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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거래, 이젠 ‘아나바다’ 아닌 취향 잇는 N차거래” [人터뷰-이재후 번개장터 대표]
MZ세대 사로잡은 ‘번개장터’
앱 하루평균 거래량 4만7000건
인기검색어 50개 중 40개 특정브랜드
원하는 것 찾아 정보 ‘디깅’ 소비트렌드
자체 결제시스템 ‘번개페이’로 안전성 확보
한정판 스니커즈·명품 전용 오프라인 매장
연내 ‘인증 중고’ 서비스 도입, 신뢰성 향상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는 ‘중고거래’를 재정의 했다. 그는 “이제 소비자들은 사고 싶은 신제품과 중고 거래 시세를 비교해 상품을 구매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며 “중고거래를 취향을 잇는 거래로 그 의미를 확장해 바라봐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상섭 기자

1700만명에 달하는 가입자 중 MZ세대가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중고거래 앱 ‘번개장터’ 이야기를 듣기 전에, 당신의 ‘취향’에 관한 모든 것을 떠올려보라.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무엇이 당신답지 않은지 말이다.

번개장터가 중고거래를 ‘취향을 잇는 거래’로 정의해 차별화된 수익모델(BM)을 만들고 MZ세대를 꽉 붙잡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번개장터 앱에서 내가 검색한 키워드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을 연결시킨다. 이렇게 이어진 사람들이 취향이 깃든 물건을 거래하고 있다.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운동으로 시작한 중고거래 시장이 N차 신상을 거래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번개장터 인기 검색어 50개 중 40개가 특정 브랜드입니다. 패션과 키덜트, 디지털 가전 제품 카테고리 내 특정 브랜드가 전체 거래액의 80%를 차지하는 건데요. 그래서 지금의 중고거래는 쓸모없지만 멀쩡한 물건을 시장에 내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제 중고거래는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을 찾는 수단이 된 것이죠.”

지난달 24일 서울시 서초구 번개장터 사옥에서 만난 이재후(42) 번개장터 대표는 누구나 취향이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었다. 인터뷰하는 1시간 남짓 동안 이 대표가 가장 많이 말한 단어는 ‘취향’으로 무려 30번에 달했다. 이어 그는 ‘고객(27번)’, ‘다양성(8번)’, ‘행복(5번)’을 언급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대뜸 오랜시간 바라온 꿈이 있었는지 묻자, 이 대표는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는 나만의 취향을 고민하는 시기가 또래보다 조금 빨랐다, 운이 좋았을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왜, 취향이었나?

▶제 주변에 열심히 공부해서 소위 좋은 대학, 남부러운 직장에 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다고 하더라. 성실하게 사는 건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 방향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지 못하면 길을 잃는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시기를 보내고, ‘주관적인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는 의미다. 소소해도 좋다. 확실한 나만의 취향이 앞으로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위해 미국행을 택했던 이유와도 맞닿아 있나?

▶그렇다, 경영 수업 내내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다. ‘should(해야 한다·당위)’가 아닌 ‘would(하겠다·의지)’에 대해 가장 깊게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더 많이 부여하게 된 단어가 생겼다. 바로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살아있는 사회 구조에 더 집착하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이 중고거래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번개장터가 이미 다양성을 구현하고 있다.

▶번개장터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기 브랜드, 아이템 단위로 중고거래가 이뤄지는 특이한 패턴이 발견됐다. 이것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처음부터 ‘스톤 아일랜드’ 브랜드의 재킷을 갖고 싶은 이용자는 해당 상품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애초부터 남자 외투를 찾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의미다. ‘맨투맨’이라는 아이템을 찾는 사람은 계속 맨투맨을 검색한다. 남성 의류를 검색하는 게 아니다. 브랜드, 그리고 아이템으로 대변되는 나만의 취향이 중고거래 시장에서 존중받고 있었다. 신기했다.

2020년 번개장터의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된 이 대표는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정보를 ‘디깅(digging)’하는 소비 트렌드를 번개장터 앱에 전면 반영했다. 번개장터만의 뾰족한 무언가가 발굴된 순간이었다. 지난해 9월 이후로 중고장터 앱은 전면 개편됐다. 사용자들이 제품군별로 볼 수 있는 중고거래 상품 배치는 브랜드 중심으로 과감하게 바뀌었다. 특정 브랜드를 팔로우하고 그 브랜드 제품만 모아볼 수도 있다. 현재 팔로우 가능한 브랜드는 900여개 브랜드 중 20개. 팔로우하거나 많이 검색한 브랜드를 메인화면 메뉴에 자동 배치하는 개인화 서비스도 제공된다. 판매자가 제품을 올리면 브랜드별로 상품도 자동으로 분류된다.

그 결과 하루에만 번개장터 앱 내에서 평균 4만7000건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연간 거래액은 지난해 기준 1조7000억원이다. 이중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 ‘번개페이’ 거래액만 3000억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 대비 2배 성장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대부분 중고 거래 서비스가 아닌 트래픽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인 반면 번개장터는 번개페이, 포장택배 등 서비스 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얼마나 다양한 고객 시나리오가 번개장터 내에 유형화되어 있나? 예를 들면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고객이 좋아하는 다른 브랜드군은 무엇인가. 또는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고객이 찾는 또다른 브랜드군은 어떤 건가.

▶브랜드가 가진 색이 뚜렷하고 브랜드 팬덤이 명확할 때는 해당 브랜드를 좋아하는 고객들의 ‘에고(ego·사회적 자아) 집단’이 형성된다. 굉장히 직관적으로 읽히는 데이터다. 그런데 다른 경우가 더 있다. 예를 들면 레저용품이나 골프웨어, 바이크용품 카테고리에서 보이는 패턴이다. 골프웨어 ‘PXG’ 브랜드를 좋아하는 고객은, PXG와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3~4개 비슷한 감성의 다른 브랜드가 있다. PXG로 대표되는 에고 집단이 단순히 PXG 브랜드만을 좋아하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PXG 집단은 여러 개의 브랜드로 대표되는 ‘라이프 스타일’ 단위의 군집인 것이다. 이런 다양한 단위들을 파악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찾고 자동화된 시스템을 만들어서 고객들이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물건을 추천받고 거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취향 단위의 다양한 고객 군집을 정밀하게 찾아내고 이들에게 제품을 추천하려면 기본적으로 고객 데이터를 해석하는 능력은 물론, 브랜드 관련 시장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비 맥락이나 트렌드에서 보여지는 고객의 ‘페르소나(persona)’도 읽어내야 한다. 디자인, 마케팅, 개발 등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는 능력도 필요해 보인다. 이런 업무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하고 있나?

▶저희는 한 사람이 하지 않는다. 단 한 명의 고객 시나리오를 두고 기획자(PO), 개발자, UX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셀(cell)’ 단위로 수시로 모여서 대화를 자주 한다. 서로 다른 전문 영역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어 머리를 모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셀 단위 회의 외에도 서로가 서로의 ‘작은 성공’ 경험을 나누고 축하해 주는 소모임도 운영한다. 조직이 기능별로 분리돼 단절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면, 번개장터에는 훌륭한 C레벨 리더들이 많다.

번개장터가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선보인 오프라인 공간 ‘브그즈트 랩’ 1호점.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위치해 있다. 스트리트 컨셉으로 한정판 스니커즈 300여족이 판매되는 이곳에는 지난 1년간 21만명이 방문했다. 하루에 평균 575명이 이 공간을 찾았다는 의미다. [번개장터]
번개장터는 지난해 11월 역삼 더 샵스 앳 센터필드에 프리미엄 컨셉스토어인 ‘브그즈트 컬렉션’을 오픈했다. 샤넬백과 롤렉스 시계를 비롯해 희소성 있는 200개 이상의 명품 컬렉션을 직접 즐기고 구매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200여명이다. [번개장터]

-번개페이 등 번개장터 자체 결제 시스템이 갖춰진 뒤로, 포장택배 서비스를 서울 전 지역으로 넓혔고 이어 카카오T 퀵 배송도 시작했다. 이와 함께 오프라인 콘셉트 스토어 ‘브그즈트 랩(BGZT Lab)’ 1·2호점과 ‘브그즈트 컬렉션(BGZT Collection)’도 선보였다. 지난 한 해에 번개장터가 한 일이다.

▶중고가로 20만~30만원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중고상품과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신상품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이다. 당연히 고객이 번개장터에 기대하는 중고거래 서비스 수준도 달라져야 한다. 결제, 배송 서비스를 차례대로 도입하고 나서는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다.

우선 버티컬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키워야 했다. 재작년에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과 중고 골프용품채 거래 플랫폼 ‘에스브릿지’를 인수해 그 DNA를 고스란히 번개장터에 심었다. 이를 통해 스니커즈와 명품에 특화된 서비스를 어떤 콘셉트로 운영해야 고객의 만족을 이끌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스트리트 컨셉의 ‘한정판 스니커즈’, ‘조던 1 컬렉션’, 롤렉스와 샤넬 중심의 ‘명품’ 중심으로 3가지 콘셉트가 나왔다. 각 콘셉트에 맞게 매장 위치 등 다방면으로 고려해 오프라인 매장 3곳을 차례차례 선보였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은 번개장터 내부 전문 검수 인력의 감정을 거쳐 판매되는 정품이다.

-연내 한정판 스니커즈나 중고 명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을 더 늘릴 계획이 있나. 아울러 오프라인만이 아닌, 중고장터 앱 내에서 한정판이나 명품의 정품을 인증하거나 보증하는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인가.

▶지난 1년 동안 준비한 ‘인증 중고’ 서비스를 올 한 해 동안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번개장터를 믿고 거래할 것인가, 번개장터는 신뢰를 어떻게 책임감 있게 풀어낼 것인가. 오프라인 매장을 추가 론칭하는 것보다는 중고 인증 서비스 도입에 집중하고자 한다. 잘 준비해서 올해 안에 서비스를 보여드리겠다.

2020년 1월 사모투자펀드 운용사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는 번개장터를 운영하는 번개장터주식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신임 대표로 이 대표를 선임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전문경영인이다. 그는 번개장터 부임 직전 티몬에서 사업전략실장, 스토어그룹장 등을 거쳐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티몬 이전에는 관심 기반 소셜커머스 빙글에서 성장총괄이사직을 담당했으며, 전략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다수의 유통·IT(정보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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