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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김치, 남극으로의 여정

대한민국에서 김치는 단순히 음식을 넘어 한국인의 정서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들은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녀와 손주가 집에 오면 맛있게 숙성된 여러 종류의 김치를 꺼내어 식탁에 올린다. 과거와 달라진 건 김치를 오랫동안 보관하던 장소가 장독대에서 김치냉장고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구의 남쪽 끝, 남극대륙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극지환경 변화, 미답지 개척 및 탐사기술 개발 등 극지연구를 위해 노력하는 대한민국 연구대원이 생활하고 있다. 극야(極夜), 백야(白夜), 영하 40도의 추위와 강풍의 극한 환경과 향수병에 지칠 법한 대원들이 꿋꿋하게 견딜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정서적 원동력은 음식, 그중 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극지연구소의 남극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에서도 김치를 먹을 수 있다. 그러면 서울에서 1만3000㎞ 이상 떨어진 남극과학기지에서 생활하는 대원들은 어떻게 연중 김치를 먹을 수 있을까? 대원들이 1년 동안 먹는 김치의 양은 약 2t이며, 1년에 단 한 번 기지로 보급된다. 하지만 남극으로의 이동기간 3개월, 그후에도 1년간 장기간 저장하면서 먹어야 하는 김치이기에 우리가 흔히 먹는 냉장 상태로는 그 긴 시간을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김치를 꽁꽁 얼려 영하 20도 냉동컨테이너로 이동하고, 남극과학기지에 도착해서도 냉동고에 보관한다.

김치를 맛있게 숙성시키거나 오랫동안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바로 ‘온도’다. 일반적인 냉장온도인 2∼8도는 김치유산균이 왕성하게 생육할 수 있는 온도이기에 이 온도에서 1개월 이상 김치를 저장하게 되면 과도하게 숙성되곤 한다. 그래서 김치냉장고는 일반냉장고에 비해 더 낮은 온도인 영하 1도 정도를 유지하면서 유산균 발효를 늦춰 김치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온도를 영하 10도 이하로 더 낮추면 김치유산균은 동면상태가 돼 발효가 억제되지만 동결 후 해동된 김치는 아삭한 조직감이 손상되는 등 품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극지연구에 멈춤이 없는 그들에게 맛있는 김치를 보급하기 위해 발효식품 특성을 고려한 컨테이너 해상운송 및 장기저장기술 도입이 필요하다.

최근 식품 저장기술의 하나로 과냉각기술이 주목받는다. 이는 어는점 이하로 냉각해도 얼지 않고 원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을 말한다. 김치의 어는점은 염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2도 내외로, 어는점 이하 온도조건에서 김치가 동결하려면 ‘얼음 핵’ 생성이 필수적이다. 김치의 어는점과 빙결점 사이 온도조건에서 김치를 저장할 경우 동결은 발생하지 않고 냉장 상태와 동일한 물성은 유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기술은 김치의 발효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면서 동시에 김치가 얼지 않아 김치의 장거리 ‘유통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세계김치연구소는 국내에서 제조한 맛있는 김치를 얼리지 않고 지구 끝 남극대륙으로 보내기 위해 극지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자연이 선사한 지구 최대의 천연 냉동시설인 남극에서 김치를 맛있게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과냉각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이제 이역만리 남극기지에서도 연중 내내 신선한 김치가 식탁 위에 올라올 날이 머지않았다.

천호현 세계김치연구소 박사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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