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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비즈] ‘K-브랜드’ 시대, K-뱅크가 없는 이유

“한국은 이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있는데 왜 금융기관은 그렇지 못한가요?”

어느 회의에서 받은 질문이다. 질문하는 일본인 동료에게 “한국에서 금융은 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고 금융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금융은 정부의 통제를 많이 받다 보니 규제 사항이 많다”는 상황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금융기관별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필자의 답변에 그는 “금융정책을 정부가 주도하지 않는 나라는 없고 일본도 국가 간섭이 심하다”며 “중요한 것은 산업이 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금융이 신속하게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없는 이유로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크게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산업 규모에 비해 금융기관이 너무 많다. 현재 국내에는 10개 이상의 은행이 40개 이상의 보험사와 40개 이상의 증권사 70개 이상의 저축은행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금융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절대적인 자금을 보유하면서 사업비를 절감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규모가 작은 금융기관은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개발하기 어려운데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 등 사업비가 커져서 검증되지 않은 상품 판매로 손해를 볼 경우 경영에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차별화된 상품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적정한 이윤을 창출하기도 어렵다.

둘째, 금융기관에 대한 당국의 불신이다. 금융기관의 불신 문제는 과거 일련의 저축은행 사건에서 극에 다다랐다. 어느 저축은행 대주주 소유의 각종 슈퍼카와 고가의 그림들이 예금보험사공사의 압류된 경매물건으로 나오고, 서민이 저축은행 앞에 몰려와 예금을 돌려 달라는 모습을 본 국민은 이러한 정부의 입장에 동의하게 됐다.

하지만 금융산업으로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IMF 시절 기업들의 부실이 은행으로 전가됐다. 구조조정과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은행은 회생했지만 이후부터 정부의 발언권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또 다른 부실 한 축은 소비로 막아내야 했기 때문에 카드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급격하게 늘어난 카드회사들은 시장의 포화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상당수 정리되기도 했는데 이후 그와 관련된 부실은 저축은행으로 이동했다. 과거 금융기관들의 일부 실패 사례를 모든 금융기관의 도덕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급격하게 변하는 정책 앞에서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 체계를 적시에 갖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2021년 전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최첨단 산업들과 문화산업이 날개 돋친 듯이 질주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환경은 쉽지 않다. 카카오뱅크가 시중은행 모두를 사고도 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놀라워하지만 국내 고객들에게만 머무르는 플랫폼사업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볼 때 한계점 역시 분명해진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산업이 강자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조로 변화하고 있기에 규모의 경제는 위력을 발생하게 될 것이고, 많은 산업생태계는 재편성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서 한국의 금융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금융산업이 타 산업과 함께 세계 무대에서 손발을 맞춰나가며 협력해야 한다. 이제는 금융산업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도 될 시점이다. 그 시작은 자율성 확립부터다. 자율과 책임의 환경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를 믿고 과거의 낡은 규제와 장벽, 경계들은 걷어내야 한다. 금융사들은 정책 당국과 국민에게 더욱더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금융도 ‘어메이징 코리아’의 한 주축이 될 것이라 믿는다.

신병오 한국딜로이트 금융산업 리더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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