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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 강화· 4050 세대 집중…서울시뮤지컬단의 실험과 도약” 
서울시뮤지컬단 김덕희 단장, 배우 박성훈 인터뷰

‘지붕 위의 바이올린’부터 ‘알로하…’까지 
예년보다 2배 이상 증가…올해에만 네 작품
국공립단체로의 공공적 역할·관객 요구 수행
창작 신작, 4050 세대 배우ㆍ관객에 집중
“뮤지컬단의 가장 큰 자산과 강점은 단원”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서 러시아 폭정을 피해 피난을 떠나는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우리가 왜 떠나야 합니까?” 1905년 제정 러시아 시대,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 아나테브카의 유대인들이 오래도록 뿌리내린 마을을 떠난다. “이곳의 낙엽, 바람, 모자…아쉬울 건 없잖아.”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그리움을 담아 건넨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눈발이 날리는 무대를 걸었다. 지나온 삶만큼의 짐을 지고 새로운 곳을 향해 갔다.

올해로 여덟 번째 시즌을 맞은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8일까지·세종문화회관)의 한 장면. 100여년 전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 마을의 역사와 변화를 담은 이 작품은 여느 시즌과는 다른 깊이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아나테브카를 떠날 수 밖에 없는 마을 사람들의 삶은 또 다른 희망이었을까요, 절망이었을까요. 그건 시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엔 희망일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도 10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나오는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도 절망적이죠.”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낡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제는 아무도 낡은 이야기라고 할 수 없는 명작”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전통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아버지 테비에가 전통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딸들을 시집보내는 이야기에,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마주한 비극을 더했다. 시대를 초월한 힘이 작품 내내 가로지른다. 서울시뮤지컬단 소속으로 테비에 역할을 맡은 배우 박성훈은 “배우는 감정이나 드라마를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임에도 매순간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말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점에 더해 전 세계인의 공통된 감정인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가족애 등의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어 공연 때마다 명작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어요.” (박성훈)

누구나 공감할 정서 위에 ‘화려한 쇼’가 더해졌고, 기저엔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라는 무거운 주제 의식이 담겼다. 김덕희 단장은 “작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문맥 사이에 숨은 의미가 굉장히 많다”며 “이 작품이 명작인 이유는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편하게 보면서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올초 취임한 김덕희 단장(왼쪽)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안호상 사장의 취임과 더불어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를 선언한 것과 발맞춘 도약이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배우 박성훈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가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달라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서울시뮤지컬단의 강점 담긴 ‘지붕 위의 바이올린’

서울시뮤지컬단의 올해 첫 작품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뮤지컬단에도 특별한 작품이다. 뮤지컬단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동시에, 서울시뮤지컬단의 지향점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올초 취임한 김덕희 단장과 함께 서울시뮤지컬단은 새로운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안호상 사장의 취임과 더불어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를 선언한 것과 발맞춘 도약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64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1985년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인 시립가무단이 국내에서 첫선을 보였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전통을 이어받은 작품은 단원들이 총출동했고, 배우 양준모와 바이올리니스트 콘을 포함해 객원 배우들이 함께 했다.

창단 61주년을 맞은 서울시뮤지컬단은 이제 막 서른이 된 막내부터 58세의 대선배까지 어우러진 단체다. 입단 21년차를 맞는 박성훈은 “매일 출근해 연습하고, 공연을 준비하며 가족보다 더 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며 “같이 있는 시간동안 쌓아온 호흡의 힘이 서울시뮤지컬단의 큰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성이 부각되는 고전 명작을 소화할 수 있는 민간 프로덕션은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같은 작품을 소화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국공립 단체 중 유일한 뮤지컬단이 확보한 폭넓은 연령대의 단원과 저력은 대극장 공연을 가능하게 했다. “젊은 배우들이 애써 나이 든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이 든 세대의 배우가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러 세대의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것은 뮤지컬단이 중요하게 끌고 가는 가치이기도 하다.

팬데믹 기간동안 무수히 많은 뮤지컬이 확진자 발생으로 공연 중단을 반복했지만, 서울시뮤지컬단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언더스터디 시스템의 준비로 불운을 피했다. 김 단장은 “젊은 연수단원과 뮤지컬단 선배들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을 가져, 공연을 취소하지 않고 올릴 수 있었다”며 “이것이 뮤지컬단의 저력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 첫 작품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 이후 서울시뮤지컬단은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덕희 단장(오른쪽)은 올해에는 예년보다 두 배나 늘어난 네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고 했다. 배우 박성훈(왼쪽)은 “다양하고 새로운 창작극의 시도에 서울시뮤지컬단 단원들도 고무돼있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올해에만 네 작품…창작 신작, 4050 세대 배우·관객에 집중

‘지붕 위의 바이올린’ 이후 서울시뮤지컬단은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올해에는 예년보다 두 배나 늘어난 네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서울시뮤지컬단은 조직과 단원이 가진 장점이 많은데 어떻게 꽃 피우냐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올해 공연법 개정으로 뮤지컬이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정받은 것을 기점으로 국공립단체로서의 뮤지컬단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김덕희 단장)

서울시뮤지컬단의 작품들은 소극장부터 대극장을 아우른다. 다양한 규모로 실험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대극장 작품이었던 ‘지붕 위의 바이올린’ 이후 세 작품은 중소극장에서 선보이는 창작 신작이다. ‘원더보이’(8월 19~27일. S씨어터), ‘알로하, 나의 엄마들’(11월 22일~12월 11일, M씨어터), ‘디바이징 뮤지컬’(10월 예정) 등이다. 이금이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조선시대에 하와이로 떠난 세 여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뮤지컬단은 올해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의 주제를 ‘디아스포라’로 가져가게 됐다.

김 단장은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극 시장”이라며 “국공립 단체로서의 공공적 역할과 관객들이 바라는 미션을 해내야 하는 만큼 조금 더 창작 뮤지컬 작업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작품은 ‘디바이징 뮤지컬’이다. 2030 배우와 관객이 다수를 차지한 뮤지컬 시장에서 ‘디바이징 뮤지컬’은 다소 소외된 배우와 관객층에 주목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특성과도 맞는다. 50대 단원이 여덟 명이나 속한 단체인 만큼 이들의 경륜을 무대로 가져오고, 4050 세대 이상의 관객들을 끌어오고자 한 전략이다. 이미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통해 타작품보다 월등히 많은 40대 이상 관객층의 유입을 확인했다.

“지금의 4050 세대가 가진 문화적 욕구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데, 상대적으로 이들이 볼만한 콘텐츠는 충분치 않아요. 주요 타깃 관객층을 위한 작품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극장에 오지 못한 관객들이 볼만한 작품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힘들죠. 이미 있던 관객층이 아닌 공연장이 낯선 관객을 끌어오는 것은 쉽지 않지만, 4050 세대가 볼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주요 배역과는 멀어진 50대 여성 배우들이 주축이 된 ‘디바이징 뮤지컬’은 출연진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재를 개발, 대본과 음악을 완성해 관객 앞에 내보인다.

“50대 여성들은 고민이 많은 세대예요. 자식은 다 컸고, 남편은 꼴보기 싫고, 폐경기에 접어들며 많은 변화를 맞고요. 100세 시대의 절반 밖에 오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때죠. 기존 2030 관객은 물론 50대 이상 관객에게도 유의미한 작품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특히나 이 작품은 국공립 예술단체가 가진 ‘작품 중심의 공연, 단원 중심의 공연’ 사이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김 단장은 “작품 위주가 될 경우 단원들은 소외되고, 단원 위주가 될 경우 작품의 성공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러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동기 부여를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은 “뮤지컬단의 가장 큰 자산은 단원들이고, 단원들의 저력은 엄청난 강점”이라고 말했다. 왼쪽은 서울시뮤지컬단 단원인 배우 박성훈. [세종문화회관 제공]

■ 변화 향한 도전과 실험…“서울시뮤지컬단의 가장 큰 자산과 강점은 단원”

서울시뮤지컬단이 올 한 해 풀어낼 작업들은 파격적 도전이자 실험에 가깝다. 다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외부 경쟁은 치열하고, 내부의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연간 4000억원 대 규모로 성장한 뮤지컬 시장에서 편단 100억원대의 제작비를 쏟아붓는 민간 프로덕션과 경쟁하기엔 국공립단체의 한계는 명확히 드러난다. 올해 서울시뮤지컬단은 20억원의 제작비로 4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같은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시장에서 서울시뮤지컬단은 현재 거대한 공룡들을 상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보상 체계가 주어지지 않은 국공립 예술단체의 여건상 “경제적 동기부여 없이 능동적 변화를 이끌기”엔 어려움이 적지 않다.

단원들은 하지만 오랜만의 변화에 고무된 상태다. 박성훈은 “너무 오랫동안 단체만의 색깔을 구축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며 “단원들 모두 그간의 벽을 깨고 서울시뮤지컬단이 맞을 변화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지금 저희가 시도하는 창작 뮤지컬이 다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브로드웨이에선 한 작품 개발에 4, 5년이 걸리는데 성공한다는 것은 욕심일 수 있죠. 하지만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리가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내부와 외부에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변화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어요. 달라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가장 큰 자산은 단원들이고, 단원들의 저력은 엄청난 강점이니까요.” (김덕희 단장)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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