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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머리 아닌 가슴으로...사람들 마음 안아주고 위로하는 힘”
OST 돌풍 일으킨 ‘부캐’ 음악감독 이상훈
응답하라·로코퀸·슬의생 음원차트 ‘올킬’
‘본캐’ 작곡가·앨범 프로듀서·키보디스트
드라마서 뮤지컬까지 장르 넘나드는 활동
“OST 작업, 스토리·캐릭터 ‘톤앤매너’ 중요
음악 통해 인생배워...헌신의 생각으로 작업”
tvn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상훈 음악감독.

수많은 히트작 뒤에 이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 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서울 이곳은’ 중) 서울살이를 시작한 스무살 새내기들의 고단함이 묻어난 ‘응답하라1994’(tvN)의 메인 타이틀곡. 2004년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을 시작으로 드라마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훈 음악감독이 이름을 알린 계기였다. 이후 현재까지 방영된 숱한 인기 드라마의 OST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tvN ‘응답하라1988’, ‘로코퀸’ 서현진의 ‘또 오해영’, 장르물의 신기원이 된 ‘시그널’, 가장 최근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까지. 방송이 끝나면 음원 차트는 이들 작품 속 노래가 집어삼켰다. 가수들의 신곡을 밀어내고 드라마 OST가 차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상훈(48) 감독의 커리어만 놓고 보면, ‘동일 인물’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는 유달리 캐릭터가 많다. ‘본캐’는 작곡가이자 앨범 프로듀서, 김창완밴드의 키보디스트. ‘부캐’는 드라마, 영화, 뮤지컬의 음악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영상과 무대 등 매체의 경계를 넘고, K팝부터 클래식까지 장르의 벽을 허문다. 2010년대엔 YG엔터테인먼트의 국내외 공연의 세션으로 참여했다. 그 시절엔 “일 년의 절반은 해외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하는 ‘다작의 아이콘’이라 쉴 틈이 없다. 현재도 연극 ‘작은 아씨들’(10월 31일까지·드림아트센터), 내년이면 무대에 오를 뮤지컬 ‘사랑의 불시착’ 음악 작업에 한창이다. 서울 서초동 위클래식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훈 음악감독은 “최근 2~3년은 자체 자가격리 중”이라며 “일주일에 7일은 밤샘 작업이다”라며 웃으며 말했다.

“아티스트의 앨범 작업부터 드라마나 뮤지컬 등 서로 다른 매체의 작업을 하지만, 공통점은 있어요. 모두 ‘음악’이라는 거죠. ‘슬픔’을 가지고 곡을 쓸 때도 다양한 문법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음을 가지고 들려주고 표현하는 것은 같아요.”

매체의 특성에 차이가 있는 만큼 표현 방식에 있어 주력하는 부분은 다르다. 최근 막을 내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시즌1, 2를 통해 수많은 명곡이 나왔다. 다섯 명의 주인공 ‘99즈’(조정석 김대명 정경호 이미도 유연석)의 밴드 활동을 보여준 덕에 드라마는 매회 음악이 풍성했다. 드라마 음악을 작업할 때 이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와 캐릭터’다.

무대에서도 중요한 것은 “작품에 맞는 곡을 쓰는 것”이다. 연극, 뮤지컬 등 공연에서의 음악은 “공간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는 것이 이 감독의 생각이다. 때문에 극장의 크기, 여건과 작품을 고려해 작업한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작은 아씨들’은 “소극장 무대에 어울리는 콘셉트의 음악으로 보다 클래시컬한 창작곡”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감독의 길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기타리스트인 형과 피아노를 전공한 누나 덕에 음악은 늘 “마음에 품은 꿈”이었으나, 정작 대학에선 디자인을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프로로 음악생활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그는 “20~30대는 끊임없이 도전했다”며 “음악을 하려면 모든 걸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작업을 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서로 다른 작업을 오갈 때 이 감독이 놓지 않는 것은 ‘진정성’이다.

“음악은 결국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철학이다. “논리적인 말보다 말없이 잡아주는 손의 체온과 감정이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처럼 음악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머리로 계산해 건네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이 느껴져야 하는 거죠.”

이 감독의 음악들이 오롯이 그 위에 있다. 누군가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며,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음악에겐 마음의 빚이 있어요. 학창시절 힘들 때 가장 많이 위로해준 것이 음악이었고, 그러면서 꿈을 키웠어요. 음악을 듣고 좋아하다가, 위로 받았고, 그러다 내가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상상하게 됐어요.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꽉 채워지더라고요. 음악을 통해 인생을 배웠고, 채무가 있어 헌신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게 돼요.”

25년 넘게 걸어온 길 위에서 깨달은 진리는 “음악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사람들의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만들어질 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른 의미로 위로나 감동을 주는 것이 음악의 힘”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모르는 곡일 지라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될 수 있고, 한 시절의 소중한 음악일 수 있어요. 만들어지고 나면 그건 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듣는 사람의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음악을 만드는 일을 허투루 할 수 없어요. 어떻게 장난처럼 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위로하는 것, 이것이 제가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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