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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으로 친구·가족이 된 사람들...고잉홈 프로젝트는 ‘우리의 꿈’”
첼리스트 김두민, 피아니스트 손열음 인터뷰
14개국서 활동 전·현직 교향악단 단원 80명
유례없는 음악가들의 오케스트라 ‘고잉홈’
30일부터 롯데콘서트홀서 창단 음악제
서로 끌어주고 도와줘야 음악시장 성장
문화 나눠 변화하고픈 ‘음악 백년지대계’
‘고잉홈 프로젝트(Going Home Project)’의 첼리스트 김두민(왼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고잉홈프로젝트 제공]

‘집으로(Going Home)’.

“‘홈’엔 여러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음악가들에겐 음악 자체가 ‘홈’이에요. 좋은 음악이 있는 곳이 진짜 우리의 집이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손열음)

14개국에서 80명. 전 세계 교향악단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른바 ‘고잉홈 프로젝트(Going Home Project)’. 누군가에겐 ‘무모한 첫발’처럼 보였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오케스트라였다. 음악가들이 주체가 돼, ‘음악가들의 오케스트라’를 만든 일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조력자로 함께 했을 뿐인데도, 때때로 지금이라도 엎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지 않다는 걸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고잉홈 프로젝트’를 주도한 첼리스트 김두민은 “모든 음악가들이 모험을 떠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험을 떠나는 길이기에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역경을 딛고 지난해 12월 창단한 ‘고잉홈 프로젝트’가 마침내 관객 앞에 선다. 창단 첫 음악제인 ‘더 고잉홈 위크(The Going Home Week)’(7월 30~8월 4일·롯데콘서트홀)를 통해서다. 연주회를 앞둔 ‘고잉홈 프로젝트’의 첼리스트 김두민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만났다.

제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조성현, 김두민, 손열음. [연합]

◆ 도전의 첫발…평창에서 뿌린 씨앗

‘고잉홈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열음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선 전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PFO)를 결성했다. 첼리스트 김두민, 플루티스트 조성현, 호르니스트 김홍박도 당시 PFO를 통해 처음으로 ‘한 음’을 맞추게 됐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었다. 일 년에 한 번으로 남겨 두기 아쉬운 마음이 음악가들에게 깊이 남았다.

“음악제를 통해 오케스트라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됐지만, 저희에겐 과정이 더 중요했어요. 막상 만나보니 유럽에서 오케스트라 생활을 했을 때와는 다른 감동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나눈 감동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 안에서 연대와 끈끈함이 생겼어요.” (김두민)

당시 첫 공연의 제목도 ‘집으로’였다. 그때의 “감동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고잉홈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김두민과 조성현 김홍박이 이 단체의 주축이 됐다.

“처음엔 ‘한국이 집이었던 사람들’, 그래서 원래의 집으로 돌아온다는 개념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단체화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직까지도 이런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너무 올드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손열음)

‘홈’은 집을 넘어 ‘음악’으로, ‘가족’의 개념으로 확장했다. ‘고잉홈 프로젝트’에 모인 80명의 단원 중 “스무 명은 한국과는 큰 연관이 없는 음악가”(손열음)다. “국적을 넘어 음악으로 모인 감동을 뿌리 삼아 친구와 가족이 된 사람들이에요. 거기에 홈의 의미를 담았어요.” (김두민)

첼리스트 김두민 [더고잉홈프로젝트 제공]

◆ ‘음악계 어벤저스’ 모인 오케스트라…불꽃 튀는 순간의 향연

이렇게 모인 ‘고잉홈 프로젝트’의 면면도 그야말로 화려하다.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이름 있는 음악가들이 모두 모였다. 국내외 음악가가 섞여 있지만, 과반 이상은 한국인이다. ‘고잉홈 프로젝트’는 세상에 나오며 의도치 않게 세계 최정상 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 있는 한국인 음악가의 수치까지 한눈에 보여줬다.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종신 수석으로 활동한 김두민은 “예전보다 한국인 음악가들이 많이 늘고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노력을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해주는 시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열음도 김두민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2010~2011년 무렵만 해도 젊은 동양인들을 향한 편견이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좋은 것만 얻어 돌아가는 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 시대도 많이 변했고, 차별도 지양해야 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한국인 음악가의 활동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손열음)

그럼에도 여전히 ‘높은 벽’은 존재한다. “비슷한 실력이라면 단원으로 한국인을 절대 뽑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몇 배로 잘 해야 세계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니 지금 유럽이나 미국에서 오케스트라에 고용된 연주자들은 정말 월등하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고, 높은 허들을 건너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에요. 저희는 우스갯소리로 ‘어벤저스 오케스트라’라고 해요.(웃음)” (김두민)

실제로 그렇다. ‘고잉홈 프로젝트’는 ‘음악계 슈퍼 히어로’들의 집합이다. 한 공간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가 눈을 맞추고, 아이언맨과 헐크가 기세 좋게 음을 쌓는다.

워낙 서로 다른 색의 단체에서 활동해온 시간이 길지만, ‘조화 속 부조화’는 찾을 수 없다. 김두민은 “맞지 않는 건 중요하지 않다”며 “어벤저스가 오케스트라를 하다 보니 그 감동이 너무 크다”며 웃었다.

“사실 오케스트라 단원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라도 지휘자에 순응해야 하고, 다른 파트와의 생각 차이를 받아들여야 해요. 제 생각엔 어벤저스들은 순응 능력도 더 뛰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꽃 튀는 화려한 순간 순간들이 나오고 있어요.” (김두민)

피아니스트 손열음 [크레디아 제공]

‘함께’이면서 빛나는 개인…기존 오케스트라 특성 탈피

‘고잉홈 프로젝트’의 첫 음악제는 프로그램도 예사롭지 않다. ‘음악계의 어벤저스’는 ‘작정하고 시도’했다. 개막 프로그램으로는 희대의 문제작인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봄의 제전’을 지휘자 없이 연주한다. 손열음은 개막 공연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개막곡 선정과 구성에도 이들만의 이유가 있었다. 손열음은 “고잉홈 프로젝트는 기존 오케스트라의 특성을 탈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장이고, 지휘자의 도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지휘자 없는 공연을 시도했어요. 실내악이 거대해진 ‘실내악의 확장판’ 같은 공연인 거죠. 가장 초점을 맞춘 것은 자발성이에요. 기존의 오케스트라를 수동태라고 본다면, 고잉홈 프로젝트는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어요.”(손열음)

이미 PFO를 거치며 ‘지휘자 없는 교향곡’ 무대를 선보였다. “그 때만 해도 정말 지휘자 없이 연주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다들 능동적으로 해서 자랑스럽고 보람되게 연주를 마쳤어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보니, 실험의 폭을 넓혀 봤어요. 무모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한계를 실험해보고자 한 거죠. 지금은 어벤저스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웃음)” (김두민)

‘봄의 제전’을 선곡한 것도 ‘고잉홈 프로젝트’의 탄생과 맞닿는다. 손열음은 “이 곡만큼 세상에 태어나며 문제가 됐던 작품은 많지 않다”며 “우리의 탄생도 그렇게 받아들여달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 곡을 골랐어요.” (손열음)

이번 음악제에선 ‘고잉홈 프로젝트’의 방향성도 읽을 수 있다. ‘함께’를 보여주면서도 실력있는 ‘개인’으로의 존재감도 드러낸다. ‘볼레로 : 더 갈라’(8월 2일)와 실내악 공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모든 기능을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예요. 실내악은 물론 솔로도 할 수 있는 단원들이기에, 어떤 조합도 가능해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단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김두민)

[고잉홈 프로젝트 제공]

‘음악의 토양’ 다지고, ‘미래 세대’ 키우는 고잉홈 프로젝트

‘고잉홈 프로젝트’는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들이 나고 자란 ‘음악의 토양’을 다지는 것에 방점을 뒀다. 오랜 음악 활동으로 세계 무대를 누볐고,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선배 음악가’들이 ‘미래 세대’를 끌어주는 자리로 그들의 역할을 확장한 것이다.

손열음은 “‘고잉홈 프로젝트’는 100년을 바라보면서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단지 ‘음악’이 좋아 하나되기 위해 모인 단체를 넘어선 목표가 세워졌다. ‘세계적 수준의 악단 조직’, ‘다양한 레퍼토리로 정기 공연 개최’, ‘차세대 음악인 양성’이다.

“음악가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곳이 좋아서 하는 선택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반면, 음악 환경과 직업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의적으로 나가 계신 분들도 많다는 것에 공감을 했어요.”

‘고잉홈 프로젝트’의 롤모델인 된 단체는 ‘부다페스트페스티벌 오케스트라’다. “기존 오케스트라의 관료주의적 구조나 환경을 벗어나, 연주자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악단”을 꿈 꾸고 있다.

손열음은 “우리가 선택한 삶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화적 차이를 겪으며 겪는 애환도 없진 않다”며 “다음 세대는 우리와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우리가 다같이 잘 되지 않고 한두 명이 잘 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서로 끌어주고 도와줘야 음악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데 각개전투로 활동해온 우리의 시간들이 결국 화살이 돼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더 많이 서로를 끌어줘야 우리 모두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손열음)

“고잉홈 프로젝트는 우리의 꿈이에요. 음악과 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해, 음악계를 향한 후원, 가치를 인정해주는 문화를 나눠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가치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지만, 저희가 그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성공을 했다고 생각해요.” (김두민)

전 세계에서도 유례 없는 음악가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오케스트라 ‘고잉홈 프로젝트(Going Home Project)’의 첼리스트 김두민과 피아니스트 손열음. [고잉홈프로젝트 제공]

◆ 확장하는 음악가의 삶…“마음으로 하는 음악, 솔직한 연주가 지향점”

일찌감치 영재로 불렸고, 차세대 ‘클래식 스타’로 주목받았다. 음악계에서 쌓아온 ‘시간의 길이’는 그들의 현재를 ‘확장하는 음악가의 삶’으로 이끌었다.

김두민은 2004년부터 18년간 몸 담은 뒤셀도르프 심포니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올해 서울대 음대 기악과의 전임교수로 임용됐기 때문이다. 첫 학기를 보낸 김두민은 “학생들에게 음악의 기능과 감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직 제 가르침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주자인 게 훨씬 쉽더라고요. 학교에 오니,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이 저와도 맞아야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더라고요. 제 교육관을 잘 전달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학생들에게 음악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의 가치에 10점을 매길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방향이 될 거예요.” (김두민)

손열음은 누구보다 ‘자아’가 많은 음악가이고,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팔방미인’이다. 피아니스트이면서 칼럼니스트이고, 기획자다. 정작 그는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하는 활동은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양한 활동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음악을 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설명을 쓴 것이 글이 됐고, 제 공연의 프로그램을 짜던 것을 다른 공연에 했더니 기획자로 받아들여주시더라고요. (웃음) 약간의 확장이었어요.” (손열음)

여러 분야에서 역량을 드러냈기에 손열음의 행보는 더 부각된다. 평창대광련음악제는 2016년 부예술감독으로 시작, 2018년부터 음악감독으로 임명돼 이끌고 있다. 다양한 실험 위에 음악적 영감과 감동이 피어나는 음악제다.

“여러 일을 하는 것은 사명감 같은 것이 있어요. 그동안 음악 활동을 하며 제가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받을 이유가 없는데, 받은 것이 많아 나누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손열음)

음악가로 평생을 걸어온 두 사람이 가지는 ‘음악가로의 지향점’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여러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심에 두는 것은 ‘연주자로의 삶’이다.

손열음은 “50대가 됐을 때는 피아노만 치고 싶다”며 “지금도 꿈이 있다면 피아노를 더 잘 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이 도구가 되는 것이 예술이잖아요. 마음으로 하는 음악, 진정성을 담아내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손열음)

김두민은 “20대부터 지금까지 음악하는 사람으로의 지향점은 늘 같았다”고 말했다.

“‘오늘 하루, 나의 솔직한 연주를 하자’. 전, 매일 그렇게 무대를 나가고 있고, 사실 그보다 더 원대한 꿈을 가진 적은 없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도구로 솔직한 음악을 하자, 그게 제가 원하는 바인 것 같아요.” (김두민)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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