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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많았는데…” 동해안 ‘한국 귀신고래’ 어디 갔을까 [라스트 씨 ④]
라스트 씨(Last Sea): 한국 고래의 죽음

# 귀신고래

▶한때 우리 바다에도 대형 고래가 있었습니다. 포경을 금지하고 1000만 원의 포상금까지 내걸었지만, 이 고래는 더 이상 한국 바다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 귀신고래가 품은 비밀
[출처: 라스트 씨]
[출처: 라스트 씨]

19세기만 해도 우리나라 동해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고래는 귀신고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길이만 4m에 달하는 엄청나게 큰 고래입니다. 다 자라면 몸길이는 무려 16m에 이르고요. 몸무게는 45톤을 넘어섭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고래가 한국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2008년부터 국립수산과학원은 사라진 귀신고래를 찾기 위해 최고 1000만 원의 포상금까지 내걸었지만, 허사였습니다. 여태껏 이 돈을 받아 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귀신고래는 우리나라에서 1977년 1월 3일 울산 방어진 앞바다에서 발견된 뒤로 44년째 종적이 없습니다.

그 많던 귀신고래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 귀신고래가 가는 곳
[출처: 라스트 씨]

한국 바다에서 사라져버린 귀신고래를 연구하기 위해 지난 2019년 러시아 사할린으로 향한 장수진·김미연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을 11월 중순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만났습니다. 두 연구원은 러시아 사할린 북동 바다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귀신고래를 두 눈으로 확인한 장본인입니다.

“처음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 큼지막한 볼드체(진한 글씨체)로 ‘와, 귀신고래!!’ 이 문구가 지나갔어요. 그리고선 귀신고래가 정확히 어디서 발견됐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기를 내뿜었는지, 움직임이 어떤지 등 파악하고 기록하느라 정신없었어요. 한꺼번에 정말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장 연구원이 그날의 기억을 곰곰 복기하며 설명했습니다.

[출처: 라스트 씨]

러시아 사할린으로 오는 귀신고래는 두 종입니다. 한 종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남쪽 바다를 오가는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입니다. 다른 한 종은 러시아 오호츠크 바다에서 알래스카와 캐나다, 미국, 멕시코 연해를 오가는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Californian Gray Whale)’죠.

그런데 지구상에 2만7000마리 이상 서식하는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와 달리 한국계 귀신고래는 단 150여 마리만 남았습니다. 번식 가능한 암컷은 26마리뿐입니다. 전 세계 멸종위기종 고래 가운데 가장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겁니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도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었어요. 그런데 귀신고래 이동 경로에 있는 캐나다, 미국, 멕시코 정부가 귀신고래 개체수 보존을 위해 단단히 뭉쳤죠. 국가간 긴밀한 연구 협력을 이뤄내고 관련 정책을 펼친 겁니다. 그 덕분에 1만5000마리였던 귀신고래가 2만7000마리까지 증가할 수 있었어요.”

이어 장 연구원은 “한국계 귀신고래는 설령 한중일 3개국이 손잡고 연구를 시작한다고 해도 멸종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라며 덧붙였습니다. “1만 마리를 2만 마리로 늘리는 것보다 150마리를 300마리로 증가시키는 것이 훨씬 더 힘들어요. 그리고 한국계 귀신고래 이동 경로에 위치한 한국, 중국, 일본 그 어느 나라도 고래를 잘 보호하는 국가가 아니라서….”

# 고래는 알까? 인간들에게 자기가 ‘로또’인 것을
[출처: 라스트 씨]

100년 전만 해도 동해안에 자주 출몰했던 한국계 귀신고래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무차별한 포경입니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러시아, 일본의 포경선에 잡혀 목숨을 잃으면서 개체수가 급감했습니다. 돈만 좇는 인간의 이기(利己)가 고래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저희 인간이 고래를 열심히 잡아서, 열심히 없앴죠.” 김 연구원이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 쉬며 말했습니다.

# 지구 온난화 재앙…‘귀신고래 사망 사태’

그나마 다행인 건 1987년 한국에서 포경은 전면 금지됐습니다. 그런데 귀신고래는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죽음의 공포가 귀신고래에게 찾아왔습니다. 지구 온난화입니다. 현재 러시아 사할린에서 발견되는 귀신고래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귀신고래와 같은 대형고래류는 극지에 서식하는 플랑크톤이나 새우 같은 작은 해양 생물군을 먹어요. 차가운 수온에서 이 생물군이 번성을 잘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바다 환경 자체가 무너지고 있어요.” 김 연구원은 “귀신고래가 급격하게 바뀌어버린 바다에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2019년부터 번식을 마친 뒤 새끼를 데리고 베링해로 북상하던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가 북미와 멕시코 해안에 사체로 떠밀려오는 사태가 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발견된 사체만 무려 384구에 이릅니다. 올해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이상 사망 사태’를 선포한 이유입니다.

[출처: 라스트 씨]

올해 1월 해양생태학(MEPS)에 실린 〈비정상적인 사망 관련 귀신고래의 취약한 몸 상태〉 논문에 따르면 연구진들이 드론으로 1245마리의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를 촬영해 몸 상태를 분석한 결과, 귀신고래들이 굶주려 몸이 쇠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계 귀신고래는 2만km 정도 왕복 이동을 해요. 그런데 충분히 먹지 못한 상태에서 2만km를 내려가서 새끼를 낳고 키워야 하니까 몸무게가 30% 이상 줄어요. 이 귀신고래는 새끼를 데리고 다시 먹이터를 향해 2만km를 거슬러 올라와야 하거든요. 그런데 몸이 허용하는 한계치를 넘어서는 거예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 지역의 빙하가 빠르게 녹자 러시아 정부는 얼음층 밑에 묻혀 있는 가스전과 유전 개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저의 가스·유전 탐사를 하면서 쏘는 음파와 공사·운영 중 소음은 소리로 세상과 소통하는 고래의 의사소통을 방해합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환경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어요.” 김 연구원이 “이제는 인간과 지구상의 생명이 공존하기 위한 정부·기업 차원의 ‘사회적 합의’가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고래, 그리고 라스트 씨
[출처: 라스트 씨]

“‘고래를 왜 보호해야 하죠?’, 저희들은 고래를 연구하니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아요. 그런데 질문 자체가 이상해요. ‘인간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들자’는 말에는 아무도 토 달지 않아요. 그런데 ‘이 생명이 멸종하지 않도록 해야 해’라는 말에는 ‘왜?’가 붙어요. 인간 사회만 중요하고 인간이 속해 있는 자연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이날 제주에서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연구원들이 입을 모아 전한 말입니다. 그들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고래의 역사를 마치 인간 승리의 이야기로만 들어왔을지도 모릅니다. 포경선, 고래 사냥, 로또, 돌고래 관광, 아쿠아리움…. 자연의 거대함에 비하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망각한 채 말이죠.

PS. 60~70년이라는 긴 수명을 가진 고래는 사는 동안 몸속에 탄소를 저장하고 죽으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이때 고래가 심해로 가지고 가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한 마리당 평균 33톤. 33톤은 나무 1500그루가 매년 흡수하는 양입니다.

라스트 씨(Last Sea) : 한국 고래의 죽음

본 기획은 헤럴드경제 영상팀 기자, PD, 디자이너의 긴밀한 협업으로 만든 퀄리티 저널리즘 시리즈입니다. 본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기획=이정아, 신보경, 유충민, 허연주

연출·편집=유충민

구성·취재=이정아

촬영=신보경, 김성우, 이주섭

디자인 총괄=허연주

디자인·CG=변정하

제작 책임=이정아

운영 책임=홍승완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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