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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태우 별세] 공과(功過) 뚜렷… 비운의 ‘軍→民’ 과도기 대통령
재임중 북방외교 성과… 토지공개념 의미
전두환의 친구· ‘12·12 주역’은 평생 ‘꼬리표’
사상 첫 구속된 전직 대통령… “깊은 용서 바란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8년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연합뉴스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마지막 군인 대통령이자 직선제로 당선된 첫 대통령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가 ‘군(軍)’에서 ‘민(民)’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집권했다. 그만큼 공(功)과 과(過)도 뚜렷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북방외교, 올림픽 성공개최, 남북평화 초석이라는 업적을 쌓았으나 ‘12·12 쿠데타’의 주축 세력이었다는 사실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10·26에 별세…노태우의 공(功)=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은 신군부 집권의 시작점이됐던 박정희 전 대통령(10월 26일)이 숨진 당일 별세했다. 대한민국 군사정권의 시작과 끝을 알렸던 두 전직 대통령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치사 전면에 처음 등장한 시점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며 신군부 핵심 세력으로 부상했던 시점이다. 전두환 정권의 2인자였던 노 전 대통령은 1981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뒤 1987년 민주정의당 대표를 거쳐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나 이사람. 보통사람. 믿어주세요’는 노 전 대통령의 선거 슬로건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우선 성과로는 단연 북방외교가 꼽힌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기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이 종식됐고, 이 때 ‘공산권 국가=적’이라는 인식을 깨고 공산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수교를 맺었다. 당시 수교했던 중국은 오늘날 한국의 제1 교역국이다. 새롭게 수교한 국가는 45개국에 이른다. 경상수지가 사상처음으로 흑자로 전환된 시기도 그의 재임중이었다. 수출 경제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이외에도 노 전 대통령은 토지공개념 정책을 실시했고 대기업 비업무용 토지를 매각케 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 지역에 뿌리박혀있던 조직폭력배를 사라지게 했고, ‘나를 코미디 소재로 쓰라’는 공약도 재임기간 중 지켜 언로 확대도 보장했다.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주택 200만호 건설 등 국민 복지에도 신경을 썼다.

북한과의 교류가 활기를 띈 것도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다. 그는 1988년 7·7선언으로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고, 1990년 남북한이 동시 유엔에 가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도 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노태우의 ‘과(過)’=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오점은 군사 쿠데타(12·12사태)의 주역이었다는 점이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의 선봉에 섰고 마지막까지 당시 상황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입을 열지 않았다. 여전히 광주에서의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재임중에는 군사 정치의 잔재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확인된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사건과, 과거사위에서 무죄로 결론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이철규 의문사 사건 등도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있었던 시국 사건이다. 이외에도 고문 수사 등 수사 관행은 군사문화의 잔재를 그대로 답습했고, 군 내 사조직이자 ‘12·12사태’의 주축이었단 하나회 역시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해체됐다.

오늘날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감정의 원인이 되기도 한 ‘3당 합당’ 역시 노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사안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치는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퇴임후 보장’을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이후 정권을 잡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김 전 대통령이 실시한 ‘금융실명제(1993년)’가 비자금을 드러나게 한 원인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5000억원을 받았다고 고백, 헌정 사상 구속된 첫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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