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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 5㎝만 더 컸으면”…‘사지 연장술’의 유혹
20대 남성의 종아리와 허벅지 '골 연장수술' 전후 모습. 종아리만 연장하면 평균 6㎝, 종아리와 허벅지를 동시에 연장하면 평균 8~12㎝ 키가 커진다.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제공]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사지연장술 상담을 받기 위해 온 사람들 열 중 아홉은 수술을 결정하고 옵니다. 작은 키 때문에 파혼을 당했다는 사람부터 외부 시선 때문에 집 밖에 나가기 힘들다는 사람까지. 그만큼 절박한 거죠.”

‘사지연장술(골 연장술)’.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이 수술은 ‘키 크는 수술’로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뼈의 길이를 늘이는 수술이다. 선·후천적으로 팔·다리 기형이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된 수술이지만 미용 목적으로 발전했다. 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일종의 성형수술인 셈이다.

이 수술은 최근 일본의 한 여성 프로게이머에 의해 뜻밖에 소환됐다. 철권 프로게이머 ‘타누카나(본명 타니카나)’는 남성을 향해 “165㎝는 작다. 170㎝가 아니면 솔직히 인권이 없다. 170㎝가 되면 인권이 생기니 골 연장수술을 알아봐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그의 발언은 심각한 인권모독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소속팀에서 계약해지를 당했다.

키가 곧 스펙…'권력이 된 키'

'키 크고 싶다는 욕망'은 강력하다. 선천적으로 바꿀 수 없다면 주체적으로 늘리는 방법을 찾는다. '수술 비용이 외제차 한 대 값, 회복 기간 최소 반년 이상, 최악의 부작용이 다리 기능 소실'이라 하더라도 절박함은 병원 문을 두드리게 한다.

국내에서도 사지연장술을 하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이면엔 ‘키가 곧 스펙’인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깔려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평균적으로 키가 작은 남성은 키가 큰 남성보다 연봉,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통계가 있다.

사지연장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동훈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원장을 찾았다. 그는 국내 몇 안 되는 ‘키 수술 전문가’다. 신촌세브란스, 분당차병원에서 사지연장술·변형교정술 교수로 11년간 재직한 후 지난 2019년 개원했다. 그가 2009년부터 집도한 사지연장술만 3000~4000건에 이른다.

지난달 19일 경기 성남시 이동훈연세정형외과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이 원장은 사지연장술의 원리와 기대 효과, 부작용, 오해, 그리고 환자들의 만족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설명했다. 이 원장은 “사지연장술이 미래 양악수술처럼 보편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평준화되지 않은 까다로운 수술이기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종아리만 연장땐 평균 6cm…허벅지까지 연장하면 8~12cm 커져
이동훈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원장 [이상섭 기자]

▶사지연장술은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것 같다. 어떤 원리인가.

=뼈가 부러지면 새로운 뼈가 생기는 원리를 이용한 수술이다. 인위적으로 종아리나 허벅지 뼈를 잘라 철심을 박고 기계적인 장치를 연결해 서서히 늘리는 방식이다. 원하는 길이를 얻었을 때 멈추고 재활을 통해 뼈를 완전히 단단해지게 한다.

▶사지연장술의 기대 효과는?

=사지연장술은 어떤 고정장치를 사용하냐에 따라 수술법이 나뉜다. 한국에선 외부·내부 고정장치를 같이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LON)을 선호하는데, 종아리만 수술할 경우 평균 6㎝ 연장할 수 있다. 종아리와 허벅지를 동시에 연장할 경우 키가 8~12㎝ 커진다.

▶수술 과정이 매우 힘들 것 같다.

=한마디로 뼈를 연장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 놓는 수술이다. 수술이 끝나면 뼈만 잘린 채 고정 장치가 연결돼 있다. 이때부터 뼈를 늘리는 연장 기간이다. 보통 하루에 1㎜씩 늘리는데, 종아리를 6㎝ 연장한다고 가정했을 때 3개월 이상 걸린다. 그동안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한다. 이후엔 뼈가 굳는 기간이다. 고정장치를 빼고 걷는 연습을 하는 데 1~2달이 지나간다. 목발 없이 자기 힘으로 걷기까지 빠르면 5개월 늦으면 7개월이 걸린다.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회복하기까지 1년가량 걸린다. 고정 장치를 빼는 별도 수술도 해야 한다. 첫 번째 수술 후 외고정 장치는 4개월 뒤에, 내고정 장치는 2년 뒤에 제거한다.

수술비만 4000만~8000만원…자연스러운 걸음까지 1년 소요

▶통증은 어느 정도인가?

=수술 자체보다 연장 과정에서 통증이 더 큰 것 같다. 수술 직후 환자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 “견딜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연장 과정에서 뼈와 근육이 같이 늘어나기 때문에 고통이 크다. 외고정 장치를 연결했을 경우 외고정 핀이 염부조직을 뚫고 미세하게 피부를 찢으면서 간다. 어떤 환자는 “아기 낳을 때보다 더 아프다”고 하더라. 반면 피부를 통과하지 않는 내고정 장치는 상대적으로 통증이 덜하다.

▶수술 비용은 얼마나 드나.

=수술 방식에 따라 4000만원에서 8000만원 가량이다. 수술 후 일주일 입원 비용만 따지면 그렇다. 이후 재활비용은 별도다.

▶사지연장술은 위험한 수술로 인식되는데 사실인가?

=최악의 경우 못 걷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수술이든 잘못 됐을 경우 신체 기능이 소실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사지연장술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이유는 아직 평준화가 되지 않은 수술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사가 수술을 하느냐에 따라 합병증 발생률이 천차만별이다. 가령 신경 손상률이 0%가 될 수도 있고 30~50%가 될 수도 있다. 어떤 환자들은 신경이 마비됐거나 다리가 심하게 휜 상태에서 고쳐달라고 찾아온다.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수술이다. 의사에 따라 위험할 수도, 안전할 수도 있다.

160cm대 남성이 가장 많아…“내 인생이 바뀌었다” 만족
수술 후 외고정 장치를 착용한 환자의 모습.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제공]

▶어떤 사람들이 사지연장술 상담을 받으러 오나?

=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다. 키 크고 싶은 160㎝대 남성이 대다수다. 어떤 남성분은 외부시선 때문에 1년에 한두 번만 집 밖에 나간다고 하더라. 182㎝ 남성이 온 적도 있는데 “모델을 하고 싶은데 키가 작다”고 하더라. 여자분들은 150㎝대다. 한 여성분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시부모님을 뵈러 갔는데 “키가 작아서 2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고 하더라. 결국 남자친구와 같이 와서 사지연장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헤어졌다.

▶수술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성별, 연령 비율은?

=남자가 90% 여자가 10%다. 나이는 20대가 제일 많고 그다음으로 30대, 10대, 40대, 50대 순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인생이 극적으로 변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너무 많다. 표현해 주시는 분들은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뼈를 얼마만큼 연장했는지와 관계없이 자신감과 자존감이 확 올라간 것 같다. 가령 165㎝였던 사람이 6㎝ 늘려서 171㎝이 됐다면, 절대적인 키는 평균보다 작지만 “이젠 아예 키 걱정을 안 한다”고 한다. 키 때문에 여자친구에게 번번이 이별 통보를 받던 20대 남성이 기억에 남는다. 키도 커졌지만 인상도 바뀌더라. 소심하고 우울한 얼굴에서 자신감 있는 얼굴이 됐다. 수술 후 여자친구를 만나 결혼에 성공했는데 청첩장을 줘서 결혼식까지 갔다.

▶어떤 사람들에게 수술을 권하나?

=정형외과 시절엔 미용 목적으로 사지연장술을 하면 기준을 정하고 제한했다. 키가 170㎝대 남성이 수술하겠다고 하면 돌려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콤플렉스 때문에 하는 수술이기에 본인이 강한 의지가 있다면 말릴 수 없다. 상담을 오는 분들 10명 중 8~9명은 이미 수술을 결정한 상태에서 스케줄만 잡으러 온다. 그만큼 오래 공부했기에 전문가나 다름없다. 단 뼈가 너무 짧아 수술이 어려운 경우, 조증·우울증·정신분열증 등 심각한 정신질환을 진단 받은 경우는 수술에 부적합하다.

10대는 성장판 닫히면 가능…50대부터는 안 권해
내고정 장치를 사용하는 ‘프리사이즈’ 수술을 한 환자의 전후 모습. 수술 후 사진(오른쪽)에서 종아리에 내고정 장치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동훈연세정형외과 제공]

▶언제 수술을 하는 게 가장 좋나?

=아무래도 젊을수록 회복력이 좋다. 40대까지 수술하는 데 큰 문제가 없고 50대부터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 뼈에 큰 문제가 없어도 근육이 뻣뻣해져 회복이 힘들다. 충분한 치료 기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지연장술을 한 후에 최소 반년에서 1년 정도는 시간을 마련해야 안정적으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 후 운동 능력은 얼마 정도까지 가능한지 궁금하다.

=조깅, 근력 운동, 배드민턴 등 일상적인 가벼운 운동은 가능하다. 다만 전력 질주, 축구, 농구 등 격렬한 운동은 어려울 수도 있다. 운동 자체를 못한다기보다 수술 이전보다 기량이 떨어질 수 있다. 심리적인 요인이 있어서 피로를 빨리 느끼는 것 같다.

▶10대가 수술을 해도 되나.

=성장판이 닫힌 10대면 가능하다. 여자는 만 15살, 남자는 만 17살에 성장판이 닫힌다. 이후에 수술을 해도 상관없지만 치료 기간을 확보하려면 학교를 쉬어야 한다. 보통 수능을 보고 대학 입학 직전에 수술하길 원하지만 국내에선 서울대를 제외하곤 입학 전에 휴학을 허용해 주는 곳이 없다. 남자에겐 제대하고 복학 전에 수술하라고 권한다.

외모지상주의?…자존감 찾는 환자, 무턱대고 욕할 건 아냐

▶한국에서 키는 어떤 의미인가?

=키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것 같다. 외모 콤플렉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볼 때 얼굴과 몸매 등으로 분산된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을 볼 때는 키를 압도적인 1위로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시선을 남성들도 의식해서인지 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모님들은 자식의 키가 작은 것이 본인 탓이라 여겨 자식을 데리고 상담 받으러 온다. 미안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유전자가 키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키 크는 수술이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키 크는 수술은 성형수술이 맞다. 키 작은 남자들이 고려하는 가장 첫 번째 성형수술이다. 수술 후 이분들의 자존감이 실제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무턱대고 욕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족이어도 키가 일상생활 지장 크면 권할 것…미래엔 양악수술처럼 될수도

▶원장님 자식에게도 사지연장술을 권유할 수 있나.

=가족이어도 기준은 똑같다. 지금은 전문성을 갖춘 의사를 제대로 고른다면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는 단계다. 가장 큰 기준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일상생활에 얼마만큼 영향을 주는 지다. 쌍꺼풀 수술처럼 쉽게 결정할 수술은 아니지만 키 때문에 취업, 연인 관계, 사회 생활에 큰 문제가 있다면 가족이라도 허락할 것 같다. 하지만 전력 질주와 같이 과격한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100%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사지연장술이 미래에 대중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양악 수술도 고난도 수술이지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지금은 초입 단계지만 미래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10년 전과 비교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그만큼 접근이 쉬워졌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는 만큼 전문성과 제대로 된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의사들이 생겨야 한다.

dodo@heraldcorp.com
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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