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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고양이 집·먹이통을 어찌하리오…아파트는 전쟁중
“불법 설치물 철거해야” 민원
“재물손괴 해당한다”로 맞서
입주민 둘로 나뉘어 옥신각신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 붙어 있는 고양이 민원 안내문 [독자 제공]

경기 하남시에 거주하는 중학생 이모(15) 양은 인근 주민들과 함께 임신한 길고양이를 위해 집을 설치했다가 며칠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고양이집이 자꾸 훼손되고, 먹이통에는 나프탈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문의하자 “불법 설치물이다”며 오히려 항의를 들었고, 설치한 주민들은 “재물손괴에 해당한다”고 맞섰다. 결국 지난 4일 또 누군가가 집을 무너뜨려 경찰까지 출동했다. 이양은 “불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대화로 해결하고 싶은데 무작정 안 된다고 하니 주민·동물협회 도움을 받아서 ‘철거 시 법적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항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겨울철 늘어나는 길고양이집과 먹이통을 두고 아파트 주민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길고양이를 입주민이 등장하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민원 폭탄’이 쏟아지고, 입장이 강경한 주민들 탓에 “법대로 해결하자”로 흘러가는 식이다. 매년 반복되는 문제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어 지난해 서울시 다산콜센터를 통해 접수된 길고양이 관련 민원은 4487건에 달한다.

입주민들의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마땅한 해법을 찾기 못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 A아파트 관리사무소도 최근 길고양이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겨울이 되자 추위에 떠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주민들이 늘어나 관련 민원을 속출하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이 항의를 해 먹이통을 치우면 이번에는 고양이를 돌봐주는 주민이 민원을 제기하는 식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12월 중순에 안내문을 붙였는데도 고양이 민원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길고양이를 5년째 돌보고 있는 이모(34) 씨는 “고양이집에다 익명으로 ‘쥐약 풀어 버릴거야’, ‘고양이 배설물 나오면 캣맘이 해결해 줄 거냐’ 등의 문구가 적힌 적도 있다”며 “익명으로 문구를 적어놓으니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길고양이집을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주민들은 저마다 각각 공동주택관리법과 동물보호법을 언급하며 “법대로 하자”는 입장이다. 반대하는 주민은 ‘공동주택관리법’ 속 공동주택관리 법령 및 관리규약에 따라 입주자들을 위해 관리사무소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고양이를 돌보는 주민들은 ‘동물보호법 제8조’와 재물손괴죄를 인쇄해 안내문을 만드는 등 맞서고 있다. 동물보호법 제1항 제3호는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법에 기대는 해법이 최선은 아니라고 말한다. 서국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공동대표는 5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현실에서는 법에 기대어 해결하는 방식이 그렇게 실용적인 해결 수단은 아니다”며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것 자체는 법률에 있지만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이 없어 생기는 문제인만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서 관련 지침을 마련해 시스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했다.

현재 길고양이 관련 민원은 지차체 선에서 해결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다산콜센터를 통해 접수된 길고양이 관련 민원은 2만9393건이다. 길고양이 사체 관련 문의는 1만3047건, 소음·악취와 같은 불편 민원이 4487건, 길고양이 포획구조요청이 1만1859건이었다. 이 외에 포획-중성화수술-방사(TNR)를 통한 개체 수 조절 요청이 4266건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기보다는 자치구별로 TNR 등 관련 내용을 접수해 주민들을 중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는 “지자체에서 관련 예산이 있지만 한정적이고, 담당하는 직원만 봐도 한 명이 서류 업무부터 민원 업무까지 하고 있어 현장을 살피기 굉장히 어려운 구조다”며 “그렇다 보니 개인인 캣맘들이 사비를 들여서 길고양이집을 마련하고 있고, 공공에서 수행해야 하는 책임을 개인이 실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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