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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티아고 프랑스길② 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 행운의 징표들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나를 껴안으세요. 그러면 오백리 더 가도 발 병 나지 않아요.”

“이 종을 치면 행운을 얻습니다”, “산티아고 가는 당신, 이젠, 용서해드릴께요.”

“한국인 순례자님, 고국 제주 올레가 그리우세요. 닮은 데를 찾아드릴께요.” ▶기사 하단, 헤럴드경제 리오프닝 특별기획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기사 목록

포르토마린에서 드디어 스페인 갈리시아의 젖줄 미뇨강을 만났다.
사모스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작은 채플 옆 500살된 사이프러스에 들러, 반드시 한번 껴안아주고 가야 한다. 그러면 순례길 걷는 동안 발병은 없다고 한다. ‘10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아리랑 가사가 생각나는 나무다.

산티아고 순례길엔 행운과 건강의 상징물들이 더러 있다. 상징물에 담긴 신비로운 뜻을 다 믿지는 않는다 해도, 분명 걷기여행객에게 에너지와 열정을 더해준다. 프랑스 코스엔 어떤 명물이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품은 채, 갈리시아주 영역 내 첫 마을인 세브리로(세브레이로)를 지나, 사모스에 도착한다.

6세기에 지어진 사모스 수도원은 5세기에 활동했던 성인 베네딕트의 뼈가 있는 곳으로 알려지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한 규율을 지킨다.

나폴레옹이 쳐들어왔을 땐 군인병원으로 이용됐고, 몇 십 년 후인 19세기 후반 다시 수도원 기능에 충실했으며, 1940년대 대형 화재로 소실됐다가 1951년 귀족과 주민들의 후원과 모금으로 재건축했다.

▶청화백자 약병과 발 병 예방 사이프러스= 약을 넣은 청화백자 약병이 있고, 순례자가 많이 아플 때 응급구제를 여전히 해준다. 청화백자는 한국 것인 줄 알았을 정도로 흡사하다. 베네딕트가 학문의 성인이라 3만여권의 도서가 있고, 엄정한 의례에 활용되는 초대형 파이프오르간도 매달려 있다.

사모스 수도원 네리다스 분수와 동백꽃

중정을 둔 ‘□’현 건물로 16세기에 만들어진 회랑이 멋지다. 가운데 정원엔 회랑과 함께 만들어진 네레이다스(la Nereidas) 분수가 있고, 춘삼월 동백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 분수는 사방에 매달린 인어가 물을 뿜은 형상이라 이채롭다. 분수, 회랑, 건축미, 역사문화적 의미가 돋보이는 곳으로 프랑스 루트의 중요한 유적이다.

성당 내에는 순례길을 만드는데 많은 업적은 남긴 알폰소 2세 왕이 적을 짓밟는 조각상도 있다. 이교도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당시 국제정치적 행보는 야고보 성인에 대한 찬양, 산티아고 순례길 개척 및 대대적인 홍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회랑 벽면의 그림들은 이 수도원을 만든 뜻, 대화재 때 불을 끄고 모두가 힘을 합쳐 복원하는 과정에 대한 스토리를 담았다.

사모스 수도원에서 만난 독일인 페트릭씨는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순례를 결심했고, 2월11일 이후 한달간 하루 20~25㎞씩 600여㎞를 걸었다. 음식점 등이 많이 문을 닫아 고생한 때도 있었지만 720㎞ 완주하는 목표를 꼭 달성할 것”이라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모스 수도원 청화백자 약병

사모스를 떠나 사리아 또는 포르토마린으로 가기 전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작고 오래된 채플 옆에 선 500살 된 27m 키의 사이프러스 나무다. 성인 두명이 밑동을 껴안으면 손을 겨우 잡을수 있는 이 사이프러스는 순례자가 한번 포옹하고 가면 다리를 다치지 않는다는 속설을 품고 있다.

▶제주 올레 닮은 셀레리오강 주변, 행운의 종= 순례 완주 인증을 얻기 위한 최소한(100㎞ 이상)의 지점, 사리아 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이곳의 대표 알베르게에는 각국의 인사말이 나무 목판에 새겨져 있는데, 눈에 확 띄는 태극문양과 함께 ‘환영합니다’라는 한글이 적힌 목판이 한복판에 걸려있다.

이곳에서 4㎞ 떨어진 바르바델로까지 걷는 개천길, 숲길은 제주 올레길을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

사리아 폰테 아스페로를 지나면 제주 올레길을 닮은 구간이 이어진다.

순례자들에 따르면, 4개의 아치 다리로 중세에 만들어진 폰테 아스페로를 통해 셀레리오 강을 건넌 지점 부터, 제주 사려니 숲길이나 곶자왈을 연상케하는 풍경을 한동안 만난다는 것이다. 이끼가 낀 돌담도 순례길을 따라 늘어서 잠시나마 제주에 온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고 한다.

파리의 서울공원, 서울의 파리공원 처럼, 스페인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상호 교환 구간을 설치하고 있는데, 포르투갈코스, 노르테 루트, 영국길 등 대서양 해변 순례길, 혹은 프랑스 코스 사리아~바르바델로 구간이 검토될 수 있겠다.

포르토마린이 가까워지면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340㎞ 길이의 미뇨강을 영접한다. 포르투갈길 스페인영역 출발점인 투이를 지나 대서양변 포르투갈 접경지 과르다의 하구까지 이어진다.

포르토마린 행운의 종을 치고 있는 독일 세 할머니 순례자
포르토마린 입구 ‘같이 걸을까’ GOD 방문 계단

산과 들, 성당 등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걷다가 강을 만났으니, 모두들 포르토마린을 아름다운 곳으로 칭송한다. 강 너머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강변 ‘행운의 종’을 치고 가야한다. 60~70대로 보이는 독일 할머니 3명이 행운의 종을 치고 있길래 다가가 말을 건넸더니 반갑게 응대해 준다. 배산임수로 강변 언덕 기슭에 원형경기장 한 켠처럼 흰색 집들이 차곡차곡 착상했다.

▶포르토마린 용서의 십자가= 다리를 건너면 TV 여행예능 ‘같이 걸을까’에서 GOD멤버들의 즐거운 모습이 비쳐졌던 마을 진입 계단이 반기고, 성문을 통과해 땅 위에 세워둔 마을 이름 알파벳 조형물을 지나면, 근사한 공립 알베르게가 반긴다.

포르토마린 산니콜라스요새 성당 앞 크루세이로, ‘용서의 십자가’

전통을 지킨 가옥들이 주는 편안함, 고요히 흐르는 미뇨강 풍경 만으로도 고산지대를 오르 내린 그간의 피로가 씻긴다. 강변 높은 곳에 있는 포르토마린 산니콜라스성당은 요새를 겸했다. 12세기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엔 경계용 망루도 있다.

성당 앞에는 어김없이 우리의 장승 역할을 하는 돌십자가 ‘크루세이로(Cruseiro)’가 있다. 전후좌우에 예수와 성모, 다양한 성인들이 조각돼 있는 이 돌십자가는 갈리시아주에만 1만2000여개나 있는데, 주민과 여행자를 지켜달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포르토마린의 크루세이로는 특별히 ‘용서의 십자가’라는 별칭이 붙어 누구든 잠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강변’이라는 뜻의 리바디소 중세다리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청년 단체 순례자들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30㎞여 남은 아르수아(Arzua) 일대는 초원 들판 지대이다. 곳곳에 소와 양이 걱정 없이 풀을 뜯는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 ‘콤포스텔라(Compostela)’라는 단어의 본뜻, 별빛의 들판은 아르수아를 중심으로 한 광대한 반경의 초원 들판을 지칭한다고 보면된다.

▶순례자의 쉼터, 알베르게와 파라도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여행자를 돕는 것은 멋진 풍경과 인문학 유산, 알베르게(Albergue)와 파라도르(Parador) 숙소, 길 위에서 만난 벗과 마을주민들의 인정이다.

길을 걸으며 성찰을 통한 깨달음을 얻으면서 희열도 느끼고, 멋진 풍경과 스페인사람 특유의 인정을 접하며 감정정화도 하지만, 워낙 장거리 걷기 체력전이므로 하루 15~30㎞ 걷기여행 이후 안식처는 매우 중요하다.

수도원 문화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파라도르 산티아고 샌프란시스코 호텔 중정
파라도르 산티아고 샌프란시스코 호텔 식당

스페인 갈리시아주 정부는 곳곳에 산재한 문화재급 건물의 일부를 순례자를 위한 숙소로 활용한다. 우리로 치면 고택·향교·서원활용사업+템플스테이다. 타인과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되는 알베르게는 1만원 안팎, 좀 근사한 문화재에 설치된 파라도르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호텔형으로 10만원 안팎이다.

사립 알베르게도 비싸지는 않다. 그러나 사립 호텔은 지역에 따라 매우 비싼 곳도 있다. 오랜만에 일행끼리, 나 혼자 프라이버시를 누리기 위해, 길 위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와 오래도록 깊은 얘기를 나누기 위해 뜸하게 찾는 곳이고, 알베르게를 구하지 못해 오도가도 못하는 절박한 순례자들이 하는 수 없이 찾다 보니, 민간업체는 가격을 높게 부를 때도 간혹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표격인 프랑스 코스에는 알베르게도, 파라도르도 많다. 사모스의 수도원을 비롯해, 세브리로, 사리아, 포르토마린, 리바디소 등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목 곳곳에 알베르게가 있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비고 인근 바요나, 폰테베드라 등 다소 큰 도시의 중요 유적엔 어김없이 근사한 파라도르가 있다.

리바디소 알베르게 주방
아르수아 일대 부터 광범위하게 이어지는 콤포스텔라(별빛 들판 초원) 지대는 기쁨의 언덕 ‘몬테 고소’~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목적지 진입을 앞두고 쉬게될 곳은 아르수아 행정구역내 중세다리옆 강변 알베르게 리바디소이다. 이곳은 한국 탐방단이 들러본 알베르게 중 가장 시설이 좋다. 근사한 샤워시설도 있고, 식사시간이 아니라도 주방을 편안하게 이용토록 허용한다. 여기서 푹 자고 콤포스텔라(별빛 초원들판) 지대의 최종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간다.(계속)

◆산티아고 순례길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글 싣는 순서 ▶3월8일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 왜 성인군자가 될까 ▶3월15일자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는 제주 올레의 어머니..상호 우정 구간 조성 ▶3월22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①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의 감동들 ▷산티아고 대서양길②임진강과 다른 미뇨강, 발렌사,투이,과르다 켈트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대서양을 발아래 두고…신의 손길을 느끼다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①매콤 문어,농어회..완전 한국맛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②파니니,해물볶음밥..거북손도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식당서 만나는 바지락·대구·감자·우거지…우리집에서 먹던 ‘한국맛’ ▶3월29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③돌아오지 못한 콜럼버스..바요나, 비고 ▷산티아고 대서양길④스페인 동백아가씨와 폰테베드라, 레돈델라, 파드론 ▷산티아고 대서양길⑤(피스테라-무시아) 땅끝은 희망..행운·해산물 득템 ▷산티아고 프랑스길①순례길의 교과서,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기도문 뭉클 ▶4월5일자 ▷산티아고 프랑스길② 제주 닮은곳, 행운의 징표들..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아르수아 ▷산티아고 프랑스길③ 종점의 ‘희년 콘텐츠’ 풍년..몬테고소 10리 지나,리오프닝 산티아고 시내 매력 ▷산티아고 영국길① 헤라클레스의 여인 코루냐 ▷산티아고 영국길② 페롤,폰테데우메,베탄소스..회자정리법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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