장에 20·30대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으로 ▷세대적 특성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 ▷불친절한 관극환경 등 세 가지 이유가 주로 꼽힌다.

20·30대는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공연문화를 즐기기에 적합한 세대다. 원 교수는 “최근엔 경향이 바뀌고 있지만 미혼의 젊은 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봤다. 연령대가 올라가면 결혼, 육아, 자녀교육, 직장 내 위치의 변화 등으로 사회적 요구가 늘어 공연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선 40대 이상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가 많다 보니 중장년층 관객을 안정적으로 형성하는 데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 역시 공연시장에 특정 세대가 몰리는 이유다. 요즘 무대에 올려지는 뮤지컬이나 연극은 20·30대 관객 취향에 최적화된 ‘맞춤 콘텐츠’인 경우가 많다. 원 교수는 “최근 공연업계는 20대 관객들의 입맛과 요구에 맞는 콘텐츠를 통해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팬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아이돌 출신의 스타 배우의 캐스팅해 20·30대가 공감하는 소재로 극을 만들어 수익확보를 노리는 것이다.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동성애 코드와 여성 서사 등의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50·60대 이상 중장년 세대의 문화적 수요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이 세대의 활약이 눈에 띄는 장르는 대중음악 중 트로트가수들의 콘서트다. 가수 임영웅은 최근 2만석의 서울 고척돔을 중장년 여성 관객들로 꽉 채웠다. 공연티켓도 20·30대의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을 불러오는 ‘효(孝)티켓’으로 불렸다. 전문가들은 ‘트로트 광풍’을 단순히 중장년층이 바빠서 문화활동을 외면했다기보다 이들이 즐길 만한 콘텐츠가 많지 않았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이 눌러왔던 문화적 갈증이 트로트 열풍으로 표출됐다는 설명이다.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는 중장년세대 관객으로 시장을 확장한 성공 사례로, 오는 3월 다시 돌아온다. [신시컴퍼니 제공]

결국 ‘관객의 편중’은 ‘소재의 편중’ 때문에 발생했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뮤지컬 장르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곤 ‘힘들어하는 청춘’이나 ‘청춘들의 자아 찾기’ 등의 젊은 세대와 관련한 주제의식으로 치우쳐 있다”며 “50·60대가 공감하기 다소 어려운 소재라 관객 확장에는 저해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외부 요인도 중장년 세대가 공연 관람을 멀리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공연과 공연장에 대한 접근성, 시설의 사용, 홍보마케팅 등이 중장년 관객에게 다소 불친절하다. 중소극장이 다수 있는 대학로는 지역의 상징성으로 중장년 세대의 접근이 쉽지 않아 다양한 공연 콘텐츠에서 멀어진다. 뿐만 아니라 블루스퀘어·코엑스 아티움·디큐브아트센터 등 민간 대극장의 복잡한 동선, 일부 극장의 키오스크 시스템으로의 변화 등은 중장년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키운다.

지 교수는 “공연은 관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티켓 예매부터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 과정의 경험”이라며 “민간 공연장의 경우 공연장 내 주차등록, 티켓 발권 시스템, 동선 등이 극장을 즐겨찾는 젊은 관객 중심으로 맞춰 있어 중장년·시니어 관객들에게 불편한 관극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중장년 이상 관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상황이 이들의 공연에 대한 불편한 경험치를 높여 공연을 멀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콘텐츠·맞춤형 홍보…중장년 관객 유인책 필요
마포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어떤가요’ 시리즈를 통해 40대 이상 중장년 관객층의 수요를 확인했다. [마포아트센터 제공]

공연업계에서 45세 이상 중장년층 관객은 지갑이 두툼한 ‘부유한 관객’으로 통한다. 전문가들이 중장년 세대로의 관객 확장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들을 시장에 편입시켜야 지금의 ‘회전문 관객’ 시스템에서 벗어나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객층의 유입돼야 공연시장 전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

원 교수는 “지금의 공연시장은 새로운 관객을 발굴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데에 소극적”이라며 “소수의 마니아와 스타 팬덤에 기대 시장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관객층의 다양성 확보를 통해 새 시장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도 중장년 세대의 문화 소비욕구를 확인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마포문화재단은 지난해부터 ‘어떤가요’ 시리즈를 통해 40대 이상 중장년층 관객의 수요를 확인했다. 조정현, K2 김성면, 이정봉, 이정석, 이상우 등 1980~2000년대 전성기를 누린 가수들의 무대를 통해 ‘발라드 떼창’을 연출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오는 18일 예정된 세 번째 시즌에선 댄스가수 박남정, 김완선이 무대를 꾸민다. 수익이 중요한 민간 기획사에선 쉽사리 할 수 없는 기획으로, 공공 공연장이 공연계의 관객 확장과 가수들의 설 자리 마련에 기여하고 있다.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중장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청년들 못지않은 문화적 욕구를 간직한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기획한 무대”라며 “청춘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40·50대는 물론 과거 음악과 콘텐츠에 호기심을 가진 20·30대까지 함께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 [신시컴퍼니 제공]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3월 24일 개막, 충무아트센터)도 오는 3월 다시 돌아온다. ‘맘마미아’는 2004년 초연 이후 국내에서 최단기간 200만 관객을 돌파한 뮤지컬이다. 원 교수는 “‘맘마미아’를 통해 공연시장에 중장년 관객이 월등히 확장됐던 만큼 이번 공연에서도 이들을 극장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재 공연 중인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뮤지컬로는 흔치 않게 중장년 관객이 많이 찾는 작품이다. “화려한 쇼이면서도 젊은 시절을 보내온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 코드”(지혜원 교수)가 만들어져 40대 이상 관객에게 인기가 많다.

중장년 세대까지 포용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과 함께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올 유인책도 필요하다. 뮤지컬 ‘물랑루즈!’ 역시 마돈나, 퀸 등 1980년대 가수들의 음악이 대거 등장하는 데다 2001년 개봉한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중장년 세대의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작품이다.

원 교수는 그러나 “중장년 세대가 20대에 즐긴 문화를 볼 수 있는 작품임에도 확장성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홍보마케팅이 필요한 이유다. 지 교수는 “소재와 주제, 배경 등이 중장년층 관객에게 공감할 만한 작품임에도 홍보마케팅이 20·30대를 겨냥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심으로 치우치다 보니 새로운 관객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사례도 많다”며 “각 연령대에 맞는 마케팅을 고민해 관객 확장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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