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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소수’에 명줄 잡힌 한국 산업

영국 드라마 이어즈앤이어즈(Years and Years)는 2030년대를 다룬 SF 드라마다. 포퓰리즘에 특화된 정치인의 집권, 인간이길 포기하고 스스로 기계를 택하는 트랜스휴먼(Transhuman)의 등장, 도심 한가운데에서 터지는 방사능 폭탄테러 등 영국 한 가정의 가족사와 함께 우울한 미래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등장인물 대니얼의 죽음이다. 주인공 가족의 막내 형제인 그는 난민 빅토르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로 등장한다. 추방당한 빅토르를 돕다가 그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인다.

영국에 밀입국하기 위해 그가 택한 건 다름 아닌 고무보트. 17명의 난민과 함께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도버해협을 건너보지만, 파도에 못 이겨 대니얼은 그만 물에 빠져 죽는다.

이 장면이 유난히 선명한 건, 극명한 괴리감 때문이다. 몸속에 칩을 심고 인간의 뇌를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시대. 손가락 몇번만 까닥하면 홀로그램으로 프로그래밍되는 시대. 그 시대의 죽음이라면 뭔가 ‘2030년스럽길’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대니얼은 고무보트를 타고, 파도를 못 이기고, 해협에서 익사하며 드라마를 퇴장한다. 1700년대 작품 로빈슨크루소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드라마 속 가장 충격적인 건, 광기의 정치인도 무참한 환경파괴도 아니었다. 화려한 2030년에도 결국 비극은 1700년대와 다름 없다는 괴리감. 그게 대니얼의 죽음이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되는 이유다.

요즘 산업계를 뒤흔드는 비극이 있다. 외교부, 청와대까지 총 비상이다. 다름 아닌 요소수다. 요소수 대란을 접하며 이어즈앤이어즈의 대니얼을 떠올린다. 메타버스와 NFT(Non-Fungible Token)가 만개하는 시대, 산업계를 마비시킬 위협이 다름 아닌 요소수란 데에서 대니얼을 떠올리게 한다.

요소수는 물과 요소 성분을 섞은 액체다. 배기가스와 섞이면 질소산화물을 물과 질소로 환원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때 국내에서도 생산했으나 워낙 저렴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국내 기업들도 생산을 접은 지 오래다.

저가에 수요도 줄고 있어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요소수였다. 그랬던 요소수가 2021년 대한민국 산업계의 명줄을 쥔 형국이다. 전 국민이 금맥 찾듯 ‘요소수 러시’에 뛰어들었다.

이런저런 대책이 나오지만, 현재로선 외교적 해법 외에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정부는 산업용을 차량용으로 전환하는 방안부터 검토했지만, 이미 일선 현장에선 “불가하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어떤 부작용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에서다. 군 수송기로 2만리터를 공수하고 정부와 기업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요소수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 요소수 대란은 해결될 수순이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분야도 아니니, 생산 설비를 재가동하는 것도 비용의 문제일 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요소수 대란을 잊게 될 것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 괴리감이다. 2021년, 국내 산업계 마비를 위협한 존재가 디도스 공격도 해킹도 피싱도 테러도 아닌, 바로 요소수였다는 사실 말이다. 첨단화될수록 간과해선 안 될 숙제는 가장 기본적인 데에 있다는 교훈이 새삼 다가온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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