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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곡가 김효근, 뮤지컬까지 영역 확장 “아트팝의 대중화·세계화 이뤄질 것”
한국 가곡계의 ‘스타 작곡가’ 김효근
 
히트곡 ‘눈’…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
경영학 교수 강점 살려 예술 혁신 선도
 
예술성에 대중성 더한 ‘아트팝’ 창시
강점 살리고 단점 보완해 가곡 부활
아트팝 오페라ㆍ아트팝 뮤지컬 확장
연가곡집 ‘사랑해’ 수록곡으로 만든
마포문화재단 뮤지컬 ‘첫사랑’ 시도
예술 생태계 가꾸는 아트 플랫폼 개설
 
“아트팝의 대중화ㆍ세계화 이뤄질 것…
제2의 가곡 르네상스 오리라 믿어”
한국 가곡의 부활을 이끈 김효근 작곡가는 한국 가곡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든 주역으로, 아트팝 장르를 창시해 아트팝 오페라, 아트팝 뮤지컬로 가곡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 1981년 제1회 대학가곡제 대상(‘눈’) 수상.

#2.뮤지컬 배우 박은태의 ‘내 영혼 바람되어’ 760만 조회수.

#3. 모든 넘버(음악)를 가곡으로 만든 최초의 뮤지컬 ‘첫사랑’.

#4. 국내 최초 예술가, 애호가, 공연장을 연결하는 예술 아트 라이프 플랫폼 ‘아트링커’ 개설.

‘혁신’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1970~80년대 가곡 최전성기에 ‘불멸의 히트곡’(눈)을 냈고, 2000년 이후 찾아온 침체기엔 ‘가곡의 부활’을 이끌었다. 그의 첫 가곡 ‘눈’은 성악 지망생과 학부생들의 단골 레퍼토리였으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첫사랑’ 등은 ‘팬텀싱어’(JTBC) 출신을 비롯한 스타 성악가들이 불러 사랑받은 ‘대중의 가곡’으로 자리했다. 이 화려한 명성의 주인공은 김효근. 명실상부 ‘한국 가곡계의 스타 작곡가’다.

김효근 작곡가는 캐릭터가 많다. 음악가이면서,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경영대 교수’다. 그 둘을 반반씩 결합한 ‘아트 플랫폼’의 대표이기도 하다. 전혀 다른 분야를 아우른 긴 시간의 실험과 도전의 결과는 한국 가곡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김효근 교수를 만나 그의 가곡 대장정과 예술 혁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작곡가 김효근이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있다. 임세준 기자

■ 지루한 가곡 되살린 ‘대중화의 주역’…아트팝의 시작

‘김효근’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김효근 교수의 가곡은 기존의 가곡과는 다르다. 그의 가곡은 ‘아트팝(Art 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정착됐다. “가곡의 예술성에 대중성을 더했다”는 의미로, 작곡가 스스로 만든 장르다. 이 아트팝은 지난 10여년 사이 한국 가곡계의 흐름을 바꾼 ‘새로운 바람’이다.

김효근 교수의 가곡이 세상에 처음 나온 때는 명실상부 ‘가곡 전성기’였다. 쟁쟁한 “작곡과 학생 90여명”이 줄줄이 도전장을 낸 제1회 대학가곡제에서 김효근은 유일한 비작곡과 학생이었다. 그는 이때 내놓은 ‘눈’을 “아트팝의 원조”라고 말한다. 직접 쓴 시에 독학으로 익힌 피아노로 곡을 붙인 가곡이다.

“그 당시에 ‘눈’이라는 곡이 대상을 받을 수 있던 이유는 ‘아트팝’이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평가 기준이 따라부르기 쉽고, 부르면서 즐길 수 있고,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을 수 있는 창작가곡이었어요. 현대음악으로 작곡을 부르는 학생들은 야단맞지 않으려 어렵게 곡을 써야 했는데, 전 그런 작곡 기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관객 입장에서 정서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음악 요소를 선택한 거예요.”

각 방송사에선 9시 뉴스가 방영하기 전 가곡 뮤직비디오를 틀어줄 만큼 명실상부 ‘가곡 전성기’였으나, 변화의 조짐은 이미 도사리고 있었다. 김 교수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해결안을 만들었던 것이 시대와의 결합이 됐다”고 봤다.

‘눈’의 대성공 이후 ‘공식적’ 음악활동은 내려놓고, 학업의 길로 접어든 김 교수가 한국 가곡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근 것은 2007년 이후다. 김 교수가 가곡계에서 시도한 끊임없는 실험은 일종의 ‘문제의식과 우려’에서 시작됐다. 가곡이 시대의 흐름에서 빗겨났다는 문제의식, 이러다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2000년대 중반은 지금 못지 않은 대중음악 전성기였다. ‘문화대통령’으로 불린 서태지와 댄스음악 전성기인 1990년대를 지나 K팝 그룹과 발라드, 힙합 등 대중음악이 주류가 된 시기다.

“그 무렵의 가곡에 대한 인식은 한결 같았어요. ‘가곡? 듣기 싫어요. 세상에 좋은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들어요. 올드하고 재미없어요.’ 이런 반응이 다수였죠.”

새로운 가곡을 내놓는 ‘생산 매커니즘’과 달리,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박물관에 전시될 ‘지켜야 할 음악’으로만 여겨졌고, 오랜 시간 대중과는 서서히 멀어졌다. 음악가가 직업인 사람들이 자비를 털어 가곡 공연을 열었지만, 당연히 수익도 나지 않았다.

“경영학은 기본적으로 대중친화적이어야 성공한다는 이론의 학문이에요. 전통적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은 엎치락뒤치락 했어요. 창작자가 나의 세계만 오롯이 담아낼 수 있다면 이해받지 못해도 좋다는 관점도 여전히 있고요. 스펙트럼이 혼재된 상황이죠. 하지만, 대중에게 버림받는 수준이 되면 생계가 곤란해지고,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어요. 전 본능적으로 예술성을 지키면서 대중성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제3의 방법이 없을지, 굉장히 갈급하며 오래도록 찾아왔어요.”

고심에는 ‘철저한 분석’이 따라왔다. “가곡의 강점은 살리되 약점은 보완한다”는 것이 아트팝의 출발이었다. 그 결과 아트팝은 전통 클래식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 있다.

“가곡의 강점은 시(詩)로 쓴 노랫말과 아름다운 선율이에요. 은유와 예술성을 담보로 인간의 삶과 생을 노래한 주옥같은 가사, 클래식의 400년 역사에서 살아남은 촌스럽지 않은 선율의 특징은 지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정적인 가사와 중독성 있는 화성의 특징을 음악으로 반영하는 거죠.”

문제는 단점이었다.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접한 세대들에게 피아노 연주에 노래하는 가곡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음악”이었다. 김 교수는 “당시까지 있던 발라드나 애시드 재즈, 컨템포러리 뉴에이지 등 이지 리스닝 계열의 세련된 음악 요소를 피아노 반주와 연주에 적용했다”며 “이게 아트팝 운동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그의 아트팝 1집인 ‘내 영혼 바람 되어’(2010)가 탄생한 배경이다.

아트팝의 특징은 흥미롭게도 대중음악의 특징과도 닮았다. “중독성 높은 선율, 모두가 공감하는 가사”, 여기에 “세련된 화성, 기승전결의 음악 전개, 문학적 서사구조”가 더해진다. 발음 역시 기존 성악 발성의 관행을 깼다. 김 교수는 “성악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대중이 듣기 싫어하는 요소가 없는 발성”을 찾는 데에 고심을 거듭했다. 성악가들이 고음을 부를 때 가사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는 약점이었다. 아름다운 우리말 노래인데도, 가사 전달력이 떨어지자 대중의 감동도 반감됐다. 김 교수는 “이탈리아의 정통 밸칸토 창법을 한국화했다”며 “한국어 자음이 정확하게 들리는 발성 위치로 보내는 창법을 오랫동안실험해 적용했다”고 말했다.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음반이 나오고, 당시 라디오(클래식FM ‘가정음악’)에서 등장한 ‘내 영혼 바람되어’로 인해 댓글창은 호평 일색이었다. 이 곡은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유족들을 위로하는 성악가들의 헌정 합창으로 온 국민의 마음을 울렸다. 김 교수는 “어쩌면 생존위협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솔루션으로 시도한 것”이 “대중의 힘으로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첫사랑’으로 예술감독으로 함께 한 작곡가 김효근과 음악감독 이진욱, 배우 양지원. 임세준 기자

■ 오페라·뮤지컬·아트 플랫폼…아트팝의 실험과 확장, 최초의 시도

김효근 교수의 아트팝은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냈고, 그 히트곡은 수많은 성악가와 뮤지컬 배우들을 통해 다시 불렸다. 아트팝이 태어나고, 이후 10여년간 이어진 실험과 운동은 마침내 만개하고 있다. 아트팝으로 시작한 ‘가곡 운동’은 지금 수많은 ‘최초의 결실’로 이어진다. ‘아트팝 오페라’, ‘아트팝 뮤지컬’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가곡, 오페라, 뮤지컬 모두 제가 좋아하는 보컬 뮤직의 큰 장르”라고 말했다.

‘아트팝 오페라’의 탄생 역시 대중과 멀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3년 전인 2020년부터 실험한 아트팝 오페라 ‘안드로메다’는 ‘팬텀싱어 시즌3’에 출연한 성악가 윤서준이 주연을 맡으며, ‘아트팝 아리아’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첫사랑’(4일까지, 마포아트센터)도 도전이자 파격이다. ‘첫사랑’은 2012년 발매된 김효근의 아트팝 연가곡집 ‘사랑해’에 수록된 12곡의 가곡을 넘버로 삼아 관객과 만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이 한국가곡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 2018년부터 꾸준히 가곡 공연을 기획해오다 김효근 교수의 음악으로 ‘가곡 뮤지컬’ 제작을 시도했다.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김 교수는 ‘가곡의 뮤지컬화’에 두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공연계의 가장 인기있는 장르로 정착한 뮤지컬과 만났을 때, 가곡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에 더욱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사랑’에선 김효근 작곡가의 인기 가곡들이 뮤지컬이라는 새 옷을 입고 무대를 채운다. 극의 모티브가 된 ‘첫사랑’과 수록곡인 ‘사랑의 꿈’은 김효근 교수가 지금의 아내에게 바친 ‘프러포즈 송’이기도 하다. “이 두 곡이 뮤지컬 안에서 연주되는 것이 기적 같고 신기해요. (웃음)” 기존 가곡의 기본 선율과 가사를 유지한 만큼 편곡의 이질감도 찾을 수 없다. 김 교수는 “가곡 장르의 장점이 대사와 춤 동작과 함께 전달될 때 힘이 커지도록 구성했다”며 “극의 스토리와 가곡의 가사, 음악요소가 잘 붙은 극작이 됐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뮤지컬이 김효근 교수의 ‘히트 가곡’을 드라마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라면, ‘K아트팝 가곡의 밤’(9월 14일, 예술의전당)은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무대다. 이 공연은 처음으로 ‘K아트팝’이라는 붙인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아트팝 가곡이 가진 문학적 특징이 세계 보편적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지금 팝페라와 클래시컬 크로스오버는 안드레아 보첼리, 사라 브라이트만과 같은 빅스타가 여전히 장르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고, 그 이후 세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어요. 한국의 뛰어난 성악가들이 보편적 정서를 담은 아트팝으로 세계 무대를 사로잡는 시대가 올 거라 믿어요. 그 첫 실험을 보여주는 공연이에요.”

작곡가 김효근. 임세준 기자

김 교수의 예술 혁신의 정점은 ‘아트링커’라는 세상에 없던 ‘아트 플랫폼’으로 이어진다. “예술 공급자, 애호가(소비자), 공연장이 어우러져 각자의 ‘아트 라이프’의 목표를 달성하는 플랫폼”이다. 이 역시 문화예술계에 함께 하며 바라본 안타까움이 계기가 돼 태어났다.

“한국의 문화예술계는 경제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생태계가 왜곡돼 있어요. 공급은 넘치고, 수요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기득권 그룹이 무명이나 젊은 예술가들이 뜻을 펼 수 있는 환경을 통제하죠. 아티스트는 생계 걱정 안 하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평생 문화예술 향유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어요. 공연 예술 전반을 감상하고 창작하고, 학습하면서 교류하는 플랫폼이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쉽게는 전국 공연장에서 올라가는 공연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의 티켓과 프로그램북도 저장할 수 있다. ‘탄소중립’ 시대에 “매일밤 좌석수만큼 만들어지는 종이 팸플릿 처리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평생 소장할 수 있는 기능”도 담았다. 김 교수는 “벌써 젊은 세대엔 반응이 있어 지식 검색은 네이버, 친구 검색은 인스타그램, 공연 검색은 아트링커라는 움직임도 보인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귀띔했다.

‘경영학 박사’이자 교수라는 그의 이력을 먼저 들으면 일련의 행보는 ‘의외성’을 안긴다. 김 교수는 하지만 “삶은 예술이고 그 행위를 하는 나는 아티스트라는 존재론을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을 하든 새로운 시각이 결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근 교수의 ‘가곡 대장정’과 예술 사업에 ‘혁신’이 따라오는 이유다.

김 교수의 아트팝은 이제 더 큰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해외에선 그의 ‘아트팝 운동’을 음악학적으로 분석한 석박사 논문까지 나오고 있다. 아트팝의 등장 시기가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진화하던 때와도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2009년 이후 ”어려운 어법 대신 ‘대중친화적 세련된 클래식’으로의 변화”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런 이유로 아트팝을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흐름과 궤를 함께 하는 한국발 창작”으로 보는 이론이 속속 등장 중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선 윤학준 박대웅 김주원 황미래 등 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아트팝 작곡’을 선보이며 새 시대의 가곡을 열고 있다.

“아트팝 운동은 가곡의 매력을 높이고, 자생적으로 힘을 키우자는 운동이었어요. 지금 아트팝이 주도하는 가곡 트렌드는 저 혼자서 이룬 게 아니에요. 세계적인 수준의 탄탄한 실력을 갖춘 후배 작곡가들이 주옥같은 가곡을 선보이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어요. 이제 아트팝은 장르를 확장해 뮤지컬로는 대중에게 다가서고, 한국의 훌륭한 성악가들과 함께 세계화 전략의 첫 걸음을 떼는 시기가 맞았어요. 이미 제2의 가곡 르네상스가 오고 있고, 올 거라고 믿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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