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BTS가 환호한 지상 최고 ‘O’쇼…첫 한국인 단원 홍연진 "한계는 없다" [문화플러스]
‘태양의 서커스’ 단원 홍연진 아티스트 겸 코치
스토리·언어·상상력 뛰어넘는 감동무대
코로나 딛고 지난해 7월부터 다시 공연
출연진 모두 최상의 예술성·기술력 보유
매년 1년 단위 재계약…관건은 기량 유지
"2009년 입단…캐나다 본사에 韓화폐·태극기 뿌듯"
입단 도전 후배엔 “한계 두지 말라” 조언
“한국에서 오쇼같은 획기적 공연 준비가 꿈”
국가대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 출신 홍연진(왼쪽)은 2009년 5월, 캐나다의 세계적인 공연예술 단체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단원이 됐다. 1984년 창설돼 그 해까지, 26년 동안 ‘태양의 서커스’에 한국인 단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홍연진은 그 어렵다는 세계의 문을 연 첫 주인공이다. 왼쪽은 'O쇼' 공연 모습. [홍연진·태양의 서커스 제공]

[라스베이거스(미국)=고승희 기자] 공연 시작을 앞두고 무대 아래로 두 명의 광대가 등장했다. 빨간 코를 붙인 광대는 ‘물쇼’의 시작을 알리듯 물방울을 뿌리며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피에로의 장난은 수위가 제법 높다. 머리가 훤한 관객을 발견하자 금세 키득키득. “오 마이 갓(Oh, My God).” 객석은 불길한 미래를 직감한듯 속삭인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피에로는 대머리 관객의 머리로 물뿌리개를 쫙쫙 뿌렸다. 관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타깃은 달랐다. 그의 너그러움에 객석이 안도할 무렵, 상대는 또 바뀐다. 난데없이 끌려 나온 남자 관객이 붉은 옷을 입은 사제에게 이끌려 무대 위로 올라간다. 남자에겐 임무가 있다. 큰 소리로 안내문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제의 호통이 떨어진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자, 남자는 등에 달린 줄에 이끌려 붉은 커튼 뒤 하늘 위로 사라진다. ‘오(O)’ 쇼의 ‘마법’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부턴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듯이 관객을 무대로 이끈다. 지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물쇼’다. 간간히 불도 나온다.

[‘태양의 서커스’ 제공]

무대 한가운데로 약 570만ℓ(150만 갤런)의 물이 가득 찼다. 수영장 바닥부터 천장까지 무대의 높이는 9층 건물에 해당하는 145피트. 그 사이에서 다이빙이 시작된다. 숨죽였던 관객의 함성이 터진다. ‘오’는 스테이지가 물로 채워진 전 세계 유일의 공연이다. 이 물을 한가운데에 두고 ‘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서커스에 스토리텔링과 상징을 더해 종합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태양의 서커스’의 ‘오’다.

[‘태양의 서커스’ 제공]

물이 가득 채워진 수영장 위로 얼룩말 무늬의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오가고, 공중에선 사람들이 매달린다. 회전목마를 타고 오르내리고, 하늘에서 다이빙을 한다. 깊은 물 한가운데에서 인간 탑을 쌓아 고개를 내미는 사람도 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황홀한 세계가 시시각각 펼쳐진다. 물 밑에서 바닥이 솟구치면 물이 사라진 무대가 된다. 무대바닥은 7개로 나눠져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무대 밑 장비까지 포함하면 최대 7m 정도 깊이까지 내려가게 돼요. 아티스트들은 5m 정도까지 내려가고요.”

오프닝도 독특하다. 물 아래에서 싱크로나이즈의 발이 하나 둘 올라오는 것으로 출발한다. 관객에게 인사라도 하듯이 빼꼼 내민다. “발 하나 하나 성격을 나타내는 거예요. 어떤 발은 부끄러워하고, 어떤 발은 놀라죠.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있어요.”

국가대표 싱크로나이즈즈 스위밍 선수 출신 홍연진은 2009년 5월, 캐나다의 세계적인 공연예술 단체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단원이 됐다. [홍연진 제공]

무대 위 77명의 아티스트 중엔 한국인 배우 홍연진(37)이 있다. 2009년 5월, 캐나다의 세계적인 공연예술 단체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단원이 됐다. 1984년 창설, 26년 동안 ‘태양의 서커스’에 한국인 단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홍연진은 그 어렵다는 세계의 문을 연 첫 주인공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라스베이거스에서만 하는 상설 공연과 투어 공연으로 나뉘는데, 홍연진은 라스베이거스 간판 쇼인 ‘오’의 멤버다. 입단 13년차가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무대에 서는게 재밌고, 새롭다”고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태양의 서커스’ 역사상 첫 한국인…아티스트 겸 코치, 새 역사 만드는 도전
홍연진과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단원들[홍연진 제공]

“13년 전엔 ‘태양의 서커스’에서도 한국 사람이 입단하리라는 것도,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상상을 못했던 것 같아요. 몬트리올 본사에 가면 전 세계 지폐들이 붙어있는데 한국 지폐만 없었고, 트레이닝 룸엔 소속 아티스트의 국기가 붙었는데 태극기는 없었어요.”

일본에선 우리보다 10년 앞선 1999년 첫 단원이 입단했다. 홍연진의 입단 이후 본사에선 ‘없던 장면’들이 생겼다. 한국 지폐와 태극기가 다른 나라의 것들과 함께 걸렸다. “입단 며칠 뒤 코치가 태극기를 주문했더라고요.” 홍연진은 혈혈단신 세계적인 공연 단체에 한국의 이름을 새기며 새 역사를 “하나씩 만들어 갔다”. 입단 만큼, 버티기도 쉽지 않은 곳이 ‘태양의 서커스’다. 해마다 일 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고 있다. “매년 기량을 잘 유지하는지 보는 테스트예요.” 팬데믹으로 공연이 중단된 시기를 보낸 지금, 그는 아티스트이자 코치로까지 활약하고 있다.

국가대표 싱크로나이즈즈 스위밍 선수 출신 홍연진은 2009년 5월, 캐나다의 세계적인 공연예술 단체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단원이 됐다. 1984년 창설돼 그 해까지, 26년 동안 ‘태양의 서커스’에 한국인 단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홍연진은 그 어렵다는 세계의 문을 연 첫 주인공이다. [홍연진 제공]

홍연진의 뒤를 이어 한국인 후배들도 같은 길을 이었다. 이후 네 명의 한국인 단원이 입단했고, 현재는 홍연진과 ‘마이클 잭슨 원’ 쇼의 김현수가 남아 있다. 그는 ‘오’에서 싱크로나이즈드를 맡는다. 일곱 살에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시작한 그는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한 국가대표다. 2006년 대표팀이 해체되면서 눈앞이 캄캄해졌을 때 찾은 것이 바로 이 길이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은 실업팀도 없고, 운동을 그만두고 나면 코치를 하거나 다른 길을 찾는 경우가 많아요. 후배들과 공연팀을 만들고 싶었지만, 나이도 어리고 시대도 맞지 않더라고요.” 그때 라스베이거스에 ‘싱크로나이즈드 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를 본 적도 없는데, 무작정 영상을 찍어 보냈다. 무려 8개월의 기다림 끝에 연락이 왔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입단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태양의 서커스’ [홍연진 제공]

“첫날부터 매주 스케줄이 나오면서 엄청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정말 놀랍더라고요.” 캐나다 몬트리올 본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석고로 머리 모양을 뜨는 일이었다. “무대 의상을 위해 머리 위로 석고를 부어 자신만의 커스텀(주문 제작) 모자 등의 소품을 만들어요.” ‘나의 의상’이 생긴다는 것은 ‘태양의 서커스’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다.

‘태양의 서커스’엔 홍연진과 같은 국가대표 출신이거나 서커스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 많다. 그는 몬트리올에서 한 달간 훈련을 받은 뒤 라스베이거스 무대로 투입됐다. 트레이닝 과정을 온전히 거치고, 최종 시험에 통과해야 정식 단원이 될 수 있다.

[‘태양의 서커스’ 제공]

“모든 공연을 소화하기까지 최소 한 달 반의 시간이 걸려요. 다들 기량이 뛰어나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요. 그보다는 아티스트의 예술성을 끌어내는 훈련을 많이 해요. 운동선수에서 예술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아티스트로 들어오는 첫 단추를 잘 채우는 것이 선수들에겐 가장 낯선 부분이에요.” “짝을 지어 마임을 하고”, “몸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동작”을 하는 것이 운동만 하던 국가대표에겐 “재밌기도 하면서 부끄러운 미션”이었다. 스스로의 벽을 넘어서며 트레이닝해온 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예술·기술은 모두 최상급…가장 중요한 건 ‘안전과 체력’
[‘태양의 서커스’ 제공]

첫 공연을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물속에서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몰라서 헤맸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10여년 전 서툴었던 모습은 코치가 된 지금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훈련할 때” 도움이 된다.

무대 뒤는 치열하고 흥미롭다. 그는 “에피소드가 없는 날이 없다”며 웃었다. “모든 일이 물속에서 이뤄지니 관객들은 절대로 모르는 일들”이 넘쳐난다.

[‘태양의 서커스’ 제공]

“어떤 아티스트는 큐를 까먹고 무대에 못 올라가기도 하고, 어떤 아티스트는 늦게 준비하는 바람에 무대에 올라오면서 의상을 입은 적도 있어요. 한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방귀를 뀌는 바람에 초토화가 된 적도 있고요. 무대가 멈추거나 장비가 고장나는 일을 겪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관객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정해진 매뉴얼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이 무대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5분, 10분 단위로 체계화된 스케줄을 소화하는 매일의 일정과 무대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과 체력이다.

[‘태양의 서커스’ 제공]

“예술적, 기술적인 부분 모두 중요하지만, 보통 ‘오’쇼의 아티스트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상위권인 만큼 큰 걱정을 하지 않아요. 다만 하루에 두 번씩 이어지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체력이에요. 저희는 올림픽처럼 3분 내에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열 번씩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기술을 최대한 유지해 안전하게 마치는 것이 중요해요. 부상 없이 내일의 공연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코치의 의무이고, 자신의 몸 관리를 잘해 부상 없이 공연을 이어가는 것이 아티스트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입니다.”

스토리·언어 뛰어넘은 감동과 새로움…BTS도 관람
국가대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 출신 홍연진은 ‘태양의 서커스’ 첫 한국인 단원으로 입단,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홍연진 제공]

2020년 코로나19로 13개월 가량 공연을 중단했던 ‘O’는 지난해 7월 초에 오픈해 다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에 두 번, 1800명의 관객을 받는 큰 공연이다.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그는 “다른 공연에선 볼 수 없는 물이 있다는 점도 매력이지만, 여러 번을 봐도 항상 새로운 모습이 인기비결”이라고 했다.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고 장면 하나 하나를 즐기면 열 번 내내 새로운 공연을 만날 수 있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무대와 아티스트가 빚어내는 아찔하고 아름다운 재능에 눈을 홀릴 때 ‘태양의 서커스’의 모든 공연은 ‘국경 없는 음악’으로 오감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홍연진은 “라이브로 진행되는 ‘태양의 서커스’의 음악은 어느 나라의 언어가 아닌 소리나는 상태를 들려준다”고 말했다. “의미와 감정은 있지만 특정 언어에 기준을 둔 가사가 아니에요. 처음엔 상상도 못했던 부분이라 많이 놀라고 감동 받았어요. 그래서 공연을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정으로 공연을 즐길수 있는 것 같아요.”

태양의 서커스 'O'쇼를 관람한 방탄 소년단 진, 제이홉 [제이홉 인스타그램 캡처]

이 쇼는 ‘21세기 비틀스’ 방탄소년단(BTS)의 제이홉과 진도 최근 관람했다. 방탄소년단은 최근 라스베이거스에서 총 4번의 공연을 열었다.

“두 사람이 보러 온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먼저 인사를 했어요.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저 한국인 아티스트예요. 공연 재미나게 보세요’ 했더니, 좋은 공연하라고 해주셨어요. 공연도 재미나게 보셨는지 끝나고 일어나서 박수도 쳐주시고 핸드폰으로 커튼콜 영상도 찍으시더라고요.”

[‘태양의 서커스’ 제공]

그는 “‘오’쇼는 모든 아티스트의 꿈의 무대”라고 했다. ‘오’를 만나고 다양한 문화와 분야의 단원들을 만났고, 한국에 대해 알리기도 했다. 홍연진은 “이곳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코치의 꿈을 꿨다”며 “그 땐 우선 영어나 잘 하자는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인정받는 제 자신을 보면, 아직도 신기하다”며 웃었다.

자신을 따라 ‘태양의 서커스’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홍연진은 “새로운 것에, 꿈에 도전하는 데에 한계를 두지 말라”고 말한다. 그의 꿈과 도전도 끝은 없다. “‘오’쇼와 같은 규모는 아니라도, 한국에서도 오쇼처럼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롭고 획기적인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저만의 꿈이자 목표예요.”

sh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