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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성은 철옹성이었다..돌출형 ‘치성’에 겹겹 축조
38년 고려 피란수도...대규모 치성 첫 확인
개경서 강화 천도, 내성-중성-외성 철벽 구축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한국전쟁때 부산 처럼 고려시대 38년간 피란수도(1232~1270년) 역할을 했던 강화 중성에서 외침 방어용 대규모 치성(雉城)이 발견됐다. 몽골에 강화도성 만큼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철옹성을 구축한 흔적이다.

성벽과 치성의 연접부. 상단 치성이 밖으로 꺾여 적들이 오르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강화도성 내성과 외성 사이 중성의 방어시설 전경

도성은 나라의 수도를 에워싼 성곽이고, 치성은 성벽의 바깥에 돌출시켜 방어에 유리하게 만든 성곽 시설물을 말한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김지연)는 2일 강화중성에서 치성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화중성은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를 강화로 천도한 이후 건립한 3개의 성곽(내성-중성-외성) 중 하나다. 강화중성은 ‘⊂’ 형태로 수도 강화를 둘러싼 토성(土城)으로, 현재 확인된 길이는 총 11.39㎞이다.

피란도성기 즉 강도시기(江都時期)에 축조된 성곽 중 당시의 모습을 가장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연구소측은 설명했다.

고려사(高麗史) 등 문헌기록에는 중성이 1250년(고려 고종 37년)에 축조되었고, 둘레가 2960칸이며, 17개의 크고 작은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1259년에 몽골과의 화의에 따라 성곽이 훼철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란시기는 고려 고종 19년부터 원종 11년까지 이다.

강화중성의 남성벽 구간인 대문고개 일대를 대상으로 한 이번 제3차 조사지역은 성문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 대문고개 도로의 서쪽 능선부에 해당한다.

해발 89~91m의 야트막한 능선 정상부와 대문고개로 이어지는 동쪽 사면부를 따라 성벽이 만들어졌으며, 이에 잇대어 길이 19m, 너비 4.5~4.7m, 남은 높이 1.3~2.6m의 치성이 돌출되어 있다. 언 듯 커보이지 않지만, 그간 확인된 고려 성곽의 치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물론 북한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실제 치성을 가진 성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는 미확인이다.

강화중성의 치성은 성벽 축조기법과 같은 판축(版築)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석축기단을 쌓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기둥(영정주, 永定柱)을 세운 다음, 판재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성질이 다른 흙을 여러 겹 다져 쌓아 완성했다. 치성 주변에는 다량의 기와와 함께 문확석, 초석 등 문과 건물 부재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됐다. 문확석(門確石)은 문을 고정시키는 돌을 말하고, 초석(礎石)은 주지하다시피 건물 기둥을 받쳐주는 돌이다.

겹겹이 성을 구축한 강화도성 중 중성의 치성 전경

성벽은 조사구역 내 능선 정상부를 따라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휘어지는 형태로 축조되었다. 성벽의 너비는 4.5~4.7m로 치성과 같으며, 남은 높이는 내측 기준 1.4~2.1m, 외측 기준 2.5~3.3m이다. 성벽 내측에는 석축기단의 보축시설과 통행로가 성벽과 평행한 형태로 설치되었다. 치성이 잇대어진 성벽 안쪽에는 성벽과 치성으로 오를 수 있도록 계단형태의 등성시설(너비 2.4m, 길이 1.2m, 성 안에서 성벽 위나 성문의 문루 등에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 확인됐다.

치성은 강화도성 내·외부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관리하고, 성문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결과는 강화도성의 성곽 구조와 운영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다.

이번에 조사된 강화중성 제3차 발굴조사 성과는 12월 3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에서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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