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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사는 설계·건축·관리·소멸…전 과정의 지휘자” [人터뷰-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국내 최대 건축사 조직의 역할·과제
8월부터 협회 의무가입제 시행
과당경쟁·자격대여 문제해결 기대
건축사, 책임은 무한대 보상은 부족
감리업무 사업주로부터 독립 필요
소규모 주거시설 훌륭하게 설계
앞으로 건축사의 중요과제 될 것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건축사에 대해 “설계 만이 아니라 공사 전반에 걸쳐 건축물이 생성되고, 유지관리, 소멸될 때까지 전 과정을 조정하는 총괄자”라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임세준 기자

‘건축물의 설계 및 공사 감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기술자’.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에서 요약한 ‘건축사’의 정의다. 건축사법에 따르면 5년제 건축학과나 동등한 학위과정을 마치고 건축사사무소에서 3년의 실무수련 과정을 거친 후, 건축사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통칭한다. ‘건축학개론’의 승민(엄태웅역)이나 ‘겨울연가’의 민형(배용준역)의 정확한 직업이 건축사다.

우리나라엔 이들 건축사들이 모인 ‘대한건축사협회’(이하 협회)가 있다. 1만3000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건축사 조직이다.

이 협회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건축사사무소를 연 건축사는 반드시 협회에 가입하도록 ‘의무가입’을 명시한 건축사법 개정안이 오는 8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건축사들이 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는 게 뭐 대수인가 싶지만 협회에선 분위기가 다르다. 석정훈 협회 회장은 “건축사들이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의무가입의 의미를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효령로 건축사회관 8층에서 석 회장을 만나 의무가입 시행 등 여러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용어 설명부터 해주시죠. 요즘 주택 등 건물을 재테크적 접근 뿐 아니라 건축적이고 예술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미디어가 많아졌습니다. 건축사나 구조기술사 등이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보다 보면 이들을 지칭하는 직업이 건축사, 건축가, 건축설계사 등 다양하게 표현돼 일반인들은 좀 헷갈립니다.

▶ “사실 우리 회원 중에도 그 부분에 민감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건축사와 건축가는 국가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나뉩니다. 국토교통부에서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건축사로 불립니다. 건축학과 교수, 인테리어 시공업자 등 건축 관련 일을 하지만 자격증이 없는 경우 스스로를 건축가로 지칭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건축가는 법률적 용어는 아니고 인문학적 용어입니다. 건축설계사란 표현은 건축사 업무 중에 설계업무만 부각한 표현입니다. 건축사 밑에서 설계 일을 하는 분들을 건축설계사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건축구조기술사는 별도 자격시험을 거쳐야 하는 또 다른 직업입니다. 건축사가 설계한 건물을 실제 짓는데 구조적으로 안전한 지에 대해 전문적으로 검토합니다.”

석 회장은 건축사에 대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설계 만이 아니라 공사 전반에 걸쳐 건축물이 생성되고, 유지관리, 소멸될 때까지 전 과정을 조정하는 총괄자”라고도 의미를 부여했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맞이하면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달라집니다. 그저 ‘사는 곳’이란 차원에서 벗어나 세심한 부분에서 안전은 물론 아름다움까지도 추구합니다. 유럽에 아름다운 나라가 많은 이유는 도시를 구성하는 하나하나 개별 건축물이 멋지기 때문입니다. 국민소득 4만불을 바라보는 지금의 대한민국도 역사에 남을 그런 아름답고 멋진 건물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건축사들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하겠네요. 건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직업인으로서 건축사의 인기도 높아지지 않았나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젊은이들이 건축사 일을 잘 하려 하지 않아요. 지난 6년 동안 건축학과 졸업 인원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건축사사무소 취업률은 계속 떨어졌어요. 5년제 건축학과 졸업생의 건축사사무소 취업률은 2010년까진 50%를 넘었으나 최근엔 40% 수준에 불과해요.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면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건축사사무소 근무환경도 많이 열악하고요.”

석 회장은 건축사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 건축과 전공자들 중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혼신을 다해 건축물을 완성했는데 정작 준공식 자리엔 건축사의 자리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대신 건축물을 짓는 과정에서 생기는 온갖 책임은 모조리 건축사들의 져야 한다. 건축물 한 동을 짓는 데 많게는 40개에 달하는 심의를 받는 일도 있다.

“건축사는 심지어 토목, 전기 시공 문제도 책임을 집니다. 시공 과정의 불법은 건축사와 상관없는데도 말입니다. 일은 많고, 책임은 무한하고, 임금은 충분하지 않으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요.”

석 회장은 “건축사사무소들의 과다경쟁과 저가수주 관행”도 업계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건축사가 두 달 이상 매달려야 하는 330㎡ 규모 건물에 대한 설계 업무를 예로 들었다. 석 회장에 따르면 설계비 뿐 아니라 각종 심의나 관계기관 협의에 필요한 비용 등을 고려하면 최소 3000만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 이 금액을 받는 건축사사무소는 상위 5% 미만에 불과하다. 1000만원을 받는 업체도 있고 심지어 500만원만 받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건축사 자격대여 같은 불법 행위가 만연한 것도 원인입니다. 건축사명칭 사칭 직원에 대한 관리 소홀 등도 심각하구요. 이는 건축사 명예를 실추시키고, 부실한 건축 설계의 원인이 됩니다.”

석 회장은 8월부터 시행하는 ‘건축사 협회 의무가입’이 중요한 건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임의가입제 상황에서는 협회가 자격대여 등 잘못을 저지른 회원에게 징계를 내려도 탈퇴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었지만 앞으론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의무가입이 시행되면, 건축사 자격대여와 차용 등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건축사사무소 문제와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협회 차원의 제재에 실효성이 생긴다. 개정 건축사법에는 ‘건축사의 협회 가입 의무화’ 뿐 아니라 ‘건축사 윤리규정 제정 및 윤리규정 위반 시 징계’ 등 징계 규정도 두고 있다. 석 회장은 이는 결과적으로 “과당 경쟁을 완화하고, 건축사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무가입이 시행되면 전국 17개 시도건축사회별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대대적인 자정운동을 할 계획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윤리선언서를 제정하고 올해 9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2022 대한민국건축사대회’에서 대국민 선포식도 진행할 예정이고요.”

-얼마 전 일어난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같은 사고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건축사는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책임도 있는데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감리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감리시장에도 저가 수주 관행이 팽배해요. 감리 담당자가 사업주에 종속된 갑을 계약관계여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감리가 사업주로부터 독립될 수 있도록 계약제도를 대폭 개정해야 합니다. 광범위한 영역의 업무를 분할해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세분화하고, 분리 발주해 책임 있고 전문성 있는 감리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석 회장의 이런 생각은 최근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협회 차원의 규제개선 요구 사항에 잘 반영돼 있다. ‘건축설계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설계대가 현실화’, ‘건축물 안전강화를 위한 공사감리자 독립성 강화’, ‘건축 관계 전문 기술자의 업무 범위 및 책임분리 명확화’ 등이다.

석 회장은 “소규모 주거시설을 누구나 살고 싶도록 훌륭하게 설계하는 게 앞으로 건축사들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너무 올라서 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아파트 말고도 매력적인 빌라(연립, 다세대주택)나 도시형생활주택을 적극 공급하면, 서민 주거환경이 훨씬 좋아질 것이란 생각에서다.

“우리나라 빌라 패턴은 전부 비슷합니다. 소형주택이라도 젊은 청년들이 살고 싶게 지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최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작가 중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칠레 빈민들을 위한 소형 공공주택 프로젝트로 이 상을 받았어요. 도심지의 비싼 땅값과 제한된 공적자금을 고려해 전체 집의 반만 지어 제공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일단 살다가 거주자들이 추후 손쉽게 증축하도록 공간을 남겨두는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축사들 사이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협회가 그런 건축사를 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박일한·서영상 기자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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