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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시절 가난·학대 시달리고 늙으니 더 취약” 인권위 실태조사
인권위 노인인권 연구용역 보고서
노인 20명 생애구술사 기록·분석
“가난이 이어지는 ‘불리함의 연쇄’”
경제적 취약성→건강·사회관계 악화
노인혐오·차별 감내…동조도 심각
“빈곤선 상향 등 노인빈곤 해결해야”
연령주의 극복·노년층 지원 등 제언
노인 관련 이미지. [123RF]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어린 시절 가난, 학대, 전쟁에 시달리던 노인들이 여전히 경제적·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취약계층 노인들 중에서는 되려 자신들이 자녀들의 생계를 위해 쉼 없이 계속 일하거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인 경우도 적지 않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8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용역 보고서 ‘노인의 생애사를 통해 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제출받았다. 연구는 60~90대 노인 20명을 대상으로 기록한 생애 구술사를 통해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구술사 제작에 참여한 노인들은 공통적으로 노인소득보장 취약, 일자리 불안정성, 사회참여활동 제약, 의료정보 접근성·의료이용 제약, 돌봄이 부재, 질 낮은 주거환경으로 큰 어려움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심리적 위축, 노인혐오·차별, 사회관계 축소에 따른 고독감과 일상의 어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 어린 시절 겪은 가난, 학대, 전쟁 등 부정적 경험이 청년·중년까지 전이되고, 노인의 취약성으로 누적되는 ‘불리함의 연쇄’가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적 취약성은 생애 전반으로 이어졌는데, 참여자 대부분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유년기 시절부터 노동에 시달렸다. 중장년기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 등으로 자영업 실패, 구조조정 등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됐다.

취약계층 노인의 경우 자녀들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되레 자신들이 자녀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경제적 취약성은 건강과 사회적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진료비 부담 때문에 치과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거나, 사회적 관계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스스로 고립 상태를 유지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

참여자 중에서는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료해보지 못하거나,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나 배우자 폭력에서 벗어난 뒤에도 여전히 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노인혐오·차별도 심각한 문제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경제활동인구인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노인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쳐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비하하는 등 혐오·차별을 감내하고 동조하는 사례가 발견됐다. 일부 참여자는 지하철에서 냄새가 난다는 시선을 받기 싫어 옷을 자주 삶아 빨거나,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데 있어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다.

여성 노인의 경우, 생애 과정에서 경험하는 충격으로 사회적 관계가 위축되고 고립되는 상황이 문제로 지적됐다. 어린 시절에는 딸이라서 차별을 받고, 결혼 후 남편의 폭력·폭행에 시달리다 이혼해 기초수급 처지에 몰리는 경우도 있었다.

보고서는 이 같은 노인들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 빈곤선(최소생활수준) 기준을 중위소득의 30%에서 35~40%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 저소득 노인에 기초연금 수급 자격을 주는 방안 등 다양한 노인빈곤 해결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년층의 건강상태와 욕구를 고려한 고용노동정책 수립, 점진적 퇴직제도의 도입 등의 접근도 거론됐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 차별 등 연령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연령차별과 불평등을 인지하는 ‘연령인지 감수성’ 제고와 함께 성인지적 관점에 기초한 노후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밖에도 ▷건강보장·돌봄 ▷주거보장·고령친화적 환경 조성 ▷노년층 심리적 지원과 여가, 교육, 문화 등에 대한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 등의 정책 제언이 있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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