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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중국다운 올림픽 개막식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개막식은 시시했다. 개막식 총감독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이 예고한 대로 깜짝 놀랄 만한 성화 점화를 기대했는데 운동장 한가운데 설치된 눈꽃 모양의 성화 안치대에 불을 지핀 것이 전부였다.

‘설마 뭐가 더 있겠지…’라며 기대하며 지켜보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화려한 불꽃놀이 뒤에 찾아온 허전함.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걸맞게 돈을 적게 들이고, 사람들을 덜 동원하고, 대면 접촉을 줄이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추구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LED 첨단 기술로 24절기를 표현한 장면은 괜찮았는데 어린아이들을 많이 여러 차례 동원해 눈에 거슬렸다. 저비용에 화려한 불꽃놀이, 아이들을 볼거리로 전시했던 개막식은 어찌 보면 실용을 추구하며 교육을 중시하는(혹은 교육에 집착하는) 중국다운 개막식일지도 모르겠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021년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공교롭게도 최근 세 번의 올림픽이 다 아시아에서 치러졌다. 세계 속에 아시아의 높아진 위상을 증명하는 신호이리라. 연달아 아시아의 세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내게 (그리고 지구촌의 관중에게) 아시아 세 호랑이의 스포츠에 대한 태도, 서로 다른 문화를 비교해볼 좋은 기회다. 지난해 열린 도쿄올림픽 개막식도 참담하리만큼 재미가 없었다. 소박한 것까지는 좋은데 뭐랄까, 코로나에 짖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일본이랄까. 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여네 마네 논란이 일고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도쿄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며, 자신감을 잃은 일본을 확인했다.

코로나 대유행 때문에 한 해 뒤인 2021년 여름으로 미뤄진 ‘유로 2020’은 유럽의 11개 도시가 참여하는 ‘낭만적인’ 방식으로 치러졌고, 경기장마다 관중의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코로나19로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가 우승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애국심이 강하고 위기에 강하다.

관중이 없는 베이징올림픽은 재미가 덜 하다. 내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행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 구경인데,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과 코치 그리고 방송 중계진과 대회 관계자들만 보이다니. 관중의 소음이 없으니 중계진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A방송사의 올림픽 경기 중계를 시청하는데 (바로 옆에서) B방송사 아나운서의 소리가 같이 들려 경기에 집중하는 걸 방해한다. 내가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 더 불편한지도 모르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지상파방송들 올림픽 중계의 문제점을 짚어보겠다.

첫째, 한국 선수들의 메달밭인 쇼트트랙이나 피겨스케이팅 같은 인기 종목에 치중하지 말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의 예선 경기들도 생중계하면 좋겠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나는 한 경기도 놓치고 싶지 않다.

둘째, 중계진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크고 호들갑스럽다. 시청자의 관심을 이끌어내려 그러는 것 같은데, 경기에 동화되어 자연스레 흥분해 내는 소리와 (아나운서 본인은 경기 그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억지로 지르는 소리는 다르다. 한국 방송 캐스터들의 목소리가 거슬려 때로 나는 텔레비전 소리를 죽이고 경기를 시청한다.

이제 잔소리 그만하고 다시 경기를 봐야겠다. 잘 익은 치즈와 와인을 마시며 아름다운 육체의 향연을 음미하련다.

최영미 시인/ 이미출판 대표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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