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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신라이프] 피해자 돕다 가해자 될까 두렵다는 당신에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정의감 혹은 강함을 표현하기 위해 폭력 상황에 처한 피해자를 구해주는 클리셰를 쓸 때가 많다. 막 손찌검을 날리려고 하는 찰나에 가해자의 손목을 낚아채며 멋있게 등장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한바탕 난투를 벌이는 식이다.

이런 장면을 보고 실제로는 저렇게 피해자를 도우려다가 자기가 가해자나 쌍방폭행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떼어놓고 가해자가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아두는 ‘현행범 체포’는 법적으로 누구나 가능한 조치다. 다만 실제로 폭력이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나려 하는 상황이라도 굳이 무력을 사용해 가해자를 ‘공격’할 필요는 없다.

한두 해 전 서울지하철 내에서 있었던 ‘노마스크 슬리퍼 폭행남’ 사건은 이런 상황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좋은 사례다. 가장 먼저 슬리퍼 폭행남에게 항의를 하고 맞은 사람이 있다. 용기 있게 문제 제기를 했고 특별히 잘못한 건 없지만 난동자의 폭언과 폭행은 멈추지 않았고 상해를 입었다. 이런 경우 나중에 법적으로 가면 피해자 지위도 분명하고 보상도 확실히 받을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염려된다. 두 번째로 맞은 사람은 이미 싸울 준비를 하던 사람이었다. 격투기를 좀 배웠었는지 이것저것 뭔가 하려 했는데 그런 의식이 오히려 긴장을 높여 움직임은 둔해지고 드잡이하는 시간만 길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난동자는 자신이 ‘뭔가 제대로 계산된 공격’을 받았다고 느껴 계속 이 사람만 쫓아다니며 재차 공격을 시도하는 바람에 더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과잉 방위이자 쌍방폭행이고, 난동을 멈추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두 사람을 떼어놓으며 싸움을 말리는 2명이 있었다. 이들은 생각보다 쉽게 난동자를 차량 끝 쪽까지 데리고 가, 잠시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또한 본인들도 공격받거나 다치는 일 또한 없었다.

만약 “도와주면 내가 가해자가 되는, 더러운 법” 운운하는 생각이 앞선다면 혹시 자신이 ‘영웅심리와 무력을 과시하고 싶은’ 게 아닌지 자문해봤으면 한다. ‘피해자를 도와준다’는 의미를 ‘가해자는 나쁜 사람이니 혼내준다’, 즉 사적 제재로서의 물리적 공격으로 이해한다면 ‘약자를 도와 악인을 혼내주는 영웅’이 되고 싶은 판타지가 깔려 있을 확률이 크다. 쌍방폭행이나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개입 안 한다는 말의 이면엔 ‘내가 영웅이 돼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호신술을 지도하면서 종종 ‘폭력 상황에 효과적으로 끼어들어 조력자가 돼주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실제로 폭력 상황을 마주한 학생들이 이 방법들로 문제 없이 사태를 진정시킨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무력을 사용하는 방법도 아니고 어렵거나 복잡한 방법도 아니어서 다들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고 하며 상황은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내가 주인공·구원자·영웅이 될 수 있는가 또는 누군가를 응징·처벌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문제 상황 자체에 집중하면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필요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기태 ASAP 대표강사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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