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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연기 둘이 합쳐 70년…삼촌·조카 ‘부캐’ 축구로 만나다
기타리스트 최희선·배우 이영진
이기적 유전자로 나란히 17세때 데뷔
조카 머리카락 잘라주던 호랑이 삼촌
‘꾸준하고 성실한 손’으로 조용필과 합주
삼촌 성실함·열정까지 빼다박은 조카
“예술, 평생직업 될 수 있다 느끼게 돼”
골때녀2 출연 계기 ‘장문의 카톡’ 소통
삼촌은 기타리스트로, 조카는 모델로 나란히 열일곱 살에 데뷔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로 밴드를 30년째 이끌고 있는 최희선, 드라마와 영화, 예능을 아우르며 활동 중인 배우 이영진이다. 삼촌과 조카는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한 성취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상섭 기자

삼촌은 기타를 치고, 조카는 연기를 한다. 경력만 해도 도합 70년. 약속한 것도 아닌데, 삼촌과 조카는 열일곱 살에 데뷔했다. 혜성 같은 소년 소녀의 등장이었다.

“제가 기억하는 막내 외삼촌은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고, 음악을 하는 분이었어요. 할아버지 칠순 잔치엔 조용필 아저씨가 왔던 기억이 나요. 아저씨라고 하면 안되는데…그땐 가왕 이전에 삼촌이랑 음악하는 유명한 가수 아저씨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삼촌의 시간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대가 없던 시절” 전국의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했다. 한국에선 들어본 적도 없는 연주 실력에 음악세계의 질서가 흔들렸다. 세기말에 등장한 이국적이고 신비한 마스크의 조카는 ‘스타 등용문’이었던 유명 잡지들을 도배했다. 기다렸다는듯 각기 다른 세상이 두 사람을 주목했다. ‘이기적인 유전자’였다.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최희선과 배우 이영진이다.

음악하는 삼촌과 연기하는 조카는 쉼 없이 각자의 길을 걸었다.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고 한다. 음악이 전부였고, 연기가 삶이었다. 쉴 때도 음악과 함께 했고, 대본을 보는 것이 취미가 됐다. 피는 물보다 진했다. 오랜 활동 기간 동안 한 번도 삼촌, 조카 사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서울 송파동에 위치한 최희선의 연습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 중인 배우 이영진은 누 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6시간씩 ‘축구’에 전 념한다. 합류 직후 부상을 겪었지만, 지금은 맹활약 중이다. [이영진 인스타그램]

▶‘축구’로 통한 삼촌·조카…매주 목요일 아침 ‘장문의 카톡’=두 사람은 얼굴을 보자마자 축구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요즘 이영진은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2에 출연 중이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6시간씩 ‘축구’에 전념한다. 합류 직후 부상을 겪었지만, 수비수로 골키퍼로 활약 중이다.

“데뷔한지 20년이 넘었는데 삼촌한테 이렇게 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본업이 아닌 ‘부캐’에 대한 관심으로 최근에 부쩍 연락을 자주 해요.(웃음)” (이영진)

최희선은 기타를 치기 전 축구선수로 진로 고민을 했을 만큼 ‘축구에 진심’이다. “축구 이외엔 하는 운동도 없어요. 축구가 유일한 건강 관리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기도 해요.” 일주일에 두세 번,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장을 뛴다. “조카가 축구를 한다고 하니 잔소리가 시작된 거죠. 부상을 당했을 땐 아차 싶더라고요.” (최희선)

“삼촌이 원래 긴 말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렇게 긴 카톡(카카오톡)을 받은 것도 처음이에요. 정말 논문인 줄 알았어요.” ‘공 하나에 열 명이 따라다녀선 안된다’, ‘공간을 잘 봐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만 했다.

“영진이가 속한 팀을 이영표 감독이 맡고 있어서 어련히 잘 하시겠지 하고 참았는데, 다음 회를 보면 또 간섭하고 싶어지더라고요.(웃음)” 방송 이후 찾아오는 매주 목요일 아침은 삼촌이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받는 날이다. “그것도 굉장히 줄여 보낸 거야.” (최희선) “줄여 보낸 거라고?” 조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조카에게 ‘한 수’ 전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부른 적도 있다. “축구는 운동장에 와서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축구는 공을 안 가진 우리 팀의 움직임, 내가 공을 가지지 않았을 때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정 나요.” 그러니 축구장 밖에서 전체 경기를 아울러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적 축구선수로 진로를 고민했던 최희선은 요즘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 중인 조카 이영진에게 잔소리가 늘었다. 누구보다 축구에 진심인 삼촌은 방송을 마친 다음날 아침마다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공 하나에 열 명이 따라다녀선 안된다’, ‘공간을 잘 봐야 한다’는 조언들이다.

조카는 삼촌이 축구장을 누비는 모습에 꽤 놀랐다고 한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경기를 쫙 진두지휘하면서 날아다니더라고요. 놀랍기도 하고, 우리 삼촌 되게 멋있구나 싶었죠. 여전히 성격은 불 같고요. (웃음)”

연습량만큼 실력이 커지고,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때다. 축구의 매력도 체감하고 있다. “모델이나 배우는 혼자 하는 일이라 팀 스포츠를 해본 적이 없는데 누군가와 같은 팀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한다는 것에서 마음의 든든함이 생기더라고요.”(이영진)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센스가 있고 피지컬이 좋아 프로그램 안에서도 톱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최희선) “삼촌, 아니야. 나 우리팀에서 단신이야.” (이영진)

[영상=시너지영상팀]
[영상=시너지영상팀]

▶‘호랑이 삼촌’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조카=세월의 길이도 무색했다. 두 사람의 눈은 어느새 30여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삼촌, 이젠 인정해야지? 유난히 예뻐한 조카잖아?” 삼촌은 ‘조카 바보’였다.

사실 이름보단 ‘호랑이 삼촌’으로 불렸다. “뭘 잘못하거나, 밥을 안 먹을 때 엄마한테 혼날 때면 ‘호랑이 삼촌 부른다’고 했어요. 그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요. (웃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인형처럼 예쁜 조카”였지만, 표현은 서툴렀다. 목소리는 록커마냥 걸걸했고, ‘뮤지션의 아우라’가 어린 조카에겐 거대하게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삼촌이 예뻐하는 방식이었는데 어릴 땐 참 무서워했어요. 삼촌이 ‘뽀뽀’ 이러면 1분이건 3분이건, 10분이 됐건 가만히 뽀뽀하고 있어야 해요. 중간에 떼면 혼나요. 다시 뽀뽀해야 해요.” (이영진) 어릴 적엔 삼촌이 직접 머리카락도 잘라줬다. “생생히 기억나요. 삼촌이 잘라준다니 멋도 모르고 대고 있는 거예요. (웃음)” (이영진) 어린 조카의 꿈나라도 삼촌의 차지였다. ‘삼촌 팔 베고 자’ 한 마디에 울상이 되면서도 곤히 잠들었던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호랑이 삼촌’이 편하게 다가온 건 20대 중반이 되어서다. 이영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른들의 그늘 속에 있던 아이에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 봐주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저 역시도 스스로 서야 하는 시기가 그 때쯤이었어요. 무섭고 어려운 호랑이 삼촌에서 가족이기 이전에 잘 따라가고 싶은 어른이 됐어요. 그러면서 저도 존경할 수 있는 삼촌으로 생각하며 마음가짐도 달라졌고요.” (이영진)

기타리스트 최희선

▶성실함으로 묵묵히…“삼촌의 장인정신…예술도 평생직업이 될 수 있다 느껴”=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업계에 들어선 이후 ‘삼촌의 존재’는 조카에게 든든한 나무가 됐다. 모델 데뷔는 가족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다. 삼촌으로선 혈혈단신 혼자 뛰어든 일에서 20년 넘게 한 길을 가는 조카가 대견하다.

“업계의 특성상 변화와 교체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게 기특하더라고요. 이 녀석이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분야가 달라 해줄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축구 같으면 메시지라도 적어 보낼텐데…”(최희선)

조카의 마음은 다르다. 이영진은 “어릴 때부터 삼촌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모델이나 배우는 평생 직업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기회가 꾸준히 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삼촌이 음악하는 모습을 보며 예술 업계도 평생 직업이 될 수 있고,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거 같아요.”

나이를 속여가며 프로의 세계로 뛰어든 10대 기타리스트는 지난 40여년간 수많은 가수들의 앨범에 프로듀서와 편곡, 세션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남정 박진영 심신 이승철 전영록 등 1980~90년대 히트곡 뒤에는 항상 최희선의 이름이 있었다. 1993년부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로 대중음악계를 이끌었다. 국내 밴드 역사상 최장수 리더다. 스스로는 “이른 나이에 (조용필) 형님을 만난 것이 굉장한 행운”이라고 말하지만, 오랜 시간 빛나는 성취 뒤엔 ‘꾸준하고 성실한 손’이 있었다.

최희선은 지금도 매일같이 연습실로 출근해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연습을 이어간다. 코로나19 도래 이후 3년 넘게 공연도 올리지 못하고 있지만, 단 하루도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매일의 연습은 녹음 파일로 쌓인다. 집으로 돌아와도 음악과 떨어질 일은 없다. 여섯 시간의 연습 녹음을 다시 들으며 고쳐야 할 것을 찾는다.

“히딩크 감독이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했잖아요. 저도, 우리 (조용필) 형님도 마찬가지예요. ‘이만하면 됐다’, ‘그 정도 했으면 잘 한거야’ 이렇게 생각할 여가가 없어 계속 매진하는 거예요. 위대한 탄생을 하면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온 것이 있어요. 토요일에 공연을 마치면 다음날 녹음 파일을 들어보며 복기하는 거예요. 어떤 부분이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릴까, 어떤 부분이 조금이라도 좋게 들릴까 고민하는 거죠. 지난 30년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음악은 그렇게 다듬어졌어요.”

최희선에겐 워낙에 수식어가 많다. 직장인 밴드와 음악 키즈들은 “3대 기타리스트(김도균 김태원 신대철) 이전의 전국구 본좌”로 부른다. 부활의 김태원은 그를 “나의 스승”이라고 했다. ‘기타=최희선’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졌고, 누구보다 거장, ‘살아있는 전설’의 수사가 자연스럽다. 시대마다 그의 연주와 음악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의 최희선에게선 ‘면도날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날이 바짝 선 연주에 열광했고, 지금은 음악적 깊이에 마음을 위로받고 감동한다.

50대에 접어들며 발표한 두 장의 정규 앨범은 음악을 향한 기타리스트의 역사가 담겼다. “그땐 앨범을 내려면 무조건 노래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내 연주를 좋아하고 들을 사람만 듣는 음악이 되더라도 온전히 연주 앨범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 고집과 애정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기타 명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선 기타리스트로는 유일하게 프로축구 응원가도 작곡해 경기마다 그의 곡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최희선의 고향을 본거지로 했던 상주 상무 응원가다. 꾸준한 열정과 새로움을 향한 도전은 ‘최희선 키즈’가 수없이 생겨나고, 많은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는 선배이자 롤모델로 꼽는 이유다.

“밴드 노브레인에서 기타를 치는 보보와 친구예요. 그 친구한테 누구라고 말은 안 하고, 우리 삼촌도 기타를 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엔 그냥 기타 치는구나 생각했나 보더라고요. 그러다 한참 뒤에, 위대한탄생이라고 했더니 장난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삼촌 이름을 얘기하니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라고, 소개시켜 달라고 난리가 났었죠.(웃음).” (이영진) 함께 공연장을 찾아 만남을 주선하자 친구의 대우마저 달라질 만큼 삼촌의 영향력은 컸다.

이영진은 “삼촌을 보며 장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언제나 새롭고 힙한 것을 취하잖아요. 삼촌이 기타를 치는 걸 보면 장인정신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게 돼요.”

노력과 성실에도 DNA의 힘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카 역시 묵묵히 한 길을 걸었다. 오랜 시간 쌓은 이영진의 필모그라피가 그의 꾸준함을 보여준다. 성소수자, 알콜중독자처럼 평범치 않은 역할부터 어느 드라마, 영화에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발하는 인물까지 만났다. 끊임없이 확장하고 진화한다.

“10~20대를 지날 땐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발목을 잡는 느낌도 있었어요. 40대 초반이 된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뻔하지 않은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마음은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활동한 동력이다. 최희선은 “기타는 어제 잘 친 것 같고, 음악은 오늘 더 잘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의 나이테는 해마다 실감했다. “두 가지가 함께 온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진 않더라고요. 지금 부족할 수는 있지만 내일도 오늘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게 제가 음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에요.” (최희선)

삼촌의 이야기에 조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의 원동력은 저인 것 같아요.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오늘보단 내일이 더 성숙하고 성장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전 연기도 제 삶을 살아가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배우가 되고,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지금의 내 삶을 잘 살아야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게 저의 연기를 만들어가는 방법이에요.”(이영진)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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