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작성자 특정도 못한 ‘고발사주’ 수사…유죄 입증도 난항 전망[종합]
공수처, 손준성 기소하고 수사 마무리
공선법 위반 등 적용…김웅 공모 인정
고발자 특정 못하고 윗선 관여 못 밝혀
수사력 도마에…공소유지도 힘들 듯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4일 공수처 브리핑실에서 열린 고발사주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검찰이 야당에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 사건을 수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다. 사건의 ‘키맨’으로 꼽혀온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만 재판에 넘겼을 뿐, ‘윗선’의 관여 여부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하고 문제가 된 고발장 작성자도 특정하지 못했다.

공수처 고발사주 의혹 수사팀(팀장 여운국 차장)는 4일 공직선거법위반,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위반,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손 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직권남용 혐의 부분은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공수처 기소대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검찰에 이첩하고, 직권남용 혐의 부분은 무혐의 처분했다.

공수처는 이들과 함께 입건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6명을 무혐의 처분했다. 또 고위공직자가 아닌 윤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 직권남용 혐의 등을 무혐의 처분하고, 나머지 혐의는 검찰에 넘겼다. 8개월 만에 수사를 마무리했지만 손 검사 한 명을 기소했을 뿐 고발사주 의혹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 셈이다.

손준성 기소뿐…고발장 작성자 못 찾고 윤석열 관여도 못 밝혀
손준성 검사. [연합]

공수처에 따르면 손 검사는 2020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등 범여권 인사와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한 기자 등에 대한 고발장, 실명 판결문 등 자료를 김 의원에게 전송하고, 김 의원은 이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전달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공수처는 김 의원이 손 검사와의 공모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또 공수처는 손 검사가 고발장을 김 의원에게 전송한 것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해당하고,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공무원에게 지시해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제보자로 지목된 지모씨에 대한 판결문을 전송한 것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에 해당한다고 보고 각각 혐의를 적용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에 대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련의 행위 그 자체에 대해 범죄가 성립된다고 하는 것이 판례 태도”라며 “대법 선례에 비춰 고발장을 특정 정당에 전달하는 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의 종사하는 지인이 ‘당신 고발됐다’라고 알려주면 그 자체로 수사 중인 사항이 유출됐다는 판단에는 무리 없을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고발장 자체는 공직자가 직무상 취득한 비밀문서임에 틀림없다”며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적용 이유를 설명했다.

공수처는 증거를 종합할 때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직접 고발장 등 자료를 건넨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고발장의 작성자는 특정하지 못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고발장 작성자로 의심되는 범위까지 상당 부분 축소시켰다, 이 정도는 특정될 수 있지 않겠냐는 정도까지는 수사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이 상태에서 기소해 다른 검찰 내 제3자가 작성했거나 다른 사람이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로 고도의 증명 이뤄냈냐고 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또 윤 당선인을 비롯한 ‘윗선’이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도 규명하지 못했다. 윤 당선인과 한 후보자에 대해선 조사에 나설 정도로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피고발인에 대해 다 수사하는 것은 아니고 개별적으로 필요성과 상당성을 고려한다”며 “전체 얼개는 고발장을 작성하고 지시한 게 아닌가라는 고발인들 의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고발장 작성자 특정 단계에서 혐의없음 처분하니까 그런 점에서 수사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수사력 부족 비판 불가피…공소유지도 난항 전망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오후 오찬 일정을 마치고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로 복귀하고 있다. [연합]

앞서 이 사건은 지난해 9월 탐사보도 매체 뉴스버스의 의혹 보도 후 시민단체의 고발로 정식 입건이 이뤄지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야당인 미래통합당 측에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을 고발해달라고 사주했다는 게 의혹의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당선인을 비롯한 대검 차원의 관여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었다. 사건의 최초 제보자인 조성은 씨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흘러간 고발장 등 자료에 ‘손준성 보냄’이라고 찍힌 내용이 확인되기도 했다.

공수처가 8개월의 수사 끝에 손 검사에게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점이 있다고 보고 기소를 결정했지만 고발장 작성자를 특정하지도 못하고 윤 당선인 등 대검 지휘부 관여 사실도 밝혀내지 못하면서 결국 부실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수처는 이 사건 수사 과정 내내 수사력 부족으로 비판받았다. 공수처 출범 이후 처음으로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강제수사에 나섰으나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과 두 차례 구속영장이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다. 심지어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에서도 ‘범죄혐의 소명 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인권 수사를 표방하고 출범한 기관이 무리한 수사를 벌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형사사건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중간 과정은 물론 영장 단계 모두 공수처가 반성해야 할 것이 많은 사건”이라며 “작년 가을부터 시작했는데도 8개월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는 일단락 지었지만 손 검사에 대한 공소유지도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대선과 손 검사의 지병 등으로 추가 조사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소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공수처 수사는 손 검사에 대한 2차 구속영장 기각 이후 사실상 진전된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dand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